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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참 힘들게 읽어나간 책이다.
직설적인 화법에 대화도 단답형에 간결하였고 흔하디 흔한 따옴표 조차도 없이 그들의 심리를 이해할 틈도 주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진행하기만 한다. 후진은 없다.
숨이 가파온다. 언제 쉬어야 할지 책장을 덮고 나서야 휴우~~~ 한숨을 쉬어본다.
한마디로 물에 흔적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말라버린 샘물과도 같은 소설이다.
긴 가뭄에 샘물은 결국 바닥을 드러내고 물에 흔적이라고는 찾아볼수 없을 정도의 무미 건조함으로 일관되어진다. 단지 샘이라는 흔적이 존재하기에 물이 존재하였구나라고 인지 할뿐이다.
그러나 그 매마름에는 곧 찾아올 단비가 기다려진다. 지친 나그네에게 시원함과 달콤한 휴식을 제공할 희망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를 읽어 보라. 그리고 작품을 읽어 보라. 다시 시를 읽고 작품을 보라.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가슴 한구석을 스쳐 가는 서늘한 바람, 허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둔탁한 충격을 느낄 것이다. 누가 노인인가? 벨인가? 모스인가? 혹은 바로 당신인가? "
무릎을 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되새김질을 통해 나는 희망을 보았다. 찾을려고 노력한다.
희망이 사라진 곳에는 미래란 존재하지 않듯이 존재의 의미조차 사라진다면 암흑만이 남게될것이다.얼마전 한국영화 추격자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 같지만 다른점은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
나는 추격자에서 희망을 찾을수가 없었다. 분노만이 존해하였다. 씁쓸하였고 헛다리에 화가 치밀었고 지금 우리앞에 놓여있는 현실이기에 암담함을 느낄뿐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갈것이고 내일은 올것이다. 과연 희망이라고 할수 있을까......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지만 몇년전 국회의원 선거때이던가 "노인들은 투표할 필요없다"라는 노인폄하발언으로 논란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어떤 생각으로 얘기를 했던지 말이 와전이 되었던간에 같은 맥락이 아닐까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세 인물이 주축이 된다.
쫓기는자 모스와 쫓는자 시거, 그리고 중립에 서있는자 벨.....
쫓기는자이기에 피해자 일까? 아니다. 돈을 선택함과 동시에 그는 죽음을 예견하였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였기에 피해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쫓는자 그는 동전의 양면으로 타인의 삶을 선택하는 잔혹함을 가지고 있다. 악의 축이라고 할수 있는 그에게 죄책감은 존재할까 의문이 생긴다. 시거가 표본이 되는 사회라면 마지막 살아남는 자는 인간이기를 거부한 존재일듯 하다.
그리고 마지막 인물 은퇴가 가까운 보안관 벨. 정의를 구현해야 할자가 방관자의 모습을 보여준다.책임감을 느끼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 모습에서 생각은 하지만 행동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나 자신의 거울인것만 같아서 나는 다시한번 반성에 반성을 거듭한다.
내가 옮긴이의 글을 이 책만큼 꼼꼼하게 읽은 기억이 없다.
그만큼 책이 어렵다는 뜻이며 의미를 도저히 찾을수가 없기에 몇번이나 다시 읽어보고 유사점을 찾을려고 노력해보았다. 그러나 옮긴이 조차도 마지막은 '아마도'로 끝맺음을 하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은 고스란히 독자의 몫임을 각인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