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목소리는 과거가 아닌 미래의 목소리였다. 읽는 동안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특히 책의 말미에 실려 있는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분노와 슬픔과 공포가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이 쉽게 잊힐까 그것이 더 두려워졌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쓰는데 거의 20년이 걸렸다는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일본의 원전 보호 체계도 규모 9.0의 강진 앞에서는 아기 옷에 불과했고, 배냇저고리처럼 약했다고..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다 보니 「문명, 그 길을 묻다」에 실린 제레미 리프킨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지난 10년간 유럽연합의 자문으로 활동해왔던 리프킨은 그의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도 자세히 거론했었지만 재생에너지가 중심이 되는 시대로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미 학문적인 단계에서 실용적인 단계로 넘어왔다고 하는데 전 유럽연합 의장, 독일의 메르켈 총리, 프랑스의 올랑드르 대통령 그리고 중국의 리커창 총리가 재생에너지 사용으로의 전환에 대한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를 3차 산업혁명이라 일컬으며 '에너지 민주화'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유럽의 변화는 물론이지만 중국 역시 전력 분산을 위해 에너지 인터넷을 구축하는데 4년 동안 82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인터뷰어인 안희경씨는 '깨끗한 에너지', '값싼 에너지', '안전한 에너지'로 홍보되는 핵발전소와 송전탑 건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견해를 묻는다. 그러자 순간 리프킨의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나는 듯했고 이미 결론이 다 난, 시대에 뒤떨어진 안건을 왜 다시 끌어내는지 답답해하는 눈치였단다. 리프킨은 핵 발전이 청정에너지라는 홍보는 황당한 말이라고 답한다. 이 주장에는 큰 문제점이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2,000개의 핵발전소가 있지만 모두 노화해져서 가동을 멈춰야 할 처지인데다가 2,000개의 핵 발전소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세계에서 필요한 에너지의 6퍼센트만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후 변화에 최소한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0퍼센트의 에너지를 생산해야 하지만 지금으로선 아무 영향력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핵발전소를 더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세계 필요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채우려면 노후된 핵발전소를 다 철거하고, 40년 동안 매달 3,000개의 새로운 핵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 리프킨은 이를 전혀 이득이 없는 사업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국제원자력기구의 발표에 의하면 우라늄 매장량은 매우 부족해서 2030년이 되면 비용이 올라가 적자가 될 것이며, 테러리즘이 강도를 더해가는 시대에 세계 곳곳에 플루토늄이 퍼지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우 네바다주에 핵폐기물 지하창고를 세우는데 16년 동안 80억 달러를 썼지만 이후 단 한 번도 그 지하창고를 열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이미 그곳이 새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핵폐기물을 완벽하게 저장하고 있는 처리장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
70년 동안 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음에도 아직 방법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핵발전은 죽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물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담수의 40퍼센트를 냉각수로 사용하는데, 기후 변화로 인해 물이 뜨거워져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과 프랑스는 이른 시일 내에 핵발전소의 문들 닫아야 한다. 해양에 핵발전소를 세울 수는 있지만 쓰나미와 태풍이 더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나게 된 원인 역시 핵연료봉이 마당 창고 안에 있었고, 쓰나미가 몰려오자 핵연료봉이 무너지게 되면서 원자로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한국은 왜 비싼 핵발전을 사용하려는 거죠? 모든 사람이 다 생산할 수 있는 공짜 그린 전기가 있는데요. "
핵발전은 몇몇 회사에게만 이득이 돌아간다고 리프킨은 말한다. 우리는 모든 사회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조합으로 소유할 수 있는 우리만의 에너지를 생산해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 독일이 하는 것처럼, 모든 한국인이 자기 집 마당에서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이를 'Power to the People', 즉 '국민에게 권력을 쥐여줬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에너지 민주화를 통해 가능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
이에 대해 이미 에너지를 선점하고 있는 기업들의 반발은 없는지 인터뷰어가 묻자 리프킨은 독일과 덴마크의 예를 들며 거대 전기회사들이 생산 분야에서 발을 빼고 있다고 답한다. 분산적인 에너지 생산은 수직적인 거대 기업이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들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이동하고 있단다. 기존 기업들의 새로운 역할은 네트워크를 통합하도록 돕는 서비스 제공자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조직하고 연결하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해결사가 되는 것이다. 독일의 전력회사인 RWE AG, EnBW와 프랑스에서 가장 큰 전력회사이며 세계적인 기업인 EDF도 새로운 전환에 동참했다고 한다. 생산양식이 바뀌면 정치 시스템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정치 시스템은 변할 겁니다. 중앙집권화에서 분산화될 거예요. 중앙 정부는 코드, 규정, 표준, 정보를 상호 교환하여 처리하는 틀을 세우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다음은 지역의 활동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3차 산업혁명을 위한 그들만의 마스터플랜을 여건에 맞게 창조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지역 단위들은 와이파이처럼 연결될 것입니다. 수평적 권력을 형성하면서 그 속에서 분권화되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지금의 권력구조를 바꿀 겁니다. 이는 권력 안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동입니다. "
