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여 사립탐정의 하루가 지나갔다. 정확히 전형적인 날은 아니었지만 아주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 한 남자가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이유를 아무도 알 수 없다. 부자가 될 수도 없고, 대부분 재미도 별로 없다. 때로는 얻어터지거나 총을 맞거나 감옥에 던져지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죽을 수도 있다. 두 달마다 한 번씩, 이 일을 그만두고 아직 머리가 흔들리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을 때 번듯한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러면 문에서 버저가 울리고 대기실로 향하는 안쪽 문을 열면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여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슬픔, 약간의 돈을 안고 들어온다.˝

 

 

 

레이먼드 챈들러기나긴 이별 시작 부분이다. 음악을 들을 때 나는 대부분 첫 소절에서 마음을 뺐긴다. 음악에 관한한 처음이 마음에 들면 마지막까지 좋아하게 된다. 그만큼 취향이 분명한 편이다. 여러 번 들어봐야 겨우 좋아지는 경우는 없었으니 말이다. 노래를 들을 때도 멜로디뿐만 아니라 가수의 음색이나 가사에도 예민해서 가창력이나 기교가 지나치게 뛰어난 노래보단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한 인물이 되어 잔잔한 감상을 남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도 마찬가지여서 첫 문장을 읽으면 대부분 느낌이 온다. 경험을 넓혀주는 소설이 될지, 좋아하는 소설이 될지 말이다.



서정적이며 섬세하지만, 아무런 꾸밈이 없어 다소 건조하고 무심한 문장들이 나의 취향이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에 스스로 도취되어 있는 글이나 지나친 생략, 은유를 위한 은유, 문장을 가지고 놀려는 기교적인 오만함은 사양하고 싶어진다. 「기나긴 이별」을 읽기로 마음먹은 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취향 덕분이다. 이 책은 하루키가 무려 열두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궁금해졌고, 너무 좋아하게 될까 봐 나름의 거리를 두기 위한 방법으로 근 한 달간을 묵히다가 드디어 펼쳤다.



그리곤 처음 읽은 저 문장이 뭐라고 몇 번이나 읽었다. 소설 속 캐릭터와 내용을 전혀 모르면서도 감상을 쓰고 싶은 건 아마도 취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상한 건지는 몰라도 글을 읽다 보면 어떤 목소리를 통해 글이 들리는 느낌이 든다. 단지 시각적인 정보로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감성의 목소리로도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첫 문장을 읽으면 문체의 특성에 맞는 나름의 톤이나 리듬이 생긴다. 챈들러의 문장에서는 조용히 휘감기는 서정적인 내밀함과 단단한 근성이 느껴졌다. 하루키가 왜 챈들러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루키에게 영향을 준 것이겠지만 두 사람의 음색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하루키가 좀 더 소년 같은 음색이라면 챈들러는 그보단 저음의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필립 말로 시리즈'는 「빅 슬립」, 「하이 윈도」, 「안녕 내 사랑」, 「호수의 연인」, 「리틀 시스터」, 「기나긴 이별」로 기나긴 이별이 마지막 작품인데 어쩐지 읽기 전부터 조금 섭섭하고 아쉬워진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자신만의 취향이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게 뭐라고 싶다가도 그것 덕분에 마음이 즐거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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