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 42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화기에서는 보통 전화를 걸 때 들어본 적이 없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수많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윙윙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냥 윙윙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먼 곳,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같았다. " (p33)

 

 

 

프란츠 카프카 「성」을 읽는 나의 느낌도 마찬가지였다. 주파수를 잘 못 맞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집중해서 들으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였지만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점점 무기력해지는 느낌이었다. 카프카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초반 50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엔 두 번이나 깊은 잠이 들었다. 내용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낯섦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었다. 어쩌면 책 때문이 아닌 나의 컨디션 탓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만 읽자는 마음은 들지 않았는데 읽을수록 느껴지는 무력감이 나의 기분 탓인지, 아니면 카프카의 위력인지 알아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기의 성분조차 고향의 것과는 아주 다른 그런 타향, 너무 낯설어 숨 막혀 죽을 지경이면서 그곳의 어처구니없는 유혹에 빠져서 계속 가다가 계속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는 타향에 온 기분이었다. " (p63)

 

 

 

카프카는 나의 심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여러 작가들이 카프카의 「성」을 왜 위대한 소설이라고 하는질 알 것 같았다. 이에 비하면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벌레가 되는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 「변신」은 카프카의 가벼운 농담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카프카는 마치 미로를 설계하는 사람처럼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고, 그 길로 오차 없이 이끌고 있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소설을 읽듯, 일상적인 희로애락의 감정을 찾으려는 마음을 접어두고 주인공 K를 따라 이야기 속으로 들어섰고, 이후엔 더 이상 잠들 수 없었다.

 

 

 

"당신은 이곳 사정에 대해 경악스러울 정도로 무지해요. " (p82)

 

 

 

카프카의 인물들에게선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인물들이 해야 할 말을 하고, 행동을 하지만 그저 자기 역할을 연기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 정해진 루틴대로 늘 같은 상황, 같은 일이 무한히 반복될 것만 같다. 책 속의 이야길 내 의지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K를 통해 먼 곳으로부터 수동적으로 전달받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인물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나의 세상은 서로 다른 성처럼 단절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소설을 읽는 행위에 내 자유를 박탈당한 기분이라고 할까, 나의 주관적 판단이나 인상을 배제 받은 것 같은 소외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신은 이곳의 모든 걸 그런 식으로 잘못 보고 있어요. " (p126)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 상념들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 모두가 착각인 것 같고, 인물들에 대한 신뢰감도 들지 않았다. 어떤 것이 왜곡이고 어떤 것이 진실일지 막막함을 느꼈다. 대개의 소설은 읽기를 멈추었다가 다시 읽을 때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이야기의 흐름을 떠올리면 연결고리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프카의 글은 깊은 안갯속으로 다시 들어설 때처럼 잠시의 주춤거림이 필요했다. 나의 주파수를 카프카의 주파수에 맞추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카프카의 문장에선 시선을 멀리 둘 수가 없다. 바로 지금 내디딘 발 앞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걸어온 자리에 발자국이라곤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꿈길을 걷듯이, 나는 다시 텅 비어버린 마음으로 읽기를 시작해야 했다. 그것 또한 무력감의 이유였고, 잠이 들진 않았지만 피로가 쌓여갔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피곤해하니까. " (p367)

 

 

 

「성」은 카프카의 대표작이자 가장 난해한 작품 중 하나로 언급된다고 한다. 지극히 폐쇄적이면서 한편으론 무한히 개방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신화, 종교, 실존주의, 사회적, 정신분석적, 전기적 등등 많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고 그에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소설의 경우 책을 다 읽기 전까진 작품 해설을 읽지 않는 개인적인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이론의 관점이라는 틀이 아닌, 사소한 나의 감상을 먼저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앞서 내가 느낀 감정은 무력감과 피로감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던 목소리였지만 주인공 K의 심리에 이미 초반부터 동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무익한 성으로의 여행, 아무리 봐도 헛수고인 하루, 아무리 봐도 허망한 희망인 거죠. " (p253)

 

 

 

읽는 내내 잠이 부족한 것 같았고, 마음이 어수선했다. 성의 토지 측량사로 초빙되었지만 성에는 닿을 수 없던 주인공과 마찬가지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 과연 그런 일이 있기는 했던 걸까, K가 토지 측량사이긴 한 걸까, 성이란 존재가 있기는 한 걸까 등등의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어떤 것에 대한 진실을 한 개인이 얼마만큼 인지할 수 있으며, 그 진실의 진실성을 과연 왜곡 없이 파악해 낼 수 있기나 한 건지를 말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앎에 대해 얼마나 무기력한지, 그러므로 삶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여러 일들이 사람을 기죽이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는 그 장애물들이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겠죠. " (p369)

 

 

 

열심인 사람들, 깨어 있으려는 사람들, 측량하려는 사람들일수록 이상할 만큼 중요한 순간엔 잠이 들어 버린다. 힘을 주면 줄수록 튕겨져 나가는 것 같다. 집요하게 예측하고 예감하려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 같다. 개방인 동시에 폐쇄의 이유, 앎과 동시에 왜곡인 이유처럼 결정적인 때일수록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때문에 주저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점은 잘 알아두세요. 가끔은 전체 상황과는 무관한 그런 기회도 생겨난다는 것을요. 그러한 기회가 오면, 한마디의 말, 한순간의 눈길, 한 번의 신뢰 표시만으로도 기력을 소진하면서 평생의 노력을 기울인 것보다 더 많은 걸 성취할 수도 있지요. " (p370)

 

 

 

나도 애를 쓰며 살아가는 사람에 속하는 것 같다. 좀 더 살펴볼 것들이 많다며 돌아가길 주저하지 않을 때가 많으니 말이다. 삶의 방식이 이럴 땐 피로감이 만만치 않다. 늘 마음에 무거운 추를 매달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선 저절로 힘이 빠지는 걸 경험했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나를 개방했던 게 아닐까 싶다.

 

 

 

"곡식알에 비유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한 체를 통과하려면 별나고 특이한 형태의 작고 능숙한 낟알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 (p378)

 

 

 

삶의 경험이 늘어 갈수록 유연함을 추구하게 되는 것 같다. 유연함이란 나약함이 아니다. 유연하려면 우선 지탱해줄 근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어에 상당한 힘을 비축하고 모든 근육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유연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책을 읽고 알아가고자 하는 과정도 나를 그 앎 속에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벗어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

 

 

 

이 유명한 문장은 카프카가 그의 친구인 오스카 폴라크에게 보낸 편지에 썼던 말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큰 고통을 주는 불행처럼,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의 버림을 받고 숲 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충격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썼단다. 카프카의 「성」은 미완성으로 끝이 났다. 카프카의 사망으로 더 이상의 이야길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프카는 이미 하고 싶은 이야길 충분히 한 것 같다. 읽는 동안 내내 피로감과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나의 몸이 나의 생각보다 더 많은 말들을 들려주는 것 같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