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시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때가 온다. 줄거리나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한 사람의 관념을 보게 될 때, 본격적인 '독자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책들을 하나씩 탐독하다 보면 저자에게 영향을 준 또 다른 책들을 알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읽기에 대한 열망은 다른 사람의 관점을 경험해나가는 과정이 되어 나에게 저마다의 사연들을 남기는 것 같다.



어떤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전과 다른 느낌이 든다면, 전엔 보이지 않던 문장이 마음에 사무친다면, 그동안 나에게 새로운 사연이 생겼다는 뜻일 거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한 만큼만 보고, 알게 되기 때문이다. 경험의 많고 적음은 세월과도 무관하진 않지만 개인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의 다양함이나 깊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신적인 허기를 달래줄 책이 필요해진다. 그런데 이 허기는 만족이 없다. 알고 싶다는 건 삶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면 알고 싶고, 사랑이 커질수록 더 궁금해진다. 그 사랑은 역설적으로 결핍을 느낄 때 시작되는 것 같다. 허기를 느끼는 건 삶을 열망하기 때문이고, 그때 본격적인 독서가 시작되며 그 열기를 감당 못해 작가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글이란 삶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직 알지 못한다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 겸손함이 성실한 작가와 독자를 만든다. 지혜라는 건 채움과 비움의 연속이라고 생각하지만 채우지 않고 어떻게 비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중용을 택해야 한다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이쪽과 저쪽의 끝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어떤 작가는 나를 채워주고, 어떤 이는 버릴 수 있게 도와준다. 시대를 초월한 스승이자 다정한 친구 같은 그분들은 내가 계속 읽고자 하는 한 나를 외롭게 하지 앓는다. 기쁨 쪽에 있든, 절망 쪽에 있든 말이다. 「작가란 무엇인가」는 그렇게 읽고, 쓰신 분들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김연수님의 추천사로 시작되는 이 책은 그 처음부터 설렜다. 이 책을 읽게 된 사연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음에 읽고 싶은 책들은 기억해 두었다.



모두에게 통하는 삶의 궁극적 의미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의 의미를 내 것으로 할 수도 없다. 끝까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찾아가는 과정의 모든 여정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 독자란 그렇게 성실히 노력하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아닐까..


 

제 일은 사람들과 세계를 관찰하는 것이지 판단 내리는 게 아닙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사람들이 카프카를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을 알고 계십니까? 상상력이 그 자체로 가치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술, 특히 현대 예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 밀란 쿤데라


작가는 가능한 한 잘 쓰고 나서 좋은 독자를 기다리는 거지요. - 레이먼드 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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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트도우 2015-05-14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는 일의 연속이지요. 아직 오지 않은 반응들을 기다립니다

물고기자리 2015-05-14 19:48   좋아요 0 | URL
식상하지만 ㅎ 기다림은 숙성되는 시간이라 믿는다고 긍정적인 답글을 달고 싶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