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폴리스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6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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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죽은자들에 관한 대단한 상상력이 구현된 책이다. 두권의 분량에 관한 방대한 내용의 사변이 바로 죽은 자들에 대한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일 것이다. 사람은 항상 죽음을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삶은 죽음의 반면이다. 살아 있는 것이 의미롭다기 보다는, 죽음에 대비되는 '삶'이라는 것이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두렵기 때문일까? 그것을 실체로서 규명할 수 없기 때문일까? 사실 우리들의 문학에서 죽음을 정면으로 다루는 것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내가 과문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확실히 죽음을 다루는 책이 그리 많지 않는 것 같기는 하다. 한때 자살에 관한 책들이 유행을 이룬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자살이라는 것은 삶의 측면에서 바라본 죽음이다.

이 책은 죽음 이후의 존재라는 것과, 죽음을 바라보는 삶이 평형을 이룬다는 점이 무척 이채로운 책이다. 예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대 모험을 다룬 그 책 역시 엄청난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그 책은 죽음 이후에 대한 거대한 탐험이라는 한편의 드라마이지만, 죽음을 대상화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온다리쿠의 이 책은 죽음에 대해 보다 친근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 죽은이가 산자와 대화하는 장소. '언아더 힐'이라는 신비로운 장소를 무척 구체적인 방법으로 구현하는 이 책을 통해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죽음이라는 것, 죽은 자라는 존재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죽음을 대상으로 보고, 죽음이라는 현상을 규명하는 책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대단한 규모의 모험과 지적 추리, 다양한 인류학적 문화코드들을 만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신비로운 장소에서 제시되는 각종 현상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번쩍이는 지성을 동원한 추리와 몸을 던져 이루어내는 모험이 풍부한 저자의 지식과 함께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를 이루어 내는 책이다. 과연 이렇게 크게 키워놓은 이야기들을 어떤 방식으로 결말을 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한번에 잠재우는 대단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무덥고 긴 여름을 잊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단순한 스릴러나 판타지의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지적 모험이 함께하는 책이다. 게다가 흔히 다루지 않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주제의식이 남다르고, 방대한 규모의 이야기를 잘 조직하는 저자의 놀라운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번쩍이는 책이기도 하다. 한번쯤 읽어볼만한 무척 흥미로운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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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입맞춤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9
에펠리 하우오파 지음, 서남희 옮김 / 들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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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가 소설을 쓰는 전통이 그리 낮선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의 뒷편에 상당히 장문으로 붙어 있는 해설인터뷰의 내용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 흥미로운 책의 내용을 되짚어보면 확실히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풍부한 인류학적 지식을 가진 저자가 그 연구를 통해 얻은 것을 독자에게 실감나게 전해주는 방법으로, 이야기 구조를 빌려서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강렬한 방법인지를 절감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만큼 강한 힘을 가진 책이다.

똥구멍이라는 강렬한 흥미를 끄는 주제에 대해, 질펀한 입담을 통해서 정신없이 쏟아내는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는 마치 우리나라 판소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낮선 남태평양 한 섬에서의 적나라한 삶의 모습들이 지구의 거의 반대편에 있는 우리들의 문화에 무척 친근한 모습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이 책이 말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력의 끈끈한 힘의 공통분모를 공유한 때문인지, 혹은 잘 쓰여진 책이 가지는 인류보편의  정서에 호소하는 강한 호소력 때문인지 모르겠다.

