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포스 Olympos
댄 시먼스 지음, 김수연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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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항상 '이야기'에 굶주린다. 이야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사람의 삶의 근원에 대한 미세한 관찰을 하는 이야기도 있고, 하루 하루의 삶에 대한 비망록 같은 이야기들도 있다. 이 세상을 살다 쓸쓸하게 사라져가는 생명에 대한 찬가와 비가를 부르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가끔 이 소설 같은 방대한 규모의 대단한 스케일을 가진 이야기도 있다.

 

아더왕 이야기. 니벨룽겐 이야기. 삼국지. 용과 신탁이 나오는 황당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오래된 이야기가 주는 황홀함에 끊임 없이 빠져든다. 상당히 사실적인 내용의 삼국지가 갖는 그 방대한 스케일도 사람들을 깊숙히 빨아들이며 끊임없이 그 오래된 이야기의 세계로 몰입하게 하는 힘이다. 오래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대단한 규모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고, 그리스 신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때로 사람들은 오래된 고전을 가져다 그 내용을 재창조 한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새로운 내용들은 오래된 내용들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다. 사람들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인지, 우주를 향한 장대한 꿈을 담은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우리나라의 구전설화인 하계로의 긴 여행의 모티브를 발견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좀 더 대담한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 아예 과거의 이야기의 원전을 통채로 가져다 그것을 아득한 먼 미래에 투사하여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책 올림포스이다. 책의 이름부터 신들과 인간에 관한 그 오래된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다 썻다. 신들과 인간이 활동하던 무대가 바뀌었고, 그 무대의 규모가 더 크게 바뀌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우주였던 그리스와 소아시아 일대의 무대가,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상력의 무대인 우주와 은하들로 무대의 규모가 커졌다.

 

신과 인간의 갈등의 방법도 달라졌다. 제우스가 번개를 날리던 방식이 새로운 기계들의 군단으로 변용되었다. 과거의 신들은 미래의 우주로 그들의 주거지를 옮기고, 그들의 생활방식도 미래의 방식으로 바꾸었다. 아더와 이야기에 수많은 다른 버젼들이 있듯이, 올림포스의 신들의 관계설정에도 변화가 있다. 재창조는 원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고, 낡은 이야기가 오늘날의 사람들의 환상을 사로잡는 새로운 미래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인간은 과거나 미래나 약한 존재들이다. 이 책에서의 인간의 모습은 과거 칼과 활로 싸움을 하던 인간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는 의지를 가진 존재이고, 그 인간의 의지가 때로 신의 의지를 꺽을 수 있다.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고 인간은 신과 교섭하고 고통받고 떄로 신을 물리치기도 한다. 그래서 영웅들이 탄생한다. 약한 존재인 인간이 강한존재인 신을 이기기에 영웅이 되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딱 맞다. 책은 우리들의 상상을 최대로 확대한 미래이다. 그 미래의 모습에 우리가 투여할 수 있는 것은 정작 우리들의 과거의 모습이다. 현재 우리에게 가능한 과학적 논법의 장애를 벗어나서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빗어내는 많은 SF 작가들은 신화적인 이야기의 틀을 미래에 투사하곤 해왔었다. 아시모프적인 논리적 SF와는 또 다른 미학을 가져다 주는 낡음의 재창조를 통한 미래상을 읽으면서 우리는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느낌을 갖기도 한다.

 

과거는 미래로 가고, 미래는 우리들의 과거의 모습을 닮아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도 과거를 통해서 미래로 전진하는 하루 하루의 한걸음이다. 그리고 그 먼 미래 어느날, 오늘날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소유한 '과학'이라는 논리가 꺠어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벌어지는 그 먼 미래에, 그떄에도 인간이라는 종이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 아득히 먼 차워의 미래에서는 혹 이 책과 같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을까.

 

인간이 가질수 있는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시킬때, 우리가 만들수 있는 이야기의 틀을 최대한으로 넓혀볼떄, 현재의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득히 먼 모험의 끝에, 서유기의 삼장법사와 손오공이 구름을 타고 먼 여행을 떠나듯이 우리들은 미래의 우주에서 올림포스와 그 신들과 그들과 맞서 싸우는 새롭지만 옛스러운 인간이라는 존재를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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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렌 하우스호퍼 지음, 박광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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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생겼다. 그 벽을 경계로 한 사람이 세상의 나머지 부분과 갈라져 버렸다. 단절. 완전한 단절이 생겼다. 그러나 삶은 지속된다. 하루. 이틀. 한달. 두달. 일년.... 홀로 남은 그 사람은 어떻게 삶을 살아갈까. 그것이 바로 이 독특한 매력을 가진 책이 말하는 것이다. 제법 두툼한 부피를 가진 상당한 분량이 그 사람이 홀로 살아가는 과정을 표현한다.

