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마음 퍼실리테이션 - 행복을 기다리는 당신을 위한 셀프 테라피
우보영 지음 / 봄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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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인생에서 레이스를 펼친다. 정상을 향해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기도 하고

골짜기와 비탈길에서 숨죽이며 아슬아슬한 곡예를 벌이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잘 가고 있는지,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부닥치면 그대로 멈춰버린다.

저자는 이런 우리에게 '마음 챙기기'를 주문한다.

마음에 대한 상담과 강의를 하는 저자에게는 '마음 퍼실리테이터(Mind Faciliitator)'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마음 퍼실리테이터는 개인이나 조직 구성원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고 긍정 심리를 지양해서

더 행복한 일상을 살수 있도록 돕는 사람을 말한다. 마음은 모든 일과 관계, 사랑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상처가 곪기 전에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아플 때 자신의 일상을 돌볼 수 있는 방법으로

'마음 퍼실리테이션(Mind Facilitation)'을 제시하는데 이는 마음의 건강을 촉진하는 일, 즉 자신과의 대화를

의미한다. 치열한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의 가벼운 위로나 섣부른 조언보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 할 수 있는 셀프 공감이 절실한 지금, 일상에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고 돌볼 수 있다면 삶을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덜 아프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첫 장의 제목이 '마주하기'이다. 나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월권행위이며 자존감은 오직

나만이 문을 열고 들어와 유영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기 때문에 나를 타인이 멋대로 판단하게 두는 것은

나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에 공감을 표한다. 나는 철저하게 나일 뿐인데 우리의 시선은

자꾸 타인을 향하고 의식한다. 제멋대로 비교하고 판단하고 재단해서 너덜너덜해 진 후에야 잠간 멈춰서나

브레이크가 고장한 철마는 이내 그대로 내달린다. 병아리의 부화를 돕기 위해 알을 깨뜨리는 어린 아이의

순정은 그저 순정일 뿐 부화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듯이 자신의 알은 자신만이 깰 수있는 것이다.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애써한 조언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좋은 의도에서 한 말이

불필요한 간섭이 되기도 한다. 내가 느끼기에 좋은 의도였고, 내가 생각하기에 별것 아닌 고민이었고, 내가

보기에 별것 아닌 고민에 보내는 시간은 낭비였지 정작 상대방은 죽을 만큼 어렵고 힘들다. 나를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거나 상대의 기준에 나를 맡겨 버리는 것 모두 월권이며 오류이다. 나의 행복을 가장 바라는

사람이 나이듯 상대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나를 마주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기 위한

시작점이다.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바라 보는 자기 가치감을 의미하는 내적 자존감과 인정과 성취의 경험이

쌓여 형성되는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는 자기 효능감을 의미하는 외적 자존감으로 나뉜다. 내적

자존감은 주로 부모의 행동과 부모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모방하거나 부모의 자존감에서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발달시키고, 외적 자존감은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만족감을 주며 자신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내적 자존감이 높지 않아도 외적 자존감을 활용해 작은 성공과 성장을 반복 경험하면 내적

자존감은 물론 전체적인 자존감 형성이 이뤄진다. 반대로 외적 자존감이 떨어져도 내적 자존감이 견고하면

위기를 잘 극복해낼 수 있다. 영원히 자존감이 높은 사람, 영원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없다. 성공, 실패,

환희, 좌절, 순항, 난항이 번갈아 인생에 찾아오고 우리는 그 영향권 한 가운데 서 있다.

자존감은 삭막한 세상에서 나를 사랑하며 살기 위한 기본 수단이다. 나를 사랑하려면 나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랑스럽고 내 마음에 드는 나도 나지만, 외면하고 숨기고 싶은 나도 역시 나다. 자신의

모든 면을 마주하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면 나의 자존감이 건강한지

건강하지 않은지 알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자존러와 불안러의 차이를 사고방식, 인간관계, 대처능력을 통해

접근한다. 자존러의 사고 방식은 현실적이고 긍정적이며 도전적이고 창의적이다. 그들은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며 회복 탄력성이 뛰어나다. 물론 명확하게 둘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가

