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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껏 살아라! - 생의 끝자락에 선 아버지가 아들에게
티찌아노 테르짜니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마음깊이 와 닿는 걸출한 책
마음에 맞는 책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책이 참 많다. 흥미로운 책도 있고, 많은 지식을 잘 정리한 책도 있다. 세상 구석구석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책들도 있고, 오늘 하루의 삶에 도움을 주는 책도 있다. 그러나 진정 만나기 어려운 책은 나의 마음에 포근히 안겨드는 책이다. 마치 그 책이 나와 오랫동안 사귀어 온 친구처럼 느껴지고, 그 책을 읽어가는 동안 오랜만에 만난 그리웠던 친구와 긴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느끼는 그런 책말이다.
나는 얼마전 그런 책을 만났다. 바로 띠찌아노 테르짜니라는 복잡한 이름을 가진 사나이가 쓴 "네 마음껏 살아라."라는 이름의 책이다.

그의 삶의 괘적은 나의 삶과 상당부분 닮아 있다. 마치 다른 시대에 다른 장소에서 같은 꿈을 안고 살아간 사람처럼 말이다. 물론 나는 그처럼 여러나라를 돌아다니지도 못했고, 그가 이룬것처럼 많은 업적을 이루지도 못했다. 그처럼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성찰을 하지도 못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나보다 걸출한 재능을 지녔고, 또 삶을 열심히 살아간 사람이다.
그와 나를 연결시키는 단 하나의 공감대는 그가 추구했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나도 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점이다. 그가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며 모든 제약을 극복하고 우수한 인재로 탄생한 것처럼, 나도 그리 순타치만은 않은 삶을 살아왔었다. 그가 성공의 언저리에서 더 높이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처럼, 나도 그런 삶을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가 추구했던 이상들은 나도 한때 추구했던 것들이다. 그가 공감했던 것들은 나도 공감했던 것들이다. 다만 나는 공감만으로 그쳤을 뿐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고, 세상에 거의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그의 책을 읽으면서 깊은 공감을 느끼는 것은, 내가 가지 못한 길을 열심히 걸었던 그에 대한 존경이랄까, 외경심이랄까, 아니면 정신적인 유대감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노년을 맞이한 것처럼 나 또한 인생의 절정기를 지나가는 안타까움을 느끼기 때문일까....

나와 그를 구분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내가 망설이고 주저하고 있을때 그는 동가숙 서가식 하면서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론 나와 그가 살았던 삶의 시점은 다르지만, 내가 그의 나이쯤에 살며 행했던 일들은 그의 자유로움과 용기를 따라 가기에 한참 모자랐던 것이 사실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무작정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찾아가 마침내 사랑을 얻어냈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유럽의 각국을 신문기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돌아다녔다. 그에게는 신문기자가 될 경력이 미달되어 아무도 채용해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의 끈질김은 결국 그가 신문기자가 될 수 있게 만들고 말았다.
그의 치열한 삶을 바라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그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낀 것은 바로 그의 내면 때문이다.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면서도 사회에 헌신하고자 했고, 가정을 지키면서도 세계의 역사가 움직이는 격동의 현장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번번히 맨 먼저 달려갔던 사람이 그였었다.
68세대의 치열한 공방에 참여하고 있던 그를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의 인력을 친미세력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던 CIA였다. 그는 자신을 친미성향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CIA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아리러니 하게도 당시 자신이 추종하던 거대한 사회변혁의 현장인 중국을 연구하고자 중국어를 배웠던 것이다. 당시의 그에게 거대한 대륙에서 벌어진 사회주의 실험은 진보 그 자체로 느껴졌었다. 또 당시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있었다. 그는 이 책의 저자인 자신의 아들을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쿠바 비자를 만들어 놓기까지 했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분쟁지역에서의 저널리즘에 뛰어들기 위해 싱가포르에 집을 장만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물론이고 베트남에도 바로 들어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그는 사회변혁의 물결이 일렁이는 곳, 혁명과 참상이 일어나는 곳은 어디든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 다녔었다. 베트콩이 장악한 마을에 들어가 취재한 최초의 서방기자였고, 대학살이 벌어지던 캄보디아에 들어갔다 죽음의 직전까지 이르기도 했었다.


"진실을 찾아서 세상을 누비는 것, 그게 바로 저널리즘이다."
그는 신조는 바로 세상의 진실을 찾는 것이었다.
무엇이 진실이었을까. 베트남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융단폭격을 가하는 미국이 진실이었을까. 무엇이 진실이었을까. 거대한 사회주의 실험을 하면서 문화혁명의 깃발아래 잔인하게 학살과 문화파괴를 자행한 것이 역사의 진실이고 진보였을까.
그는 항상 세상이 보다 나은 것이 되기를 바랐었고, 세상이 보다 살만한 곳이 되기를 원했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삶, 더 정의로운 삶, 더 평화로운 삶을 살수 있기를 원하며 라오스, 미얀마, 네팔, 티벳, 중국을 드나들었다. 거의 모든 곳에서 그가 그곳을 처음으로 찾은 서방기자였었다. 그만큼 정보도 적고, 그만큼 위험도 더 컷었다. 그는 당 시대의 세상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거의 모든 곳에서, 그 자리에 그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68년. 그의 가슴을 두근 거리게 하던 바로 그 구호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 "상상력에 권력을!" 축구나 패션에 시간과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체 게바라에, 모택동에.... 세상을 바꾸는 전선의 일선에 서 있는 사람들에 열광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변화의 현장에 함꼐 있기를 원했었다.
그러나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가 저지른 만행과, 중국의 문화혁명이 가져온 폭력과, 티벳을 짓밟는 사회주의의 모습과, 민족의 독립을 되찾은 베트남이 부패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는 세상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닿게 되었다.

