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평점 :
드디어 오늘 나는 이 책을 모두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1월 6일부터 읽기 시작했으니 다 읽기 까지 한달이 넘게 걸렸다.
이유는 내가 한번에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유는 이 책을 읽는 중간중간 고비가 찾아와서 이기도 하다.
"서재 결혼 시키키"를 읽으며 느낀 고비라 함은 [주석이 많다!!!]
나는 어떤 책이고 주석이 많은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본문에서 눈을 돌려 주석을 본다는 일은 피곤하기도 하고 독서의 흐름을 방해한다.
물론 주석이 있음으로 인해 본문의 이해에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주석이 많은 책은 곧 어려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므로 ...
게다가 이 책은 왜 주석이 바로 그 장에 달려있지 않고 뒷장에 달려 있는 것이 많은지.. 본문을 보다가는 책 넘기고 .. 이런 반복적인 행위가 동반하므로 약간 짜증도 났었다.
특히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나니'라는 제목을 가진 편에서는 제목에서 부터 주석이 달려있다. 그것도 뒷장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다 읽어 낼 수 밖에 없었다.
앤 패디먼의 센스있는 인용과 유머를 보고 있자니 나를 귀찮게 하는 주석따위 그냥 대충 훑어주자 생각이 들어(주석을 읽어도 나의 짧은 지식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기에...) 마음을 내려놓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약간의 지루함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63페이지에 와서야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너덜너덜한 겉모습"이라 이름 붙여진 이 편에서 부터 나는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느낌 열심히 눈을 굴렸다.
이 편에서는 모든 문장이 나의 공감을 일으키며 내가 이 책을 사랑스럽게 보기 시작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나 역시 저자와 마찬가지로 약간은 손 때가 묻은, 읽은 표시가 나는, 누군가의 읽고 난 느낌이나 이런것들이 적혀있는 책을 꺼려하지 않고 나 또한 책에 낙서(라기 보단 나의 느낌 등등)를 서슴치 않으며 책귀퉁이 또한 마구 접어버리므로... 이 책의 귀퉁이도 많이 접혀져 있다.
"책 속으로 걸어들어갈 때" 에서 앤 패디먼은 <현장독서-책이 묘사하는 바로 그 장소에서 책을 읽는것>에 대해 찬양하는데 나도 책을 읽으며 그 속에 나오는 장소에 직접 가서 읽으면 더 좋겠다 라고 생각 해본적이 많이 있기에 현장독서의 신봉자라 자신을 칭하는 저자가 부럽기도 했다. 그녀는 실제로 남편과 함께 그랜드 캐니언에 가서 <<콜로라도 강과 그 협곡탐험>>이라는 책을 읽으며 그것을 실천했다.
그런 멋진 행위를 함께 해 줄 남편이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가!
그녀는 말한다. 남편과 결혼을 했고 그의 서재와도 결혼을 했다고.
(그녀는 매일 밤 남편과 자기전 낭독하기도 즐긴다!!)
그녀의 재치있는 유머는 "카달로그 독서"편에서 극에 달하는데 많은 책을 읽는것도 모자라 통신 판매용 카달로그 까지 심도 있게(?!) 읽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어느날 밤 자동차 설명서까지 읽어 버리는데...
이 정도면 활자중독 아닌가?!
나도 활자 중독 까지는 아니지만 화장실에서 손에 잡히는 치약의 뒷면 성분표 따위를 읽으며 볼일 보기에 집중한적이 많으므로 약간은 다른 성질의 것이지만 그녀에게 공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나의 책읽기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소중한 재산이자 능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자녀에게 책을 읽히고 싶으면 부모가 먼저 책을 좋아해야 한다.
나도 나의 아들들이 책을 좋아하고 즐겨읽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니 내가 느끼는 책읽는 즐거움을 내가 죽을 때까지 잊어서는 안되겠다...
아... 이 책에 대해 할말이 많은데
큰애가 어린이집에 돌아올시간이므로 이만 줄여야겠다..
-----------------밑줄긋기를 작성하면서 또 한가지 붙이자면------------------------
앤패디먼의 친구중 서점에서 일했던 친구가 존 클라이브라는 역사학자가 죽고 책을 옮기기위해 그의 집에 갔을 때 "그의 서가를 보았을 때에야 클라이브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는 느낌이 들었어."라고 말했을때 나는 얼마전 감명 깊게 읽었던 스토너의 한 대목이 생각이 났다.
