그들은 왜 목숨 걸고 조선 땅에 왔을까?
조임생 지음, 신은재 그림 / 해와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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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 아직 믿음의 씨가 뿌려져 있지 않던 시절, 많은 선교사들이 우리 땅, 조선에 와서 하나님을 전파했다.

그런 분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참 많은 것이 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아펜젤러, 언더우드, 닥터 홀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준다.

세 분 선교사들의 공통점으로 이 분들을 본받아 자식들도 조선에 와서 온 힘을 다해 선교를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펜실베니아 주의 작은 농촌 마을 수더튼에서 자연과 함께 자란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는 열여섯 살 때 한 교회의 특별집회에서 성령으로 거듭남을 받아서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훈련을 거듭하다 친구 대신으로 아내 헨리 닷지, 선교사 스크랜턴과그의 어머니와 함께 조선에 선교사로 파송된다.

불안했던 조선의 시국과 너무나도 심한 신분차이와 남녀불평등에 참으로 많이 분개했다고 한다.

고종으로 부터 배재학당이라는 현판을 받게 된 학교와 벧엘 예배당을 세웠다.

침몰하는 배 속에서 조선 학생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아펜젤러의 뒤를 이어 딸인 앨리스와 아들인 헨리도 조선에서 선교를 했으면 조선에 묻혔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호러스 언더우드는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조선으로 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고 조선 역사와 문화, 언어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하였다.

특히 언더우드는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많이 감탄하였다고 쓰여져 있다.

의료 선교사로 온 릴리어스 호턴과 결혼하였고 한글을 이용한 문서 선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연희전문학교를 세우고 세브란스 병원을 건축하는 등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루어냈다.

캐나다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윌리엄 제임스 홀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의과대학에 들어가 의사가 되었고 로제타 셔우드를 만나  조선으로 파견되어 거기서 결혼한다.

평양에서 힘든 환경에서도 의료선교를 하다 말라리아에 걸려 목숨을 잃는다.

홀 부인은 그의 죽음 후에도 평양에 기홀병원을 세웠고 맹인들을 위한 일을 많이 했다.

아들인 셔우드도 아버지처럼 조선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결핵 퇴치를 위해 결핵 요양원도 설립하였다.

세 분 선교사들은 자신의 거의 모든 생을 조선에서 보냈다.

또한 그만큼 조선에 많은 애정을 갖고 살았으며 하나님을 전파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다.

이 분들의 희생을 디딤돌 삼아 현재로 커진 한국의 기독교.

아이들도 이런 선교사들의 삶을 본받아 전도를 하는 데 많은 노력과 기도로 나아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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