"혁명은 어린아이 같지. 처음에는 작고 귀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야비한 어른으로 변하거든."
이것이 바로 그의 꺠달음이었다. 그가 찾아간 곳은 인도였다. 그러나 그가 인도에서 본 것은 또 다른 허망함이었다. 빈곤과 무지, 혼란과 부패가 바로 인도에서 그가 본 것이었다. 쥐를 숭배하는 사원의 모습과, 수없이 많은 수도자와 현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그가 찾던 대답이 아니었다. 그토록 위대한 변화를 이루어냈던 간디의 비폭력혁명의 힘을 오늘날의 인도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인도를 떠나 히말라야 산 밑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명상의 끝에 그는 깨닳음과 암을 동시에 안은채 고향마을로 되돌아 왔다. 그곳에서 그의 아들과 함께 나눈 대화의 내용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그가 평생을 위험을 무릅쓰고 역동치는 세상의 변화의 현장을 누비면서, 또 히말라야에서의 그 긴 시간동안의 명상을 통해 얻은 꺠달음들을 그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근본적으로 인간 본성으로부터 시작해. 인간이 변하지 않으면, 인간이 질적 도약을 이루지 못하면, 물질에 대한 지배를 계속 추구하고 이윤과 사리사욕을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게 영원히 반복될 뿐이야."
"길은 가는 사람이 찾는 거야.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서는 절대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해."
"고뇌는 사물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야. ‘소유하면 잃을까 두렵고, 없으면 갖고 싶어 안달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을 것 같다. '모든 변혁의 처음은 열정에 사로잡혀 신선하지만, 그것이 성공을 거두고 공과를 따지는 시기가 오면 사람들은 변하곤 한다'고. 바로 내 주변에서도 일어났던 일이 아닌가. 4.19 세대라는 사람들이 하는 정치가 왜 저렇게 비민주적인가를 탄식하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은뒤, 그들이 권위적으로 비도덕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모든 변화에 대한 환멸과 실망감을 나 또한 느끼지 않았던가.
그토록 세상을 인식하고 나와 우주, 내 주변에 대한 성찰과 참과 옳음에 대한 갈구로 가득차 있던 내 젊음의 열기도 서서히 식어버렸다. 내는 대신에 주변을 벽으로 둘러싸고 내 자신과 책과의 대화만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선택을 했다. 이 책을 읽어서 무엇을 하고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하는 생각은 접어둔 채, 오로지 인식을 위한 인식에만 빠져서 지내던 시절이었다.
저자도 나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것 같다. 좌절과 허무를 겪은 그가 찾아간 곳은 인도였다. 그러나 그가 인도에서 본 것은 또 다른 허망함이었다. 빈곤과 아픔은 그에게 낮선 것이 아니었지만, 쥐를 숭배하는 사원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습. 그런 것은 그가 간디의 비폭력 혁명을 찬양하며 갈구하던 인도의 모습이 아니었다. 더더욱 그가 참기 힘들었던 것은 구도자 행세를 하며 인도에서 청춘을 소비하고 있는 서구인들의 모습이었다.
깨달은자, 혹은 깨닳음을 추구하는 자로 행세하며 인도의 지천에 늘려 있는 자들에 대한 느낌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는 인도를 떠나 히말라야 산으로 들어가 길고 깊은 명상의 시간이 침잠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가 마음의 편안함과 암이라는 병을 함께 가지고 그의 고향마을로 되돌아오게 되었을떄도 그는 결코 자신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나날이 다가오는 죽음이 두렵지 않고, 다만 자신의 앋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뿐이다.
바로 "네 마음껏 살아라" 그는 이말을 해주고 싶어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과 인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함께 보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장학금을 받으며 두개의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전세계의 변혁의 현장을 돌아다니며 세상의 변화를 추구했던 그. 더 이상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성을 잃어버리는 혁명들의 현장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좌절감에 빠져들었던 그는 깊은 침묵과 명상의 수련을 통해, 이제 몸은 늙은 현자의 외양을 하고 있으나 그의 마음은 어린 시절 세상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그 소년과 다르지 않다. 긴 세월을 지나 세상의 많은 모습을 보고 느낀 그가 느낀 것은 물질을 추구하지않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서 가고,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삶이 었다.
마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어떤 아집도 가지고 있지 않고, 무엇을 얻으려고 영악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삶을 살라고 그의 아들에게 이야기하고, 그의 아들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우리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새상은 늘 움직이고 늘 변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출렁이는 바로 그 세상이라는 배에 타고 있는 승객이자, 우리들 자신이 바로 세상이라는 배를 구성하는 부품들 중 하나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사회를 바꾸고자하는 열망이 분출하던 역동의 시대였고, 그가 누비고 다녔던 곳은 거대한 사회적 실험이 일어났던 그의 모든 곳이었다. 그 모든 경험을 겪은 후에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바로 물질과 편견과 욕망에 사로 잡히지 말고 '네 마음껏 살아라' 라는 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