책은 자신의 서사구조에 따라 자신의 페이스로 경쾌하게 진행된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과 친근한 듯하면서도, 이국적인 섬나라의 질펀한 정서가 잘 녹아드는 이야기의 흡인력 속으로 빨려든다. 그래서 이 책은 무척 경쾌하면서 빠른 속도로 읽히는 책이다.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주제의식이 무척 깊고 강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책은 힘찬 속도로 행진하는 활자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잔치로 우리들을 이끌어간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제시하는 삶의 여러가지 대비되는 모습들. 남편과 아내. 딸과 어머니. 가족과 이웃, 공동체와 국가. 체제와 민중. 종교와 진실성. 제도적 의료와 비제도적 치유. 주변부와 중심부. 익살과 아픔. 생명력과 부패. 선진국과 후진국. 이런 강한 대비들을 통해 이 책은 우리 삶의 조건과, 그런 조건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남태평양 섬이라는 객관적인 조건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란 것. 얼핏생각하기에는 무척 낭만적이고 목가적으로 느껴지는 그들의 삶의 조건에는, 선진국의 핵폐기, 핵실험. 자원약탈, 외교적 억압, 빈곤의 구조화같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수많은 아픔들이 겹겹히 옥조이고 있었다. 그런 아픔의 모습을 이 한편의 소설처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책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류학자이면서 한 나라의 행정가로 활동하는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의식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책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강한 주제의식을 소설이라는 멋진 틀속에 잘 용해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전혀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지지 않은 코믹한 책으로 읽힐수 있다. 생경한 정치적 용어 한마디 없는 이 책은 익살과 해학, 웃음과 기발함이 번쩍이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의 집합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 많은 웃음을 통해 책을 읽고 난 뒤에 느껴지는 뿌듯함, 삶의 모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뒷맛이 바로 이 책의 진정한 힘이 있는 것 같다.

'태평양적인 방식' 이라는 선진국이 후진국에 덧씌워놓은 억압적 이데올로기. 교묘한 방식으로 태평양의 소국들을 옥죄고 있는 뉴질랜드와 호주, 혹은 지구상의 다른 거대한 힘들을 가진 국가 혹은 정치 경제적 실체의 존재에 대한 고발.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는 외부에서 덧씌워졌으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웃음과 아픔속에 허물어져가는 억압적이고 희화적인 내부억압체계. 즉 허망하게 무너지는 경찰의 힘, 변변한 약이나 의사가 없는 의료체계, 정당성이 없어 보이는 정치구조, 사람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외부에서 주어진 종교... 저자가 말하공 싶은 것은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낮으면서 가장 보편적인 것. 가장 비천한 것이면서, 하루하루의 삶의 모습에 가장  근접한 것. 우리가 날마다 먹는 음식처럼 날마다 배설하는 똥과 방귀, 모든 것을 다 빼앗아도 언제나 사람들의 삶에 남아 있을수 밖에 없는 배설이 의미하는 근본적인 생명의 힘. 체제가 모든 의미를 빼앗은 비천한 가치체계에 속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그것을 통해 구원과 생명의 메시지가 살아날 수 있음을 웅변하는 이 책의 호소력. 책의 페이지마다등장하는 잘 배치된 흥미럽고 기발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저자가 효율적으로 웅변하는 강렬한 메시지.

바로 그런 것을 통해 남태평양의 한 구석의 독특한 삶의 모습이 전세계적인 인류의 보편성을 얻게되고, 그들의 삶의 아픔이 바로 우리들의 삶의 아픔으로 받아 들여질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삶의 한없이 허망함이 우리들의 마음에서 공감을 얻고, 아픔속에 삶을 살아가는 그 강한 생명력이 우리들의 삶 속에서 강한 공명을 일으키고, 그들이 결국 찾아가는 그 맹랑한 희망이 우리들에게 지쳐가는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불러 일으키는 정말 오랜만에 흥분을 자아내게 하는 무척 잘 쓰여진 이야기로 느겨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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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
알렉산드르 R. 루리야 지음, 한미선 옮김 / 도솔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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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총명한 젊은이였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소대장이 되었고, 두려움을 무릅쓴채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소대를 이끌었다.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그 젊은이의 뇌를 손상시켰다. 젊은이의 두피와 두개골을 뚫은 그 쇠파편은 뇌의 한부분에 박혔고, 그 부근을 손상시켰다. 그리고 그 주변에 생긴 감염으로 인한 염증 역시 신경세포들의 많은 부분을 손상시켰다.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생긴 반흔 역시 그 젊은이의 두뇌의 신경세포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방해했다.
 
목숨을 건졌다. 기적적으로. 뇌와 같이 혈류가 많이 통하는 뇌조직에 생긴 상처. 2차세계대전이라는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입은 상처.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그렇게 큰 상처를 입은 사람치고 생명을 건진것만해도 다행이었다. 다행히 파편은 그의 생명을 유지하는 뇌부분은 비켜서 지나갔다. 그래서 그는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하기에 지장이 없었다. 그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뇌는 많은 것이 상실된 상태였다.
 