 

세밀한 묘사. 이 책은 놀랍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가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화를 표시하는 " " 표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말은 한다. 홀로 남은 사람이 자신에게, 자신의 주변에 있는 동물들에게. 독백과 다름없는 말이지만 말은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정상적인 말일수도 없다. 무려 360페이지를 대화없이 끌어가는 소설이다.

 

이 책은 약 3년간에 걸친 기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토록 긴 시간을 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어찌 길고 대단한 서사가 존재하지 않을수 있을까. 서사란 많은 군중과 거대한 스케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방식의 소설이 존재할 수 있고, 이런 종류의 서사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발상 뿐만 아니라 소설의 작법에 있어서도 대단히 독특한 매력을 가진 책이 아닐수 없다.

 

이 텍스트를 두고 사람들은 서로 많은 말들을 하는 것 같다. 책의 말미에 있는 역자의 논문발췌분을 보더라도 '반전 소설' '판타지 문학' '문명비판' '페미니즘 소설' 같은 방식으로 이 책을 읽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문의 흐름을 볼때 역자의 입장뿐 아니라, 세간의 대부분의 평단은 이 책을 페미니즘 소설의 부류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생각하는 것은 내가 대단한 평론을 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나는 내 나름대로 이 책을 읽었고, 그저 나는 이 책에서 다른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하나의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사고의 흐름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수가 있다. 하나의 사과를 어떤 사람은 빨갛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맛있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선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영양학자가 보면 항산화 비타민이 풍부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잔류농약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소설에서 인간의 존재론적인 질문을 읽었다. 세상이 사라지고 더 이상 나와 아무런 접촉을 하지 않는 설정. 다분히 카프카적인 상황에서 한 사람이 어떤 현실과 마주치게 될까. 꼭 같은 아침이지만 그가 그 아침을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에 따라서 그 아침은 다른 아침이 될 것이고, 그 아침이 그에게 미치는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세상. 그 세상에서 그가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문명의 혜택의 부재. 인류가 쌓아왔던 고구한 지성을 빗나게 비추어줄  다른 사람의 존재의 부재. 그런 결핍으로 인한 아픔은 이 책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기에 책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농사일의 기본지식을 모르는 것에 아쉬워한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도 지혜도 찬란한 문명도 오락거리도 모든 것이 결여된 삶이지만 그 삶은 전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고통은 힘든 육체노동에서 나온다. 아니다. 그 육체노동을 유발하는 원인은 그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주변에 함께 데리고 있는 동물들을 건사하기 위한 필요하지 않는 노동때문에 요구되는 고통이다. 그 사람은 기꺼이 그 노동의 아픔을 받아들인다. 노동의 힘듬보다 더 절실한 것이 사랑하는 존재(동물)들의 부재이기 떄문이다.

 

때로 그 사람의 존재양식은 매우 부조리하게 보이기도 한다. 자신 스스로 벽을 넘어가면 먹을 것이 사방이 널려 있거나, 고통없이 즉각적인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느 것을 안다. 그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힘든 노동을 멈추기 위해서는 간단히 벽을 넘어서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는 대화도 되지 않는 동물들과의 삶을 위해 끝없는 노동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 그리고 그 죽음같은 노동의 중간에서 아무도 없는 자연위에 존재하는 사무치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한다.

 

그렇다. 나는 이 책에서 바로 그런 점을 읽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 생소한 공간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통해서 많은 감동을 받았고 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달리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이 책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풍부한 자양분을 가진 책은 읽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서로 다른 영양분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르게 읽혔던 이 책은 나같은 문외한에게도 이렇게 풍요로운 선물을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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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블루
김랑 글.사진 / 나무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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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곳곳에 관한 책들이 나올떄마다 내 마음은 조금씩 불안해져 간다. 우리의 여행문화가 발달하고, 그래서 우리에게 그 이름만 어렴풋이 알려진 곳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곳에 대한 이야기들과 사진들이 담겨진 책들이 하나씩 나올때마다,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소개될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지방에 대한 내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60억 인구가 사는 지구는 그리 작지 않다. 그러나 5000만명이 사는 우리나라의 여행가들이 지구 곳곳을 누비기 시작한지 불과 20여년. 우리에게 해외여행자유화의 시기는 30년을 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동안에 이제 우리는 지구의 거의 모든 곳들에 대한 정보를 서점에서 구할수 있게 되었다.  

