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읽었던 에리히프름의 '소유냐 존재냐' 를 아직도 잊을수 없다. 콩 뽁아 먹듯이 바쁜 일상을 전쟁치루듯이 살아가는 동안 먼 기억속에 아스라히 잊혀져 있을만한 그 기억이 역설적으로 그 바쁜 삶을 종종거리며 살아가는 한가운데서 문득문득 불쑥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을 찬찬히 생각하고 음미할 여건이 되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나는 바쁘지만 뜨겁지 못한 삶의 한 가운데서 그 오래된 옛 기억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길을 걷다. 길 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를 보고 그 꽃을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과. 손을 뻗어 그 꽃을 꺽어 자신의 집 화병에 꼿아 소유하는 것을 비유로 든 그 책의 내용은 쉽고도 강렬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존재하는 것에 만족하고 더 나은 존재를 추구할 것이냐, 내가 접하는 모든 것을들 소유하기 위해 탐욕을 부리는 것이 더 나은 것이냐. 당시에는 답이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젊었고 세상은 단순하게 보였던 시절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 자신에게 묻는 말이 있다. 과연 너는 행복하냐고? 친구들은 그 말을 들으면 웃음을 짓곤 한다. "너는 아직도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하고 사느냐고!" 나는 마음 속으로 대답한다. "한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세상은 나름대로 살아가기 나름이다. 누가 누구의 삶에 대해 무어라고 말을 하겠는가. 살아남기 위해 온갖 힘을 다 쓸수 밖에 없는 이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찔한 시대에 말이다. 누군가 말했다. 세상은 평평하다고. 그렇다. 오늘날의 시대에 세상은 평영하다. 저자는 그말을 기회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으로 말을 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 대해서 공정한 기회를 가지며 무한정의 경재을 벌일수 있는 최초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 바로 지금 이시점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저자는 말한다. "아무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라!" 신 자유주의를 살아가는 방법은 그것 뿐인지도 모른다. 예전의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 그리고 그 싸움에서 살아남는 사람의 승자독식의 시대. 우리 눈앞에 보이는 애플과 구글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나는 다시 생각해본다. 헹복을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우리가 노력하는 이유는 단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삶. 나은 삶의 질을 위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잘 짜여진 복잡한 사다리의 더 위쪽으로 옮겨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까...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지금과 같이 완벽하게 짜여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그런 여유로움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해 도움을 주는 책을 최근에 접할 수 있었다. 바로 대규모의 전행적인 연구로 이루어진 이름 그래도 행복의 조건에 관한 연구의 결과를 정리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