잔인한 것은 외견상 정상처럼 보이는 그의 두뇌가 가장 중요한 기능중 하나인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에 중요한 손상을 입었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없는 두뇌는 그를 과거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기억상실. 기억상실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경험했던 개인적인 기억들의 소중한 부분만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는 알파벳을 읽는 법도, 간호사를 부르는 방법도, 간호사라는 명칭도, 급하게 소변을 봐야 한다는 말조차도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글을 읽고 쓰는 법을 알기 위해 이 책이 지어지기까지 무려 35년을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끊임없는 그의 노력과 불굴의 의지로 그는 더 나은 곳을 향해 날마다 일보 전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전진속도는 무척이나 더딘것이었고, 그 전진을 그가 생명이 붙어 있는 도안 평생을 계속해도 그가 정상인과 같거나 그 비슷해진다는 것은 무망한 일이었다. 그는... 가망이 없었다...
 
가망이 없다는 것, 정상인 처럼 되거나, 정상인과 비슷한 존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잔인하게도 그의 파괴된 대뇌는 그에게 어렴풋이 그런 비극적인 현실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덜 파괴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이 아무런 가망없는 것을 위해서 평생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는 만큼만 덜 파괴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노력의 모든 과정을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면서 30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기록을 만들도록 했었다.
 
이 책의 저자는 그가 남긴 그런 기록들을 보면서, 그의 기록들이 의미하는 인간두뇌의 작동방법을 역으로 추적하는 작업을 했다. 과학자들,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두뇌라는 미묘한 구조에 관해서 이제 많은 것을 안다. 그 지식중 적지 않은 부분이 바로 이 책에서 일인칭으로 등장하는 기록자 '자세츠키'라는 러시아의 한 청년장교 출신 뇌부상자의 기록에 빛진것이 큰 것 같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알 수 없는 두뇌의 작동방법에 대해, 고장난 두뇌 스스로가 남긴 소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곳이 이런 식으로 작동이 되지 않고 있다.." 고장난 뇌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이런 신호를 힌트로 삼아서 과학자들은 뇌가 이렇게 손상을 입으면 이런방식으로 뇌의 기능에 장애가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꾸로 "뇌의 이런 부위들은 고장이 나지 않았을때는 이런방식으로 작동을 하고 있었겠구나" 하는 추측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의 초인적인 의지와, 과학자들이 자신의 아픔을 통해 뇌의 부상이 가져오는 것에 대해 알아주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더 나은 치료를 받을수 있기를 바라는 그의 초인적인 의지때문에 가능하게 된 일이다.
 
뇌의 부분적 파괴에 의한 기억상실이라는 것은 우리가 영화를 통해보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기억은 데이터만으로 따로 존재하지 않았었다. 기억은 시각적 이미지와, 공간적 감각들이 함께 뭉쳐진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환자는 단순히 기억만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가 인간으로서 생활하기에 필수적인 공간의 감각, 시각적 정보, 계산, 연산, 추리, 정보처리,,, 같은 광범위한 능력에 손상을 입은 것이었다. 뇌손상에 의한 기억의 상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한 어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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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 장하준의 경제 정책 매뉴얼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 부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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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다리 걷어차기'로 세계경제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하는 장하준 교수가 아일린 그레이블과 공동으로 집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론을 담은 책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의 화두이자, 전세계를 압박하고 있는 경제현안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종의 대안정책집인 셈이다.

