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힘 - 사유하는 어른을 위한 인문 에세이
최준영 지음 / 북바이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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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수원 화성행궁에 위치한 <책고집>작은 도서관에서 최준영 작가님의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책고집>은 책을 매개로 한 소통과 연대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최준영 작가님의 고집이 만들어 낸 장소이다. 시작은 미약했고 아무 것도 없이 본인 집에 있는 2천여권의 책을 갖다 놓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이 곳에서 나는 문학을 만나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부족과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과 소소하게 보이지 않는 봉사와 나눔의 따스함을 배웠다.
개인운영으로 지원받는 곳이 따로 없기 때문에
회원들 개개인의 회비를 모으거나 최준영 작가님께서 나가시는 강의 강사비로 충당되어 초청되는 강사비나 운영비가 빠듯하다. 대개는 너무나 감사하게 정해진 적은 강사비도 마다않고 와 주신다. 몇몇 작가님들께서는 책고집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기꺼이 강의료 없이 강의를 해 주신다는 말씀을 전해 듣는다. 아마도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통하기 때문이라 믿는다.

이 책은 자기 자신과 타인의 결핍을 마주하고 그것을 원동력 삼아 인생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 작자가 세상에 건네는 이야기이다. 강연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 그리운 어머니, 지금‧여기 우리네 삶의 풍경들, 인문독서 공동체 책고집, 책과 영화, 사회와 정치에 관한 단상과 비평 등이 엮인 글타래에는 우리가 좀처럼 보려 하지 않는 세상의 내면을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지은이의 시선이 담겨 있다.

부자든 가난한 자이든 누구나 문화에 대한 갈망이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그저 밥과 잠자리 해결이 전부가 아니었다. 가난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고 가난한 자와의 인문학적 관계가 현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워낙 힘이 막강해서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인문학 열풍은 불고있으나 사람을 모으는 인문학쇼나 이벤트적인 현상으로 도출되어버리기도 한다.

노숙인이 직업과 집이 없어서 노숙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위에 없는 것이 노숙인이다. 사람이 없고 자신을 잃으면 그 사람은 노숙인이 되고 자존감마저 떨어지먼 구걸을 하게된다.

강의를 듣고 다양한 인생들을 간접 경험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도 다양해졌다.
하고싶은 일을 하는 자유가 아니라
해야하지만 하지 않을 자유를 생각하고
이제 `결핍'을 채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건,
어쩌면 '과잉'을 덜어내는 쪽이 아닐까란 생각도 한다.
결핍에 내재된 그 힘을 알기 때문이다.


■책 속의 문장

/
노동현장을 전전할 때였다. 주로 모래와 시멘트를 섞는 일을 했는데, 뜻밖에도 거기서 느림의 힘을 알게 됐다.
몇 삽 크게 푸고 허리 펴기를 반복했더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암묵지를 알려주셨다.
“욕심내서 한 삽 크게 뜬다고 일이 빨라지는 게 아니야. 조금씩 떠서 천천히 해봐.
그럼 거짓말처럼 힘도 덜 들고 일도 금방 끝낼 수 있을 거야.”
ㅡ <소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다> 중에서

/
사람은 본디 부족한 존재다.
부자이거나 권력자라고 예외일리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도가 더 심할 테고,
부자들 역시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산다.
어쩌면 결핍은 우리네 삶의 원형일지 모를 일이다.
결핍을 대하는 태도에서 삶이 갈린다.
어떤 사람은 결핍으로 인해 좌절하지만 어떤 사람을 결핍을 경쟁력으로 승화시킨다.​
ㅡ<결핍의 힘>중에서

/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노래가 하필이면 장사익이 부르는 <꽃구경>(시인 김형영의 시에 곡을 붙였다)이었다.
노랫말 후미의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라는 대목에서 심장이 멎는 듯한 흉통에 몸서리쳤던 기억이다.
이따금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도리 없이 그 노랫말이 뒤미처 떠오른다.
― <꽃구경>중에서

/
알껍데기는 밖으로부터 오는 힘에는 알을 품은 어미가 무게를 견디는 것만큼 단단하고, 안으로부터 오는 힘에는 쉽게 깨고 나올 수 있을 만큼 약하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 마음이 알의 원리를 닮았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풍파에는 끄덕하지 않지만 자식의 일에는 한없이 약해진다.