살아 숨쉰다는 것은 그동안 삶을 잘 보내왔다는 의미이고 우리는 저 깊은 나락 속에서도 멱살을 잡든, 손을

잡든, 머리채를 잡든 자신을 놓지 않고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자신을 수용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것이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고 행운이지만 의지와 의존은 분명 다르다. 아무도 우리의 삶을 대신 할 순 없다. 아무도

내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내 인생의 책임자는 오롯이 나다. 의지는 마음을 기대어 도움을 받는 것이지만

다른 것에 의지하여 '존재하는' 순간 '의존'이 된다. 나의 존재를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사랑 역시

그렇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결국

내가 움직여야 한다.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제대로 살려면 결국 내가 움직여서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우보영 봄름 마음이든, 몸이든, 생각이든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여전히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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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수업 - 도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전하는 용기의 심리학
앤디 앤드루스 지음, 김은경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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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언제나 물음표와 느낌표의 연속이다. 물음표의 삶을 느낌표의 삶으로 얼마나 바꾸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누구도 시도하지 않고 가지 않았던 그 길로 가는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려는 '다시 시작함'이다.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 철저하게

구속되는 로봇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방법으로 새롭게 '게임의 룰'을 만들어 나가는 그런 삶을 의미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통념의 틀을 깨는 것, 저마다에게 주어진 한계를 뛰어 넘는 것, 기존의 원칙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것, 성공의 시작은 바로 거기부터다. 이것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말하는

'이노베이션(innovatio)이고 '비머네스크(beamonesque)'이다.

저자는 '지금 보이는 것이 훌륭하다고 그 이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뇌리에 날카롭게

파고드는 '훌륭한 사람들'의 외침은 최고가 되려는 우리에게 하나의 조언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다른 성공을 원한다면 수영장 밑바닥으로 내려갈 용기를 가져야 하며 그렇게 해야 하며 수영장 바닥을

힘껏 차고 오를 힘과 남다른 각오와 계획이 필요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결국 본인이 해야 한다. 머리로

'No'라는 생각이 들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Yes'라고 말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결과를 부른다. 없다고 말하면 보이지 않고 할 수 없다고 말하면 절대 할 수 없다.

'최후의 심판관이 당신 삶의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이름 옆에 점수를 적어 넣을 때 그는 당신이 얼마나

많이 이기고 졌느냐에 대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경기에 임했는지에 대해 기록할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인물들이 엄청난 고난을 딛고 큰일을 이루어냈다. 나폴레옹은 젊어서 간질병으로 고생했지만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이룬 군인이 되었고, 존 밀턴은 완전히 실명한 후 가난과 실의 속에 방황하다가

실락원(Paradise Lost)이라는 명작을 썼고,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되어 워싱턴으로 가서 취임 연설을 해야

했는데 당시 기차표를 사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돈을 꿔야 할 정도로 재정 파탄 상태였다. 이들 모두는

바닥을 경험했고 바닥을 박차고 일어섰고 결국 자신의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스코어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솔직히 이론으론 동의하나 현실은 쉽지 않다)

저자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지금 열심히 달리고 있는가?' 잠시 이 질문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지금

열심히 달리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숨이 막혀 온다.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들과 현재의 시간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들이 눈 앞에서 지나가며 나를 옭아맨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을 열심히 살아내야 한다. 지금의 열심들이 모아져 나중의 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다시 질문한다. '당신은 지금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가?'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도태다. 도태와 변화는 마음 가짐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알란 실리토(Alan Silliroe)의 '장거리

경주자의 고독'(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의 문장을 들어 어떻게 달려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나는 크로스컨트리 장거리 주자의 고독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누가

무슨말을 하든 그가 느끼는 고독감이야말로 내게는 세상에서 유일한 성실이고 현실이며, 결코 변함 없는

실제 사건이다. 내가 알아야 할 것은 그가 왜 달리느냐가 아니라 열심히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뿐이다.' 그렇다. 그의 고독은 현실과 이어져 있으며 삶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지금 열심히 달리는

것이다. 우리 역시 삶이며 현실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이 진정한 최선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인생은 한번 뿐이다. 자기 잠재력의 최대치를 끌어내어 삶의 지평을 넓혀야 인생의 후반전에 이르렀을때

