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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판도라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4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새로운 보물을 발견했다. 일루셔니스트 시리즈는 항상 우리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보석같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보기 드물게 좋은 시리지이지만, 이 책 콩고의 판도라를 읽으며서 느끼는 즐거움은 그 어느때보다도 특별했었다. 좋은 책들보다 더 좋은 책을 설명하기가 힘들지만, 이 책은 엇비슷한 재미위주의 작품들이 난무하거나, 작품성은 있지만 지루한 책들이기 쉬운 독서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책이라고 부르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것 같다.
우선 이 책은 무척 흥미롭다. 이 무더운 여름, 이 골치아픈 세상. 좋은 양식을 가진 책도 좋지만, 우선 재미있는 책이라야 집중을 할수가 있다. 삽화한장도 없이, 꼬박 600페이지를 여백도 없이 빽빽한 글로만 가득 채운 이 책은 "좋은 책은 천천히 읽는다"는 나의 독서습관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집중력을 끌어내어, 무더운 주말을 이용하여 다 일어버리고야 일요이 밤늦게 잠에 들게 만든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은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 라인은 재미가 있는것 같은데 왜 이렇게 잔가직 많은가 하는 생각들이 드는 소설적 구조. 소설속에 소설이 등장하고, 소설속에서 다른 소설을 쓰는 이야기가 먼저 나오기도 하고. 소설을 써가는 과정이 그대로 세세하게 드러나고 한다. 소설속의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 드러나기도 하고, 심지어 자신이 쓰는 소설속의 등장인물을 사랑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산만해보이는 요인들이 책의 마지막에 하나로 귀결되면서 놀라울 정도의 완벽한 의도적 배치였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이런 소설적 기법(역자는 그것을 메타소설이라고 칭한다)의 특이성뿐 아니라, 소설속에 나오는 소설이 가지는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일견 황당해보이는 이야기 구성이기도 하지만, 그 이야기가 읽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오늘날 유행하는 장르소설을 어지간히 읽은 사람들에게는 자치 유치해 보일수도 있는 소재를 가지고 대단한 흡입력을 가지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힘은 굉장하다. 소재의 특이성보다(이 책의 소재도 특이하지만, 특이함이 이 소설의 힘의 요인은 아니다) 인간이 그 조건 속에서 행하는 결단과 노력, 그 속에서 느껴지는 로망이 주는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이 책은 그 길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끝이 나고 나서도 많은 페이지가 남아있다. 이야기는 다 끝이 났는데 왠 사족이 이리도 길게 필요할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지 말라. 그 뒤에도 앞의 이야기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흥미진지한 내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이 두터운 책의 흡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말을 온전히 이 책에 매달리게 만드는 대단한 힘을 가진 책이다. 얄팍한 손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 대단한 스케일의 로망, 흥분을 자아내게 하는 지적구조, 전혀예기지 않았던 결말... 과히 새로운 걸작의 발견이라 할만하고, 메타소설일 불릴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