우리가 IMF 관리체제에 편입되면서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이후,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론들은 무성했지만, 사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내놓은 저서를 찾아보긴 힘들었다. 대안에 대한 모색은 있었지만, 대안정책을 구체적으로 내놓은 사례는 드물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신자유주의측의 공세는 끈질기게 이어졌다. 무엇보다 강한 호소력을 갖은 것은 우리가 지금 마주치고 있는 세계화라는 국면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세계화 시대에 맞는 패러다임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너무 강한 흡인력을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영어교육에 매진하고, 전세계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광지가 되어가는 현실. 너무 많은 유학생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현실은 우리가 신자유주의적인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못하게 하는 역활을 해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장하준교수는 영어로 출간되어 한국어로 번역된 이 세계화된 책을 통해 신날하게 신자유주의 이념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의 논박의 근거에 깔란 전제는 지금 세상이 세계화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기술의 발전에 의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수용과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의  여러가지 이론적 전제들을 차례 차례 논박해서 무너뜨린다. 특히 요즘 중국의 발전이나 과거 한국의 발전과 같은 경험들이 동아시아적 특수성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논박하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는 '사다리 걷어차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금 신자유주의적 개방경제의  세계의 표준을 자랑하는 영국과 미국은 사실은 자신들이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동아시아적' 폐쇄정책을 취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영미경제가 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물론이고,  아시아적 모델은 오히려 과거의 영국과 미국이 과거에 발전기에 실재로 채택했던 모델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이 책에서 어떤 경제도 '표준모델'이라는 것이 있을수 없다는 점을 통쾌하게 설파한다. 모든 경제는 자신들의 특수한 사정에 맞추어 그때의 자국경제의 내부와 외부의 상황에 맞도록 특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동일시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순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지만, 그에 대한 심정적인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논리적 대안이 부족하던 현실에서 이 책이 던져주는 희망의 메시지는 무척 감명적일 수 밖에 없다. 경제학적인 내용을 담았지만 일반인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이 쉽게 쓰인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대안을 찾아 내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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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의 지도
에밀리오 칼데론 지음, 김수진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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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의 지도'라는 이름의 특수한 지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그 지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적은 책이지만, 그 지도에 관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그 지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각축과 음모에 관한 이야기이다. 2차대전을 앞두고 제 3제국을 이루어 나기는 나치독일과 파시스트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 그리고 이 소설의 주된 무대가 된 로마에 위치한 또 하나의 거대세력 교황청 간에 벌어지는 힘겨루기와 음모에 관한 이야기이다.

뜻하지 않게 3중 스파이라는 복잡하고 위험한 정보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 주인공은 뜻밖에도 무척 이지적인 지성을 갖춘 회의하는 지식인이다. 열강이 거대한 격돌을 앞두고 긴박한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고, 그 각축의 장에 빠져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신념에 의해 세상을 재단한다. 거대한 힘들이 부딪히는 사이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홀린듯이 무엇인가 강한 신념을 가지고 그 신념에 자신을 의탁한다. 회의하는 인간보다는 무엇엔가 의지하는 인간의 삶이 더 쉬운 것일까.

주인공은 유일하게 회의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그의 조국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프랑코의 공화파 반란군과, 국민파 정부군의 저항운동에서도 그는 냉소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아카데미'가 공식적으로 프랑코를 지지하고, 국민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스파이로 신고하여 총살에 처할수 있다고 위협을 가하기도 하지만, 그 자신은 강한 국민파 지지자도 아니면서, 프랑코의 국민파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거두지도 않는다. 그런 그의 회의하는 '지성적인' 행보가 그를 위협으로 몰고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책은 또 유럽이 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는 1930년대의 사정을 내부의 시각으로 들여다 보게 해준다.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러가지 책들을 통해서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에 대한 내용을 마치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처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얼핏 너무 잘 아는 것 같이 생각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내가 별로 아는 것이 없었던 2차 세계대전 전야의 유럽의 상황에 대해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 수뇌부를 둘러싼 여러가지 일화들 중, 어렴풋이 전해들은 기억이 있는 신비주의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때 그의 허리를 찔러 빨리 숨을 거두도록 도왔다고 하는 롱기누스의 창이라든가, 세례요한이 예수를 판 대가로 받은 돈, 예수의 포피, 그리고 창조주의 지도같은 나로서는 그 이름조차 생소한 카톨릭적 전승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이 책에 중요한 소재들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로 성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주인공의 의식에 드리워진 전쟁이라는 것과,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모습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엇인가 의지할 것을 찾고, 구채적인 상황이라는 것에 매몰되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확신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주인공에게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도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지 못하는 그림자처럼 느껴지고, 동시에 실물을 가지고 있지못한 존재인 로마나 마드리드 같은 도시가 하나의 인격을 가진 실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스스로를 잉여의 존재처럼 의식하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격정과 전쟁이 사라지고 난 다음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힘들게 난세를 살아간 사람들 위에 슬픈 모습으로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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