제대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삶의 진실은 대부분 관찰을 통해 발견된다. 주의하고 집중하고

탐구하고 노력하고 우리의 삶을 끝없는 물음표와 느낌표로 만든다면 어느새 저기 멀리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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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한 적 있는가? - 대전환 시대의 새로운 성장 방정식, 파트너십
이소영 지음 / 퍼블리온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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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간 부진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던 세계 최대의 컴퓨터 회사인 마이크로 소프트가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회장 부임 이후 혁신적인 성장을 거듭하게 된 원동력은 자본력도

기술력도 아닌 '성장 마인드 문화' 때문이다. '성장 마인드 셋'이라고도 불리는 이 문화는 얼마든지

성장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누구도 말할 수 있다는 자율성, 그리고 가능성이라는 항목을 전제에

둔다. 더불어 MS의 미션인 'Empower every person and every organization on the planet to

achieve more'를 뒷받침한다.

이제는 혼자서 다 하려는 '슈퍼맨' 시대가 아니다. 지금의 조직은 계층적, 수직적 조직이 아닌 수평적이며

쉽게 모였다가 흩어질 수 있는 '애자일(Agile) 조직'이 필요한 시기이다. '날렵한', '민첩함'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애자일은 조작 구성과 운영 방식의 혁신을 꾀한다. 부서간 칸막이를 줄이고 몸집을 가볍게

하며 구성원 개개인의 의사 결정 권한을 확대하여 상황 변화에 기민하고 민첩한 대응이 가능한 조직을

만들자는 것이 애자임 혁신의 개념이다. 사티아 나델라가 말하는 애자일 혁신의 핵심은 구성원이 모두

'성장 마인드 셋(Growth Mind-Set)을 가지는 것이며 구성원 모두가 개인 성과나 이익을 쫓는 것이

아니라 조작의 미래와 발전을 이루고자 할 때 혁신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이크로 소프트의

직원 평가 기준은 '영향력'이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내 성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한

정도를 의미하는데 이를 토대로 직원들의 능력을 평가한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능력은 다른

사람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애자일 조직에 가장 적합한 인재는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회사와 조직의 비전을 자신의 비전과 잘 조절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저자는 자신이 성장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늘상 하던대로의 삶과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는 단조로운 삶을

탈피하고자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성장하는 방식을 찾기 위한 질문과 배움을 시작했다. 혼자 만의

배움에서 그치지 않고 그 배움이 필요한 곳에 적극적으로 나누고자 했고 그 결과 더 많은 배움이 일어나는

선순환이 생겼고 이 과정에서 회사와 파트너십이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배움이 또다른 배움을

낳고 그 배움이 다른 사람들과의 나눔을 통해 또다른 배움의 길과 방법들이 생겨 난다.

이와같은 변화는 '시작'이 중요하다.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의 '모든 사람이 꿈을 꾸지만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이들은 아주 적다'라는 말처럼 그렇게 생각했다면 움직여야 한다. 뭐든 해봐야 한다.

머릿속의 꿈은 그냥 꿈을 뿐이다. 저자는 그렇게 움직였고 지금의 자리에 있다. 역시 출발은 '자신'이다.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것, 협업에 있어 자신의 포지션과 역량을 아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다. 저자는 이애 대해 '나에 대한 파악, 나라는 사람에 대한 메타인지가 정확하고

정교해야지만 뚜렷한 비전을 세우고 그에 맞는 파트너쉽도 찾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 질문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한 적이 있는가?'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했다는 것은 자신의 영향력과 능력을 보였다는 것이고, 이는 자연스레 '다른 일'로 옮아 가게

된다. 좋은 기업이 치열한 경쟁력으로 생산성을 늘리는 조직이라면 위대한 기업은 서로 협력해서 타인의

성공에 기여하는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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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란트 - 작은 자였기에 받아 누린 하나님의 큰 은혜
박성현.장현경 지음 / 두란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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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잃어버린 양들을 사랑하도록 훈련시키셨디 P177

