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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바흐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강명순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나도 바흐를 좋아한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 아니가. 그의 몇몇 작품들을 인상깊게 들은 적이 있었고, 어떤 작품은 참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 클래식을 좋아하고 자주 들어왔지만, 요즘 라디오에서 클래식이 나오지 않으면서, 내 삶에서 클래식도 멀어지고 바흐도 멀어져갔다. 그와 그의 음악을 좋아했던 옛추억만 남았다. 그런데 다시 바흐가 내 곁으로 돌아왔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강한 열망도 다시 되살아났었다.
이 책 '히든 바흐'는 바흐의 인생여정을 추리하는 전기물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바흐의 작품이 이 책의 주요소재이지만, 바흐의 삶은 양념처럼 가끔 등장하는 한두 줄의 이야기로 끝이다. 그의 노년에 시력이 약했었다. 그가 실재로는 사진과 달리 뚱뚱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는 음악만 하며 살지 않고 행정적인 잡무도 처리했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지나가는 단편적인 말처럼 스치고 갈 뿐이다. 이 책의 주요한 테마와 인간 바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음악. 바흐의 음악이라는 특별한 소재를 대상으로 함으로써 매우 특별한 흥미를 자아내는 책이다. 평이한 문체로 쉽게 읽히는 글로 만들어진, 이 책이 읽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은 대단한다. 음악을 소재로 한 미스테리 스릴러 물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흥미와 재미를 가진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미스테리 물로 끝나지 만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의 눈에 따라서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로 읽힐수도 있고, 달리 읽을때 400여페이지에 달하는 긴 서사구조 속에 담긴 사람의 삶에 대한 진지한 탐구로 읽힐 수도 있는 책이다. 갈등과 고독, 소외와 열정, 상실과 죄책감. 이런 전통적이지만 끊임없이 변주되는 중요한 주제들을 음악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읽는 재미는 새롭지 않을수 없다. 특히 바흐라는 인물과 파이프 오르간이라는 다소 생소한 소재가 흔한 이야기에 강한 힘을 준다.
이 책은 음악에 대한 묘사가 매우 생생한 것이 독특하다. 특히 바흐의 미발견 원고를 읽는 장면이 압권이다. 한편의 음악을 읽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무려 10페이지 가량이나 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동안 주인공이 무엇을 한 것에 대한 이야기의 흐름이 아니라, 순수하게 음악이 전개되어 나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만으로 그많은 페이지를 흥미진지하게 채울수 있는 것은 음악에 대한 상당한 식견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다.
이 작가가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오르가니스트'라는 또 다른 유명한 작품을 쓰기도 했다는 것으로 보아서 이 작가는 음악, 특히 오르간 음악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진 작가인것 같다. 요즘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는 독일 작가의 글을 따라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유럽문학을 대표하는 프랑스 문학과의 차별되는 관점을 읽는 것도 좋은 흥미거리가 될 것 같다. 흔히 우리가 선입견처럼 가지고 있는 느낌. 어둡고 칙칙하면서 무게감이 느껴지고, 삶의 깊은 곳을 조명하는 깊이가 있는 문학.
이 책은 그런 독일문학에 대한 기대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흥미로움과 색다름까지 가지고 있기에 더욱 맛깔나고 깊은 느낌이 배어나는 책인 것 같다. 430페이지의 부피를 숨가쁘게 읽어내려갈수 있는 깊은 흡인력.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 느껴지는 삶에 대한 깊은 느낌... 그 정도면 충분히 좋은 책을 만났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