제레미 리프킨은 수평적 권력으로의 이동은 이미 우리 안에 와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 모두가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수십억의 인구가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에너지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고, 이는 멈출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문제는 그런 시대적 기류를 적절한 시기에 함께 타고 흘러가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결단을 과연 적시에 내릴 수 있는지, 이것이 한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능력이며, 국민의 능력일 것이라고 말한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는 동안 핵발전소에 문제가 생길 땐 해결할 답은 없다는 것 단 하나만 떠올랐다. 불행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외엔, 아픈 것 외엔, 절망하는 것 외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지금 우리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의 정부가 30년 전의 체르노빌보다 더 나은 대처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국민들을 무관심과 무기력으로 이끌어내고 급기야는 분노조차 할 줄 모르는 사람들로 만드는 것이 정부의 목표라면 모를까, 때론 슬퍼하는 것조차도 지친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이젠 개개인이 똑똑해져야 할 것 같다. 스마트 시대에 살면서 서로의 생활을 염탐하듯 기웃거리는 것으로, 분노를 배설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기술력을 소모할 것이 아니라 수직적 에너지 체계를 거부하는 것으로, 수평으로의 이동을 도모하는 것으로 변화를 꿈꾸어야 할 것 같다. 전 지구적으로 대결하고 있는 신구 세력의 움직임, 그리고 오늘 우리의 문명이 맞닥뜨린 전환점을 과거의 두려움으로부터 배워 현명하게 헤쳐 나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체르노빌 사람이 되어버린다. 돌연변이가 된 것이다! 모두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런 생물체가 된다.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지만 이제 불가능하다. 적어두었으면 한다. 당신들이라도 적어두었으면..... 내 딸의 이름은 카타였다. 카튜센카..... 일곱 살에 사망했다. " - 니콜라이 포미치 칼루긴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소. 그곳에서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쓰레기통에 던졌소. 막내아들이 졸라서 군모를 줬소. 아들은 절대로 벗지 않고 매일 쓰고 다녔소. 2년 후 아들은 뇌종양 진단을 받았소. 나머지는 알아서 쓰시오. 더는 말하고 싶지 않소..... " - 어느 군인
"우리 머릿속에서 군사적 핵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것 같은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이나 1초 만에 재로 변한 사람들의 모습이지만, 평화적 핵은 안전한 전구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우리는 세상을 아이처럼 보았다. " - 게나디 그루세보이 (벨라루스 의원, 체르노빌의 아이들에게 재단 대표)
"저는 비가 무섭습니다. 바로 그게 체르노빌입니다. 눈이 무섭습니다. 숲도, 구름도, 바람도 무섭습니다. 체르노빌, 그는 내 집에 있습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 1986년 봄에 태어난 내 아들 속에 있습니다. 아들은 아픕니다. 얼마 전 신문에 1993년 한 해 동안 벨라루스에서 여성들이 임신중절을 20만 번 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주요 원인은 체르노빌입니다. " - 알렉산드르 레발스키 (역사학자)
"두려움과 억울함. 그 두 가지 강력한 감정을 아직도 기억해요. 모든 것이 일어났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었어요. 정부는 침묵했고, 의사들도 아무 말이 없었어요. 우리 지구는 주 정부의 지시를 기다렸고, 주 정부는 민스크를, 민스크는 모스크바의 연락을 기다렸어요. 아주 긴 사슬이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는 무방비 상태였어요. 어딘가 멀리에서, 고르바초프와 또 몇 명이, 두세 명이 우리 운명을 결정짓던 거예요. 모두를 대신해 판단했어요. 수백만 명의 운명을..... 그리고 동시에, 얼마 안 되는 몇 명의 사람이 우리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미치광이도, 머릿속에 테러 계획이 든 범죄자도 아닌 원자력 발전소의 평범한 당직 직원 말이에요.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어요. 체르노빌이 콜리마와 아우슈비츠,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넘어선다는 걸 알게 됐어요. " - 류드밀라 드미트리예브나 폴랸스카야 (시골 교사)
"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오면 KGB가 필름을 가져갔다. 그리고 빛을 쏘여 못 쓰게 된 필름을 돌려줬다. 얼마나 많은 문서가, 증거가 파기됐는지, 과학을 위해서도, 역사를 위해서도 쓰지 못하고 잃어버렸다. " - 이리나 키셀레바 (기자)
"핵보다 상부의 진노를 더 두려워했다. 모두 전화와 명령을 기다렸지만 직접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개인이 지는 책임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역사를 믿는다. 역사의 심판을 믿는다. 체르노빌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시작했다. " - 바실리 보리소비치 네스테렌코 (전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 핵에너지 연구소 소장)
""우리가 죽으면 학문이 될 거야. " 안드레이가 말했어요. "우리가 죽으면 다 우리를 잊을 거야. " 카탸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죽으면 무덤에 묻지 마. 나는 무덤이 싫어. 거기에는 죽은 사람들이랑 까마귀밖에 없잖아. 나는 들판에 묻어줘. " 옥사나가 부탁했어요. "우리는 죽을 거야..... " 율라가 울었어요. 이제 하늘을 보면 하늘이 살아 있어요. 내 친구들이 거기 있으니까요. " - 어느 어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