하나님은 힘든 이민 생활에 지친 남미 이민자들에게 길이요 생명이요 삶의 위로요 터전이었다. P227

한홍 목사의 추천사에 이렇게 써 있다. '잠자는 영성에 시원한 폭포수 같은 충격을 준다.' 어쩌면 이 책은

코로나 상황 속에서 함께 모여서 예배 드리기 조차 어려운 우리의 현실 앞에 던져진 하나님의 음성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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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시간은 항상 '적당한 때'이다. 우리가 원하는 시간도, 우리의 갈급함이 목을 타 넘어오는 순간도,

내가 간절히 사모하는 그 순간도 아니고 오직 '그분의 때'이다. 우리의 연약함은 자주 '주님의 때'를

오해하고 실망한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처럼 가장 적절하고 가장 적당한 때 임하기에 기다림이 필요한데

우리는 조급함과 성급함, 염려와 걱정으로 왜 지금이 아니냐며 억지를 부린다. 저자의 온두라스 강의가

그랬다. 농부들의 농사를 위해 계속 비가 와야 하는 때와 사역자들의 학업을 위해 비가 멎어야 하는 때,

바로 이 때가 그분이 일하시는 때였다. 저자가 파라과이 교회에서 만난 S와 K의 경험이 그렇고 이스라엘

유학을 위한 항공권 비용과 프랑크푸르트 공항 항공기 사정이 그랬다. 사역의 현장에 있는 이들이라면

'이 때'에 대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십여년전 지역에 있는 노숙인들 200여명을 초대해

점심 식사와 생활 용품을 나눠 주는 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전날부터 강풍에 비까지 내리는 악천후여서

참석하기로 했던 노숙인들 대부분이 불참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그렇게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밤을 맞도록 기도하였지만 여전히 비바람은 거셌다. 행사 세시간여를

앞두고 다음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지 고민 하는 상황에서 당시 담임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하실겁니다.

끝까지 기도하며 기다립시다.'라는 말씀과 함께 기도실로 먼저 들어가시고 행사 준비 최소 인원을 제외한

모두가 함께 기도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은 이미 '마가의 다락방'이었다. 그렇게 기도를 마치고 나오니

놀랍게도 비와 바람이 그쳐 있었고 우리는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을 찬양하였다.

비바람이 그치자 불참하겠다고 했던 노숙인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노숙인들까지 285명이 행사에 참여해서

준비한 음식과 선물이 모두 동이 나 버렸다. 그렇게 행사를 마치고 야외에 쳐 놓았던 텐트와 장비들을 모두

정리하고 함께 모여 마무리 기도를 하는데 어떤 권사님이 '어, 비오네'라고 하시고 그때부터 다시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 보던 시청 직원들과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그저 신기해 할 뿐이었고

우리 모두는 평생의 간증 꺼리가 생겼다. 그후 시청에서는 매년 교회가 주관하는 공식행사로 지정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당시 행사에 참여했던 시청 직원 중 두명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해 지금은 교회의

좋은 일꾼 집사님들이 되셨다. 주님의 때는 그분이 원하시는 바로 그때이고 가장 '적당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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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부부는 스스로 작은자라고 말한다. 작은자이기에 더 가지려 하지도 않고 더 챙기려 하지도 않고

더 누리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모든 죄의 근원이 '욕심'이기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눈을 돌리지 않기에 한 곳을 바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 부부는

그 한 곳만을 바라보며 걷고 있다.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기에 욕심이 없다. 아니 욕심이 없다기 보다는

현실에 만족하고 현실에 최선을 다한다. 한 달란트는 그런 의미를 가진다. 주어진 최선의 것을 의미한다.

감추려고 하지 않고 숨기려고 하지 않고 깊이 묻어두지도 않는다. 가진 것을 가지고 그것에 모든 것을

건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때는 내가 그들 나라에서 이민자로 살았는데, 이제 와 내 옆에서

나보다 어려운 이민자로 살아가는 그들을 보니 말할 수 없이 측은했다.' 한달란트를 받은 저자 부부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그 한 달란트의 주인이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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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받은 달란트가 있다. 달란트는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이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았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나누는가가 더 중요하다. 우리의 연약한 눈은 항상 '더 가짐'에 집중하지만 믿음의 눈은 '나눔과

베품'에 집중한다. 저자 부부가 그랬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보았기에 세상은 그들에게 '예수'라는

