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를렌 하우스호퍼 지음, 박광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벽이 생겼다. 그 벽을 경계로 한 사람이 세상의 나머지 부분과 갈라져 버렸다. 단절. 완전한 단절이 생겼다. 그러나 삶은 지속된다. 하루. 이틀. 한달. 두달. 일년.... 홀로 남은 그 사람은 어떻게 삶을 살아갈까. 그것이 바로 이 독특한 매력을 가진 책이 말하는 것이다. 제법 두툼한 부피를 가진 상당한 분량이 그 사람이 홀로 살아가는 과정을 표현한다.

 

세밀한 묘사. 이 책은 놀랍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가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화를 표시하는 " " 표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말은 한다. 홀로 남은 사람이 자신에게, 자신의 주변에 있는 동물들에게. 독백과 다름없는 말이지만 말은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정상적인 말일수도 없다. 무려 360페이지를 대화없이 끌어가는 소설이다.

 

이 책은 약 3년간에 걸친 기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토록 긴 시간을 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어찌 길고 대단한 서사가 존재하지 않을수 있을까. 서사란 많은 군중과 거대한 스케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방식의 소설이 존재할 수 있고, 이런 종류의 서사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발상 뿐만 아니라 소설의 작법에 있어서도 대단히 독특한 매력을 가진 책이 아닐수 없다.

 

이 텍스트를 두고 사람들은 서로 많은 말들을 하는 것 같다. 책의 말미에 있는 역자의 논문발췌분을 보더라도 '반전 소설' '판타지 문학' '문명비판' '페미니즘 소설' 같은 방식으로 이 책을 읽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문의 흐름을 볼때 역자의 입장뿐 아니라, 세간의 대부분의 평단은 이 책을 페미니즘 소설의 부류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생각하는 것은 내가 대단한 평론을 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나는 내 나름대로 이 책을 읽었고, 그저 나는 이 책에서 다른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하나의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사고의 흐름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수가 있다. 하나의 사과를 어떤 사람은 빨갛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맛있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선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영양학자가 보면 항산화 비타민이 풍부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잔류농약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소설에서 인간의 존재론적인 질문을 읽었다. 세상이 사라지고 더 이상 나와 아무런 접촉을 하지 않는 설정. 다분히 카프카적인 상황에서 한 사람이 어떤 현실과 마주치게 될까. 꼭 같은 아침이지만 그가 그 아침을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에 따라서 그 아침은 다른 아침이 될 것이고, 그 아침이 그에게 미치는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세상. 그 세상에서 그가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문명의 혜택의 부재. 인류가 쌓아왔던 고구한 지성을 빗나게 비추어줄  다른 사람의 존재의 부재. 그런 결핍으로 인한 아픔은 이 책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기에 책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농사일의 기본지식을 모르는 것에 아쉬워한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도 지혜도 찬란한 문명도 오락거리도 모든 것이 결여된 삶이지만 그 삶은 전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고통은 힘든 육체노동에서 나온다. 아니다. 그 육체노동을 유발하는 원인은 그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주변에 함께 데리고 있는 동물들을 건사하기 위한 필요하지 않는 노동때문에 요구되는 고통이다. 그 사람은 기꺼이 그 노동의 아픔을 받아들인다. 노동의 힘듬보다 더 절실한 것이 사랑하는 존재(동물)들의 부재이기 떄문이다.

 

때로 그 사람의 존재양식은 매우 부조리하게 보이기도 한다. 자신 스스로 벽을 넘어가면 먹을 것이 사방이 널려 있거나, 고통없이 즉각적인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느 것을 안다. 그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힘든 노동을 멈추기 위해서는 간단히 벽을 넘어서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는 대화도 되지 않는 동물들과의 삶을 위해 끝없는 노동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 그리고 그 죽음같은 노동의 중간에서 아무도 없는 자연위에 존재하는 사무치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한다.

 

그렇다. 나는 이 책에서 바로 그런 점을 읽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 생소한 공간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통해서 많은 감동을 받았고 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달리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이 책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풍부한 자양분을 가진 책은 읽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서로 다른 영양분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르게 읽혔던 이 책은 나같은 문외한에게도 이렇게 풍요로운 선물을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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