자식이 알이라면 어머니는 알의 껍데기다.
스스로 알을 낳고 변방에 물러서서 알의 내부를 지킨다.
그러다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닌 알에서 자란 새끼의 몸부림에 기꺼이 무너지고 부서진다.​
ㅡ<단풍과 어머니의 주름>중에서

/
다시 기자는 묻는 사람이다.
묻는다는 건 진실을 알기 위한 기본적인 노력이며, 정당한 문제제기이고 엄정한 비판이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리 없는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기자는 사실을 근거로 끝없이 의심하고 묻고 비판하고, 다시 따져 물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실은 수면 위로 올라온다.
묻기를 멈추고 듣기만 하는 기자라면 그는 더는 기자가 아니다.
― <기자는 묻는 사람이다> 중에서

/
살아있는 모든 것은 자기 냄새를 갖는다.
꽃에만 향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돌에도 흙에도 냄새가 있다.
나무나 풀, 물과 흙과 날짐승과 들짐승에도 고유한 냄새가 있다.
바람은 세상의 모든 냄새를 실어 나르는 냄새의 전령이다.
사람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다고 권력이 이동됐다고 보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관료권력과 언론권력은 여전히 그대로다. 과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국정개혁에 애를 먹은 이유가 그것이었다. 청와대 비서실을 개편하고, 장차관을 바꿔봐야 일선 공직사회를 장악하지 못하면 개혁은 물 건너가기 일쑤다.
― 「주사와 사무관」 중에서

/
선한 품성을 가졌다고 해서 저절로 선한 결과를 얻는 건 아니다. 선한 품성과 의도를 떠받칠 실력을 길러야 하고 현실적 난관을 뚫어낼 의지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선한 결과에 이를 수 있다.
ㅡ<대통령의 혼밥>중에서

/
험담은 최소한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하는 본인과 험담의 대상자, 그 험담을 듣는 사람.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왔거늘 왜들 그리 서로를 죽이려 하는가.
여럿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러라고 받아둔 선물이 산더미를 이룬다.
밝고 빛나는 삶을 살라고 불을 선물받았고,
둥지를 짓고 살라고 지구라는 아름다운 터전에 왔다.
소통하고 공감하라고 수도 없는 생각을 말과 글로 벼려왔다. 그 모든 고귀한 선물을 왜들 그리 엉망으로 탕진하는가.
왜들 그리 증오와 환멸의 삶을 살려고 하는가.
― <언어의 한계는 나의 한계이다>중에서

여유로운 마음부자가 되기까지 참으로
굽이굽이 에돌았다.
그 덕분에 마음에 근육이 생겼고
삶이 즐거워졌다. ​

결핍의 힘이다
결핍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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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새움 세계문학
조지 오웰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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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영원한 스테디셀러이기도 한 [동물농장]은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필독서로 손꼽히는 책이다. 동물들이 나오는 동물농장이 우화적인 설정이라고 해서 아이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책은 아니라서 읽을수록 조지 오웰의 단순화되었지만 개성있고 강한 정치성을 가진 소설이라는 것에 놀랍다.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이 읽는 책에는 당연한 이유들이 있을 터이다. 작품의 가치를 운운하기에는 좁다란 식견에 넘치는 부분이고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어느 문장에 어떤 풍자를 투영한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던 책인데 지난 해 <책읽어 드립니다> 프로그램에서 한번 듣고 나니 조금 쉽게 다가섰던 책이다. 1940년대에 지금과 같은 과학적인 매래를 예측할 수 없던 시대에 나온 우화로 가히 SF급이라는 설명이 와닿았다. 과학적인 상상이 불가피하던 시절에 자연과 동물에 감정을 이입한 것이라는 이야기에 솔깃해서 다시 읽던 적이 있다.

기존의 고전을 다르게 번역하고자 노력하는 새움출판사의 노력은 이번에도 헛되지 않았다. 어려운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으로 탄생한 새움출판사 버젼의 [동물농장]은 직역을 하며 원작의 뜻을 가장 가깝게 접근하고 저자의 의도를 담아내고자 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여러 이유로 출판이 거부되었던 원고이기도 했다. 단행본 한권이 되기에 너무 짧은 양이나 상업적 실패도 고려대상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정치상황과 관련지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될 당시에는 작가 서문이 없었다. 뒤늦게 밝혀진 사정에 미루어 작가는 정식 출판을 포기하고 자비 출판을 할 요량으로 검열을 비난하는 서문을 썼다가 출판계약이 되면서 뒤늦게 실리게 되었다는 후일담이다.

이 책에서는 서문 대신에 자신이 왜 이 작품을 쓸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세상에 밝힌 그의 대표적 산문 <나는 왜 쓰는가>를 번역해서 실었다. 그 안에서 작가는 [동물농장]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완전히 의식하면서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시키려 애썼던 첫번째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정서 번역가는 기존의 단어를 달리 번역했다. 'Manor Farm 메너농장'이라는 고유명사 대신 '장원'이라는 말을 불러왔다. 또한 Major를 '메이저'라는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고 '소령'이라는 단어로 나름의 의미를 살려 직역한 점이 특이하다.