스토너의 밑줄긋기에서도 남겼던 글귀이다.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스토너의 저 대목을 읽으면서도 누군가의 서재는 바로 그 누군가 자신이다 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서재 결혼 시키기"에서도 스토너의 서재를 정성스레 만드는 부분이 연결이 되었다.
나의 책장은 아직 미완성이다.
나는 아직 책에 다시 재미를 붙인 지 얼마지나지 않았고 나의 취향이라든지 깊이가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되는대로 읽고 싶은대로 읽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깊이있는 책읽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이렇게 책을 읽으며 느낀 또하나의 즐거움은 책은 따로 각각의 제목과 내용이 있지만 책끼리 연결되는 순간을 만나는 것이다.
"서재 결혼 시키기" 읽다가 "스토너"를 연결시켜 생각 한 것처럼...
언젠가 내가 더 많은 책을 읽고 기억하고 있을 때는 이런 책과 책끼리의 연결이 더 많이 일어날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의 책읽기는 또 얼마나 더 즐거울까?!
벌써 기대되고 설레인다.
"진정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옛 `이동 도서관`의 <<톰 존스>>나 <<웨이크필드의 목사>>의 덟혀진 책장이나 너덜너덜한 겉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었는지!" 찰스 램은 말한다. " 그 책들은 기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 수많은 손길에 대해 말해 준다!누가 책장이 조금이라도 덜 더럽기를 바라겠는가?" 절대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런 번득이는 눈길을 잘 안다. 내가 독서에 대해 느끼는 것이 바로 그런 마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워터 피크 안내문이라도 읽을 것이다. 소도시의 모텔방에서 홀로 지낸 수많은 밤에는 전화번호부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당시 내 아파드에서 적어도 두 번 이상 읽지 않은 유일한 문서 자료를 찾아내어 숙독하는 것으로 절망적인 불면증과 맞선 적도 있다. 그 잘는 내 룸메이트의 1974년형 도요타코롤라 안내서였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중독, 금단 증상, 갈망,공황), 수동 기어 조작 설명이 내게는 단테가 <<천국편>>31곡에서 보여준 영원한 장미의 비전만큼 아름답게 느껴졌다.
"카달로그적 명령"
억센 발톱을 쉽게 깎아라. 추한 균상종을 없애라. 밤에 이를 갈지 마라. 애완동물의 역한 입냄새를 없애라. 당신의 가정을 마사지실로 바꾸어라. 베이글을 즐겨라. 우회하지 말고 곧장 응급실로. 12가지 아주 멋진 스타일의 종이 신발을 만들어 산책을 나가라. 스와터 일렉트로닉 인섹트 터미네이터로 죽음의 밥상을 차려줘라. 역겨운 녹색의 찐득거리는 액체를 10미터 이상 쏘아 주어라. 플라스틱 틀에 복숭아 맛 젤라틴을 채우고, 몇 시간 뒤에 살결이 달라진 왼손을 뽑아내라.
아이가 책을 가까이 하게 하는 방법 가운데 책을 쌓고, 세우고, 다시 배열하는 등 책에 온통 지문을 묻히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생각할 수 없다.
오빠와 나는 우리 부모의 옷장을 엿보기보다는 그들의 책장을 훑어봄으로써 그들의 취향과 욕망, 갈망과 악덕에 대한 엉뚱한 환상에 젖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아가 그들의 책꽂이에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 딸은 일곱살인데, 다른 2학년 부모 가운데는 자식이 재미삼아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 집에 가 보면 아이들 방에는 값비싼 책들이 빽빽하지만, 부모의 방은 텅 비어 있다. 그 아이들은 내가 어렸을 때 경험한 것과는 달리 자기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반대로 현관에 들어섰을 때 책꽂이에 책이 보이고, 침대맡 탁자에 책이 보이고, 바닥에 책이 보이고, 화장실 수조 위에 책이 보이면, 내 방! 어른은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을 열었을 때 무엇이 보일지 안 봐도 뻔하다. 물론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나는 집이 없는 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어. 서점에는 모두 집 없는 책뿐이잖아....그의 서가를 보았을 때에야 클라이브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는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나는 책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소유한 다른 책들과 공존할 때에만 가치를 얻게 된다는 것, 그 맥락을 잃어버리면 의미도 잃어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