백야가 작열하는 북구의 오지, 유럽의 끝 스페인과 포르투갈, 아득한 동물들의 땅으로만 알고 있던 아프리카, 남 태평양의 크고 작은 섬나라들, 추운 동토의 알라스카, 남극과 맞다아 있는 칠레의 남단,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이제 머리속에 지구본을 떠올리고 생각을 해보아도 아직도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좋은 책이 나올떄마다 내가 불안해지는 이유이다. 더 이상 좋은 책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럼에도 나는 오늘 또 한권의 책을 읽었고 그 책이 전하는 소식에 무척 만족을 한다. 이름은 익히 들었었다. 전쟁의 와중에 몇년간 신문을 장식했던 나라가 아닌다. 그러나 나는 사실 그 나라가 지정학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묘한 위치 어디쯤에 있다는 것만 알뿐, 그 나라 자체에 대한 지식을 가진 것은 없었다. 알려주는 매체도 없었고 그 나라에 대한 그리움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그냥 '분쟁의 땅'이라는 낙인이 찍힌 곳이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 블루'라는 책의 이름과 하얀 돌벽위에 비치는 에머랄드빛 바닷물, 그리고 운치 있는 등불 하나가 담긴 이 책은 그 표지부터가 분쟁의 땅으로만 막연히 생각되어온 크로아티아의 이미지를 확 바꾸어버리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책이었다. 책을 열어보면 저자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이 조근 조근 흘러나오면서 무엇보다 매력적인 크로아티아의 풍광에 푹 젖어버리게 된다. 

3000년의 역사. 유럽 여러나라의 전통의 혼합. 그러면서도 우리의 정서에 크게 벗어나지 않되, 충분히 이국적인 매력을 풍기는 나라. 도대체 저자는 이런 나라를 어떻게 발굴해내고 찾아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 나라의 이야기와 풍경들을 묶어서 보여주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유럽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 또 하나의 유럽의 모습. 

우주 옆에 또 다른 하나의 평행우주가 있다는 SF영화를 보는 것처럼, 유럽 바로 옆에 비슷하지만 색다른 매력을 가진 또 하나의 유럽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기시감과 이국적인 매력이 묘하게 합쳐지는 이 느낌은 사람의 마음을 거부감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만드는 것 같다.  

아드리아 해를 끼고 길게 뻗은 나라의 모습에는 온톤 아름다운 바다가 가득하다. 그 바다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거리의 모습에서 풍겨나는 정감어린 모습들이 크게 강조하지 않은 사진속에 잘 배어낸다. 사진과 함께 책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마치 그 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낄수 있다. 

또 하나의 나라. 또 하나의 책으로의 여행. 이젠 또 한동안은 그 에머랄드빛 영롱한 꿈결같은 풍경에 잠겨 세월을 이겨낼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좋은 책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과여 언제까지 여행책들이 나에게 이런 깊은 만족감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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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또 하나의 유럽을 만나다
    from 푸른하늘님의 서재 2009-10-17 12:11 
    세상의 곳곳에 관한 책들이 나올떄마다 내 마음은 조금씩 불안해져 간다. 우리의 여행문화가 발달하고, 그래서 우리에게 그 이름만 어렴풋이 알려진 곳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곳에 대한 이야기들과 사진들이 담겨진 책들이 하나씩 나올때마다,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소개될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지방에 대한 내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60억 인구가 사는 지구는 그리 작지 않다. 그러나 5000만명이 사는 우리나라의 여행가들이 지구 곳곳을
 
 
푸른하늘 2009-10-17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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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It! 나를 바꾸는 행동의 힘
게리 우드 지음, 유영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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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는가. 그러면 행동을 해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나를 포함해서) 행운이 나이게 찾아오기만을 바라고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타인에게 찾아온 행운이 나만을 외면하는 것 같은 느낌에, 자신의 불운을 원망하면서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헛되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뼈저리게 느꼈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닿게 된 내용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전까지는 나도 이 책에 대해 시큰둥한 느낌이었다. "do it"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책들을 읽느라고 보낸 내 청춘의 시간이 얼마나 되었던가.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읽었던 긍정적 사고를 고취시키는 다른 책들과는 무언가 다른 것을 가진 책이었다. 이 책이 시키는대로 한번 해보면 훨씬 더 나은 나를 만들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제 마음을 먹기 시작했고, 그것을 실제로 시행하고,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고, 과연 내가 기대한 것처럼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책이 아무리 좋은 지침을 내려주어도 내가 그것을 열심히 시행하지 않으면, 아니 책의 가르침을 충실히 시행하려는 의지가 부조하면, 혹은 나의 외부의 여건이 그런 것을 방해한다면 모처럼 먹은 내 마음도 쉽게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왠지 숱한 실패를 경험하고 이제는 이런 류의 책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도전을 하기를 주저하는 나에게도 이버만은 다를 것이라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그것은 이 책이 다양한 일ㄴ만이 아니라 무척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무슨 말이지 금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가치 목록'을 객관화하고 평가하도록 하고 그 가치목록 중에서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게 하는등 세부적인 사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퍽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따라 어디까지 실천할 수 있을지는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의 부분부분들은 내 속에 영원히 남아서 삶의 모퉁이마다 나에게 큰 도움과 지혜를 줄것이란 것은 확실하게 생각된다. 