우화로 읽었을 때 <동물농장>은
특정한 지역, 즉 소비에트 체제라는 시대의 권력형식을 내세운 역사적 정치풍자의 수준을 넘어 독재에 대한 우의적 정치풍자로 넓어진다.
친숙하게 알고 있던 시대상황을 동물들을 내세운 <동물농장>으로 비유한 소설이다.
풍자와 우화라는 두 서사 형식을 결합한 <동물농장>은 우화이기 때문에 어떠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비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인간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존재요. 그들은 우유를 내놓지도 못하고 알을 낳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쟁기를 끌기엔 너무 허약하고 토끼를 잡을 만큼 빠르게 다릴 수도 없소. 그럼에도 그들은 모든 동물의 왕이죠.

그들은 동물들에게 일하도록 하게 만들고는 굶어죽는 것을 막을 만큼의 최소한을 돌려주고 그 나머지는 자신들을 위해 보관합니다.

인간의 모든 관습은 악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어떤 동물도 같은 동물을 탄압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약하든 강한든 영리하든 단순하든 우리는 전부 형제입니다. 어떤 동물도 서로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합니다. ​

때때로 작업은 고됐다. 도구들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설계되어 있었고 서 있는 것과 관련한 어떤 도구도 사용할 수 있는 동물이 없다는게 무엇보다 문젯거리였다.

동물들은 일찍이 상상도 못했을 만큼 행복했다. 입에 넣는 먹거리는 그지없이 달콤했다.
그것은 과거 인색한 주인이 마지못해 동냥주듯 던져주던 그런 먹이가 아니라 동물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위해 생산한 먹이, 진정한 그들 자신의 먹이였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기생충 인간들이 사라지고 나자 동물들에게는 먹을 것도 더 많이 돌아갔다. ​

이제 동물들과 인간의 관계는 옛날 같지 않았다. 물론 동물농장이 지금 잘나가고 있다해서 그에 대한 인간들의 증오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증오는 전보다 더 강했다.

그러나 농장의 이런 사정은 바깥세계가 알지 못하게 감출 필요가 있었다. 풍차붕괴 소식에 힘을 얻은 인간들은 동물농장에 대한 거짓말들을 새로 지어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받은 충격은 컸고 기분은 비참했다. 그들은 스노볼과 한패가 된 동물들의 반역이 더 충격적인 것인지, 아니면 방금 목격한 참혹한 보복이 더 충격적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많은 동물들이 그 말을 믿었다. 그들 생각으로는 지금 그들이 배고프고 몸 고달픈 이승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어딘가 더 나은 세상이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는 건 너무도 옳고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말인즉 지금의 사정이 옛날보다 더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고 앞으로도 더 나아지거나
더 못해지지 않을 것이며 굶주림과 고생과 실망은 삶의 바꿀 수 없는 불변법칙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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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줄도 모르고 지쳐 가고 있다면
김준 지음 / 부크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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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뿐하게 살아가기 ​
꼭 잘 쓰려고 마음 먹으면 연필심이 부러진다. 먼 산 보듯 조금 더 가벼워 져야지. 애써도 안되는 일은 제쳐두고 어찌할 수 없는 일에는 신경을 끄고.

/
내가 살았다는 흔적​
좋은 글을 만났을 때 다음에 볼 수 있도록 모서리를 살며시 접어 두듯이, 살아가면서 귀퉁이를 곱접어 둘 수 있는 순간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

/
지친 줄도 모르고 지치지는 않았는지,
고마운 사람들에게 관심이 모자라진 않았는지, 내가 나에게 못해 주지는 않았는지, 추억 거리가 될 수 있는 순간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멀리 미루지는 않았는지.

/
가는 실 위를 걷는 사람처럼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자주 다정한 동시에 때로 까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깊이 공감할 줄 알면서도 거절에 능숙한 사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조언하는 사람. 자기 색깔을 확고하게 가져가면서도 사회에 잘 스며드는 것도 중요하다.

