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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곁에 두는 마음 - 오늘 하루 빈틈을 채우는 시인의 세심한 기록
박성우 지음, 임진아 그림 / 미디어창비 / 2020년 11월
평점 :
시인의 감성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기록들이 잔잔하게 밀려오는 글이다.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하며 미숫가루를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박성우<삼학년> -가뜬한 잠-
엉뚱한 삼학년 아이가 미숫가루를 혼자 먹으려고 우물에 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하러 나간 엄마 아빠,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과 모두 나눠먹으려는 생각으로 통크게 미숫가루를 전부 풀었을 상상을 하니 웃음이 났다.
우물물로 미숫가루만 타는 것이 아니라 밥도 하고 빨래도 해야한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한 천진한 아이의 마음을 시로 적어내는 순수한 감성을 지난 사람이 박성우 시인이었다.
시인이 적는 산문의 문장은 이미 시의 문장이다.
*쑥부쟁이 줄기에 매달려 있던 가을볕이 연보랏빛 쑥부쟁이로 피어나는 시월이다..
시월을 나타내는 시인의 문장에 가만히 눈을 감고 지난 시월을 떠볼려본다. 시골에서 자라난 시인은 글의 여기 저기에 나른한 고양이의 모습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산행을 마치고 다른 길로 돌아오는데 파란 잉크 방울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 같은 작은 나무가 눈에 띈다. 노린재나무다. 딸아이와 그 친구들 덕에 시 한 편 너끈히 쓰고도 남을 마음의 잉크를 얻어 집으로 간다.」
나는 노린재나무를 본 적이 없다. 딸아이와 친구들과 산행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시 한편 쓸만한 마음의 잉크를 얻어오는 넉넉한 마음, 시인의 시선은 열매를 보아도 잉크방울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시인은 책을 읽고 시를 쓰던 젊은 날, 달은 외로운 가슴에 빛이었고 길이었다고 했다. 불을 끄고 방에 누우면 달빛이 창호지 문으로 새어 들어왔는데 시인은 이 달빛을 직어 그 위에 시를 썼다고도 했다.」
시인의 유년시절의 아주 작은 기억부터 시작해서 안도현 시인이나 김용택 시인, 천양희 시인과의 만남, 아내와 딸과 소소하게 사는 이야기, 시를 짓는 사람으로서의 여러 감상들을 편안하게 쓴 글이다.
읽고 싶을 때 어디든 펴서 읽으면 마음이 움츠러드는 요맘때 즈음, 차가워지는 가을바람에 마음이 누그러질 것 같은 온화한 글들이다.
<마음 곁에 두는 마음>
제목에서 풍기는 시인의 내적인 따스함이 충분히 담겨있다. '곁'이라는 말에서 주는 잔잔하고 포근한 마음,
누군가에게 곁은 내어주는 평안함과 안온함,
어릴 적에 바라보던 뜰과 마당, 나무와 햇볕, 그리고 나른한 오후를 즐기는 고양이나 새들이 마구 찾아와 주는 글들이라 읽는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시를 필사하며 시인의 마음으로 살고 싶은 내 마음과 비슷해서 아끼며 읽었다. 특별한 사람이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듯, 또 누구라도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간절함이 빚은 시인의 길들이 빛나는 삶의 언어들이 가을낙엽처럼, 겨울 눈처럼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