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이나 규칙이 어떻든 생명이란 가장 가치 있고 절대 낭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지. ˝
- 관전둬
˝죄악에 대항해야 하는 것은 경찰이지 피해자의 가족이 아니다. ˝
- 뤄샤오밍
「13.67」은 홍콩의 경찰인 관전둬와 뤄샤오밍이 2013년부터 1967년까지 시간의 역순으로 여섯 개의 사건을 해결하는 단편 모음이다. 여섯 개의 단편은 완전한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주제를 이어받고, 마지막 편을 읽으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개별의 단편이 사건의 해결에 집중하는 추리적 재미를 준다면, 연결된 여섯 개의 단편은 홍콩의 사회현상을 반영한 사회소설로도 읽힌다. 장르소설의 대체적 흐름이 캐릭터와 문학적인 묘사에 공을 들이는 추세인데 반해 이 소설은 철저히 사건 해결 중심이고, 캐릭터를 통한 사회적인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런 특성이 이 책의 매력이자 장점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인 찬호께이는 197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성장한 세대로 홍콩 중문 대학에서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플로차트를 그려놓고 계획한 흐름 안에서 정확하게 움직여가는 듯 한 그의 글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완벽히 부합되는 것 같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를 반영한 각각의 데이터로서 하나의 아웃풋이 다음의 인풋이 되어 순환하는, 우연 같은 필연성의 구조를 보여 준다.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두 주인공인 관전둬와 뤄샤오밍에겐 그들의 능력과 개성에 맞는 각각의 별칭이 있다.
관전둬 - 'CIB(형사정보과)의 천리안'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고, 발자국만 봐도 범인이 누군지 알아낸다는 천재 탐정.
뤄샤오밍 - '날수신탐'
일처리가 매섭고 추리력이 뛰어난 탐정.
이렇게 두 인물에 대해 요약하고 보면 홍콩 영화가 떠오르기도 하고, 유치해 보이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실제로 책을 읽으면 관전둬에겐 무한한 신뢰를, 뤄샤오밍에겐 지지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1967년부터 2013년까지의 홍콩이다. 그 시기에 경찰이 되었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온 관전둬를 통해 한 도시를, 한 시대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전둬는 뤄샤오밍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선배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로서 이런 말을 해주었다.
˝샤오밍, 사건 수사는 관례를 고수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경찰 조직에는 발전도 없이 세월을 보내면서 매뉴얼대로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조직의 기강을 세우려면 상급자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게 철칙이지만, 이것만은 기억해야 해. 경찰의 진정한 임무는 시민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 제도가 무고한 시민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정의를 표방하지 못한다면,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한 근거를 내세워서 경직된 제도에 대항해야 하네. ˝
1960년대의 좌파폭동, 1970년대의 경찰과 염정공서 분쟁, 1980년대의 강력범죄, 1990년대의 홍콩 주권 반환을 목도, 2000년대의 사회 변화를 증언하고 있는 관전둬는 재치 넘치고 노련하면서 고결하고 세속에 휩쓸리지 않는 인물이다. 이 책의 백미는 마지막 단편인 <빌려온 시간>이었는데 이 단편을 통해 소설을 바라보던 시선은 2013년으로 되돌아오게 되고, 이 시대의 홍콩에서 관전둬가 선택한 운명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저자의 내공에 감탄했고,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개인적으론 숨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읽기엔 더없이 좋았던 소설이었다. 또한 재능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주어진다는 것을 생각했고, 선과 악이란 상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재능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선택하는 능력이 진짜 재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현상을 보든, 책을 읽든, 그 속에서 발견하는 그 무엇들은 결국 나를 통한 선택이란 걸 알게 될수록 더더욱 지혜를 갈망하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