/
말의 수명​
우리는 종종 표현을 감춘다. 어떤 이유로 표현을 유보했건 그 말들은 곧장 무덤으로 간다. 그곳엔 아주 많은 단어들이 잠들어 있다. 모든 말에는 수명이 있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어떤 경우는 그 말을 들을 사람이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
애정하는 시인은 전했다.
여행자가 아닌 마치 심부름꾼처럼 우리는 너무 서둘러 지나쳐 왔다고. 후회섞인 그의 태도가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늦게나마 실감한다. 그리고 이내 결심한다. 매번 혼자여도 새 하루가 붉어지면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자고.​

/
우리는 한껏 유연해져야겠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끄덕여 넘기는 것. 실패는 끝없는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 시절 가녀린 낙화다. 떨어져 떨어져 우리 쌓인 곳에 다시 움트는 초록이 있을 거라고 나는 아주 믿고 있다.


*가벼운 책 속의 글밥들이
봄날의 꽃비처럼 흩날리고 어지러운 마음에 전해지는 말의 다정함.
작은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에세이.
지친 줄도 모르고 지쳐가고 있지는 않은지
나부터 살펴보자.
오늘도 가뿐하게 살며 내 삶의 흔적들을 남기는 일.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의연히 나를 지키며 사는 일이 때로는 버겁지만 누군가의 심부름꾼이 아닌 내 삶의 주인으로 여유롭고 즐거운 여행을 시작하는 하루, 홀가분하게 거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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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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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난설헌>은 최문희 작가를 통해 조선시대에 태어나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여자의 삶을 매우 꼼꼼하게 바느질하듯 그려낸 작품이다.
조선시대 여자의 삶이 서럽게 내려앉아 속울음을 참고 참다가 두 번을 펑펑 울고 책을 덮었다.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난설헌>은 조선 중기의 천재적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그미의 빛나는 시편들이 한없이 고단했던 삶의 고통을 딛고 살아가는 과정임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한 문장, 한 문장,
도도함과 정갈함 속에 펼쳐지는 애틋함이 서려 읽는 내내 슬픔이 함께 흘러내렸다.

결혼 이전 딸도 아들처럼, 아니 아들보다 더 귀한 존재로 존중해주었던 극히 예외적인 집안에서 성장해 마음껏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며 살던 그미, 초희 아가씨 허난설헌.
그러나 그미의 삶은 결혼하는 순간,
조선 중기의 엄정한 현실질서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얼어붙듯이 수직낙하한다.

그미의 천재적인 재능은 불온시되고 금기시 되며 오히려 뛰어난 재능이 그미의 삶을 고단하게 하는 장애요소로 작용한다. 그러한 삶으로 인해 더욱 처절하고 처연하게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작품을 지어낸다.
(그미*주로 소설에서 ‘그녀’를 멋스럽게 이르는 말)

"오늘 초희는 자꾸만 구겨지는 마음이 다림질되지 않는다. 덜 마른 빨래를 손다림질하는 어머니 김씨 곁에서 초희가 익힌 것이 있다면 삶의 구김새도 숯불 다림질이 아닌 맨손으로 곱게 매만질수 있다는 손다림질의 지혜였다.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고 부릴 때도 손다림질의 온기로 다독이라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가르침이라고 초희는 알아들었다."

마음의 다림질이라는 지혜로운 말에 온기가 실렸다. 가정에서 따스한 사랑으로 남녀의 차별없이 글공부를 하며 시를 짓는 안온한 남매를 상상해본다. 붓을 들고 시를 끊임없이 지어내는 천재 시인 난설헌의 아리따움에 더욱 마음이 시리다.

"생각은 스치고 지나가버리는 바람살이 아니다. 빗물이 고이듯 생각이 고이면 궁리가 생기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각이 허물리며 둥글고 휘어지고 곁가지가 생기게 마련이다. "

"살림살이 보다는 서책을 가까이 하는 아이였고, 그런 초희를 달리 질책하거나 제재를 가하지 않은 부모님이었다. 아버지는 딸자식이라고 굳이 말과 행동에 쇠추를 달지도 않았고, 삼엄한 법도나 예절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재주가 있고, 뛰어난 문장가라 해도 이 땅에 태어난 아녀자의 분수란 죽어지내야한다는 것, 우실이 초희에게 일러줄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조선에서 여자의 삶이 어떠한 재주가 있다한들, 그저 죽어지내야 한다는 것이 답답하고 가슴에 사무쳤다. 읽는 독자가 이러한대 그 시대를 살아낸 조선의 여인들이 한없이 가엾다.

자꾸만 왜? 그런 집안과 혼인을 성사시켰어야만 했는지 되묻고 되물어본다.
사람의 심장이 녹아내리는 모든 일들을 겪어낸 여인은 더이상 바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이생의 삶에 부질없음과 내려놓음이 편한 마지막 그길로 가려는 난설헌의 스물일곱 마음에 눈물이 툭 떨어졌다.