진리를 전할 공간이며 자리였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그 세상 속에서 진리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선교를 준비하는 선교사 후보생들이 선교를 결정하기 전에 꼭 읽었으면 좋겠다.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할 선교의 길을 가기 전에 바른 생각과 바른 자세를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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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 명작 단편선 2 체홉 명작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백준현 옮김 / 작가와비평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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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러시아 남서부 아조프해 연안의 항구도시 따간로그에서 5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난

안똔 빠블로비치 체홉(Anton Pavlvich Chekhov, 1860-1904)은 어릴적 그의 재능을 지켜본

교사가 선사한 '체혼쩨'와 '나의 형제의 형제', '환자 없는 의사'등의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의학을 공부한 그는 정확한 관찰의 눈을 가지게 되었고, 냉철한 눈으로 사회의

병리를 진단하게 됐으며, 다양한 환자를 접하면서 풍부한 작품 소재를 얻게 된다. '잡다한

이야기', '황혼', '우울한 사람들', '6호실' 등의 단편집과 그의 4대 희곡인 '바냐 아저씨''

'갈매기', '세자매', '벚꽃동산' 등을 발표한 그는 링크 바덴 온천장에서 폐결핵에 의한

심장병으로 타개한다.

체홉의 창작은 풍자작가 체혼쩨의 시대로 300여편의 풍자 소설을 썼던 전기와 '대초원'을

필두로 작품에서 우울함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후기로 나뉘며 이 시기의 공통적안 특색은

회색의 우울한 분위기와 다양한 잉여인간의 등장이다. 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회, 윤리,

도덕 문제에 대한 냉담한 논조와 현실을 슬퍼하기 보다 비웃는 글을 쓰게 되고 현실생활의

무의미함에 의한 염세주의적 창작활동을 하게 된다. 풍자는 체홉 예술의 매력이며

후기에서도 여전히 '눈물을 통한 웃음', '웃음을 통한 눈물'이 작품의 기조를 이룬다. 특이한

점은 체홉은 어떠한 사상이나 목적을 세우지 않고 현실의 모습을 보고 들은대로

평면적이면서 인상적으로 묘사하며 그 결과 그의 작품에는 인생의 파편이 사실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작품의 소재도 놀라운 것이 아닌 평범한 현실의 작은 선과 점으로

이루어지기에 자주 '모파상'과 비교되기도 한다.

전후기를 통해 체홉의 예술은 귀족문화에서 부르주아 문학으로의 사상적 심리적 과도기를

체험한 소시민 지식 계급의 운명에 집중하며 시대의 희생자인 그들은 무언가 모자라고

우둔하긴 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작가는 그들을 혐오하거나 비웃지

않고 풍자한다. 체홉의 언어는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시적이고 서정적이고 성징적인

언어들이 결합되고 민요, 노래, 속담, 의성어, 의태어, 침묵 등도 풍부하게 사용되어 독특한

그만의 언어를 창조한다. 그의 작품의 진정한 의미는 말로 이어지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이루는 말들 사이사이에 말 줄임표, 쉼표, 느낌표 등을 통해

말하는 이의 내면속에 감춰져 있다. 그래서인지 체홉의 작품은 쉬운듯 어렵다.

이 책에는 7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하나같이 가벼운듯 묵직한 무게를 지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만난 두 친구의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격차'와 '비굴함'이 그랬고(홀쭉이와 뚱뚱이),

내연남을 향해 가기전 남편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며 함께 산책하기를 청하는 여인의

'간절함'과 '갈등'이 그랬고(불행), 자신에게 도통 관심이 없는 남편과 어느날 우연히 찾아온

중위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의 신세를 부정하는 여인이 그랬다.(약사의 아내) 쉽게 읽으면

그냥 그저 그런 통속적인 글들이나 조금만 생각하면 그 내면은 깊음과 감춰진 표현들이

드러나 지면과 생각을 가득 채운다. 단어와 문장 속에는 체홉 특유의 풍자와 농담이 들어

있고 그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현실감이 들어 있다. 그를 왜 모파상과 같이 놓고 이야기

하는지 알것 같다. 깊은 여운이 남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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