이 책은 무한정 자신의 의지를 총동원하라고 부추키지도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나씩 하나씩 한걸음씩 걸을 것을 권고한다. 중요한 것은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자신과 대화를 하도록 하고, 자신을 향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몰려올 때 그것과 어떻게 맞설 것인지를 도와주는 부분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책은 세심하게 심리학적인 배려를 한 책이다.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라, 긍정을 위한 심리적 기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하나씩 실천하게 디자인된 책이다. 무척 좋은 시도고 무척 고무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현 위치와 자신이 세상과 마주칠때 마음속에 일어나는 기전들을 분석하고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 보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나감으로써 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견디어 내도록, 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버티어내도록, 그리고 이 세상이라는 낮선 괴물에 대해 좀 더 강한 내 모습을 갖도록 도와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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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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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 죽는다. 한번 나고 한번 죽는 것이 바로 인생, 사람의 삶이다. 누구도 여기에서 예외가 있을수 없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죽는다. 나는 죽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죽음을 향해 한발씩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느리게, 그러나 꾸준히.

 

태어남과 죽음의 사이. 그 공간이 바로 삶이라는 곳이다. 빛이 내려쪼이고 이야기가 있고 즐거움과 아픔이 있는 곳이다. 삶이 없는 곳에는 아픔도 없다. 삶이 없는 곳에는 즐거움도 없다. 헌신도 희생도 보람도 사랑도.... 그 무엇도 없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아무런 의식도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희미한 불꽃이 꺼지지 않는 동안만 존재한다.

 

이 책 에브리맨은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에브리맨은 또 영어로 보통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에브리맨은 또한 이 책의 이야기의 주인공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가계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일생동안 아침에 일어나 해가 질때까지 그 좁은 가게에서 일을 하며 그 동네 사람들과 삶을 나누며 자신의 아이들을 부양했다. 그리고 마침내 차가운 무덤에 몸을 눞히고 안식을 취했다.

 

그 아버지의 아들.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은 젊고 건강하고 호기심에 가득한 소년이었고 청년이었다. 많은 꿈을 가졌으나 절제할 줄 알고 차근차근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 결코 비천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은 동시대의 평균적인 삶보다 더 많은 성취를 이룬 삶이었다. 비록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그 원인은 그가 너무 많은 매력을 지닌 남자였기 때문이다.

 

한때 축복받은 듯한 삶을 살았던, 성실했고 건장했고, 인생을 즐길줄도 알았던 우리의 주인공도 나이가 먹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몸은 여기저기 아파오기 시작하고, 은퇴후의 비교적 안락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삶을 누리면서도 그에게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피부처럼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모든 노년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가. 이 책의 주인공의 노년이 유난히 더 한 것인가... 알 수 없다.

 

사람의 삶의 무게와 사람의 삶의 아픔을. 그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삶의 질감을 어떻게 타인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무게를 측량할 수 있겠는가. 그저 한사람이 태어났고 자신의 삶을 살았고 그의 생명의 희미한 불꽃이 서서히 스러져 가는 과정을 충실히 보여줄 뿐이다. 이 책은 과장하지 않고, 웅변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외치지 않고 그저 덤덤하게 한 인간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 혹은 보통사람, 에브리맨의 삶의 축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때 태양같이 빛나고 바다같이 싱거러웠던 젊음은 우리들의 손아귀에서 흘러나가는 모래알처럼 사라져버리고 늙고 지친 육신에 깃든 쓸쓸한 정신만이 남은 노년의 아픔을 이 책만큼 진솔하고 솔직하게 그린 책이 또 있을까. 역자는 후기에서 소름끼치게 무서운 책이라고 말했었다. 전혀 꾸밈이나 과장이 없는 책이기에 독자에게 주는 임팩트가 더 큰 그런 책일 것이다.

 

읽는 순간 시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책. 읽으면서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깊은 공감을 느끼는 책. 읽고 난 후 오랫동안 길고 긴 여운이 남는 책. 그래서 이 작가에게 그토록 많은 상과 칭찬이 쏫아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상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덤덤한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삶이 주어졌으므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그에게 아침이 주어졌으므로 글을 쓰는 것처럼. 우리가 늙어가는 오늘 또 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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