"문득 서글픔이 일었다. 의구심도 일었다. 여자의 정조가 그처럼 완강하게 보호받고 지켜지기를 바라는 만큼 여자의 심성이나 마음도 소중하게 가꾸어지고 갈무리 되는가, 그건 저버리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마음이나 감정보다 더 귀하고 중히 여기는 정절이라는 괴물이 가슴을 물어뜯었다."

<허난설헌>을 홍길동을 지은 허균의 누이 정도로만 알았던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못다한 것들의 아쉬움, 결혼후 사랑하는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객사,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먼저 떠난 딸과 아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혹독한 냉대, 그 모두를 가슴에 묻고 흘러간 세월이다.
꽃다운 나이에 낙화하는 목련처럼 처연함이 붉은 눈물을 적시며 흐른다.

읽는 내내 참척의 슬픔에 가슴이 아려왔고, 시대를 건너 조선으로 돌아가 난설헌과 머물다 온 기분이 들었다. 짧은 생애를 불꽃처럼 태운 문학의 열정에 심취한다.
혼불문학상 수상작답게 탁월한 언어와 세밀한 묘사가 정갈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갈대밭 자락이 흔들린다. 정수리 위에 곤두섰던 하지의 햇볕이 서편으로 많이 기울었다. 소금기 어린 갯바람이 시원하다. 농익고 나른한 그미의 모습은 처연하도록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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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에는 정말 괜찮을 거예요 시요일
시요일 엮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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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살아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문 하나만 열고 나가면 세상인데 그 문 하나 열고 나가는 일이 이토록 커다란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 조심스럽고 어렵사리 눈치를 보며 문밖을 나가 살아가는 모습이 길들어가는 동물같기도 하고, 하나씩 키우는 식물같기도 하다. 살아있는 식물인지 조화인지 알수도 없을 만큼, 정교한 식물들처럼 사람 사는 일이 혼자 먹고, 혼자 말하고, 혼자 잠드는 일에 익숙해져간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웃어보는 일도 점점 사라지고 우물에 갇힌 듯 답답한 세상이다.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묻기도 조심스러운 날들에 창밖 풍경이라도 근사하면 좋으련만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과 답답하게 막힌 아파트 숲이다. 깊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볼수 도 없이 희뿌옇다.

다행히 봄이다.
언 땅이 녹고 겨울동안 세상이 숨겨놓은 가장 여린 연두와 노랑 싹들이 초록이 되기 위해 아장아장 걷는 아가들처럼 선물같은 계절이다.

마치 해묵은 마음을 떨쳐버리고 집 밖으로 나오라는 봄의 초대장처럼 느껴진다. 이왕 봄이 되었으니 살아있는 꽃처럼 내 삶의 시계를 멈추지 말고 아름다운 꽃으로 열어가고 싶다.

허무한 절망을 노래한 시도 있고 색이나 향기로 피어오르는 사랑과 자연을 이끌어낸 시, 고독한 마음을 읽어주는 시, 무심코 지나가는 내 슬픔에 어루만져 주는 고마운 시,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다독이는 시들이 조용히 피어오른다.

이 봄에는 가볍게 시를 얹고 싶다.
나뭇잎 하나따서 '온다 안온다, 좋아한다 싫어한다'를 점치던 그 시절처럼 사랑하는 시들을 하나둘 베어물면서 잘 지내고 싶다.
양장본으로 기존 시인들이 발표한 시집 중에서 출중한 시들을 묶었다. 시요일이 준비한 소중한 시들이 포근한 봄날, 나에게 날아들었다.

눈뜨고 일어나면 내일 아침에는,
오늘 아침에는 정말 괜찮을거예요..처럼
괜찮은 일들이 가득했으면 한다.
자박자박거리던 마음의 우물이 찰랑거릴때까지
오래오래 읽고 싶은 시집이다.

쉽게 읽어지는 시들도 있지만 오래 곱씹을수록 좋은 시들이 다른 시집에 발표된 시들 중에 골라 모아서 대체적으로 아름답다.
제목들만 읽어도 시인의 마음으로 앉아있게 된다.
눈을 감고 생각 담요를 덮고 단단한 고요 속으로,
벽 속의 편지로 들어가 기억을 버리기도 하고
공원을 거닐기도 하고
흐린 날의 침대를 바라보기도 한다.
혼자가 되기도 하고 눈물의 입구를 찾기도 하다가
결국 아프지 않기 위해 햇빛을 보고 가끔은 기쁘며 사랑스런 추억 속으로 들어가 상처가 되지 않는 바람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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