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 - 종교 게임을 끝내고 사랑을 시작하다
스카이 제서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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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인가 신앙인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띤 논쟁을 벌인 기억이 있다.

그때 주로 나눈 이야기는 왜 우리는 종교라는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그것이 진리인양 믿고 따르고 숭배하는것인지에 대해서이다. 
우리는 교회라는 건물안에 존재하는 종교인인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러면서 약간의 움직임으로 마치 대단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인것처럼 으시대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분명하게 지적하며 두권의 성경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부분을 제거하고 단 10% 정도의 성경만을 남긴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의 일화를 소개한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취하고 나에게 조금은 거슬리는 부분은 
마치 다른 사람을 향한 소리인양 흘려버리는 그런 편협한 신앙을 가진 종교인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며 지극히 이기적인 신앙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하나님을 재 창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씀도 기도도 찬양도 심지어는 봉사도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취하는 현실의 교인들을 보면 
저자의 자판기식 예배라는 표현이 적절하기까지 하다. 
자판기를 생각해 보자. 자기가 원하는 품목을 고른다. 그리고 그 품목에 맞는 현금을 투입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자신이 원하는 물건이 나온다. 그대로 우리의 예배에 대입해 보자.
내가 원하는 말씀만 듣는다. 그리고 거기에 적당한 헌금이나 봉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훌륭한 신앙인이라는 우월감에 빠진다.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저자의 일성인 "같이 살고 싶어서 오신 예수"라는 구절이 마음에 위안이 된다.
주님은 우리와 같이 살고 싶어서 오셨다. 
멀지감치 떨어져서 구경하기 위해 오신것도 아니고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한없이 걸어가는 그런 삶을 위해 오신것도 아니고
우리와 함께 숨쉬고 함께 먹고 마시고 잠자고 그렇게 살기 위해 오셨다. 
그렇게 오신 주님을 누리면 된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함께 살자"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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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도하는가?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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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가진 사람은 기도한다. 그러나 교회만 다니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다.

믿는 사람은 기도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소망하는가 이다.

세상의 것을 구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 조차도 기억하지 못한채

그것이 마치 전부인양 그것을 구하면서 기도한다라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세상에 살기에 그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목적이 틀리다.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 구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눈 앞에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올것들에 대해,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을

향해 구한다.

요즘 많은 분들이 기도를 잃어 버렸다고 말한다.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할 수가 없고 

기도가 안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단호하다.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고 우선순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믿는다고는 하는데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과 같은 행동들을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겨우 믿으려하고 그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믿음 조차 가지려

하지 않는다.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을 그렇게 강조하셨건만 우리의 나약한 믿음은 그러한 말씀 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믿는다고 말한다. 모순이다.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라고 주문을 외우듯 말하지만 정작 언젠가 TV에서 했던

개그 프로처럼 대화가 없다. 가족인데 연인인데 친군데 대화가 없다.

왜인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호기심도 관심도 아무런 기대도 없기에 대화가 필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문제인것 같다.

그런데 감사하고 다행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향해 계신다는 것이다.

듣기를 원하시고 이야기하기를 원하시고 함께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 사랑이 결국 우리를 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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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피心 - 창세기 4 김양재의 큐티 노트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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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우린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수 합니다."라는 찬양이 있다.

날마다 살아 가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고 힘겨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날마다 살아 내야 하기에 우린 주님을 의지 할 수 밖에 없음을 노래한다.

그렇다 우린 그렇게 연약한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누군가의 보살핌,

내지는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그러한 살피심을 이야기 한다. 때를 기다리기도 하고

좌충우돌 부딪히기도 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유난히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다.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소개한 것인데 '여기가 바닥이다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라는 글을 보고 힘을 냈더니 또 지하가 있어서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억지로 버텼는데 계속해서 지하 2층과 3층이 나와서 그 끝없는 고난에 몸과 마음이 마치 총 맞은것 처럼 아팠다'는 글이다. 그러면서 아브라함과 연관지어 말한다. 자녀를 준다는 말만 믿고 기다렸는데 24년간이나 주시지 않는 하나님. 과연 우린 이 약속을 얼마나 붙잡고 기다릴 수 있을까? 요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질문에 아주 자랑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하나님이 약속 하셨으니 당연히 기다리죠라고. 솔직히 두렵다.

그 상황에 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자신있게 말 할 수 있겠지만 막상 현실로 맞닥뜨린 사람은 조심스러워지고 두려워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두려움 조차 버리라고 하시고 믿으라고 하신다. 여기서 우리의 믿음이 결정되는것 같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것, 드러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를 믿고 신뢰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해주셔서 믿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이러한 저러한 유익이 있어서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기에 믿는 믿음 그런 믿음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렘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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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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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아메리칸 그림을 꿈꾸던 시절이 있다. 그렇다고 지금은 그 꿈을 꾸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그 반경과 선택의 폭이 분명 많아 졌음은

인지하는 사실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나아간 그곳, 그러나

그곳은 절망과 상실과 차별과 수치를 더 많이 주는 장소였고 많은 이들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오곤 한다. 물론 그 중엔 그 꿈의 언저리까지

도달한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그런 주변인에 관한 책이다. 물론 저자는 백인이다. 그러나 미국 북동부에

거주하는 미국의 주류 지배 계급인 와스프가 아닌 대부분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노동 계층의 자손이다. 그런 그가 세상과의 싸움을 통해 이런저런 난관을

극복하며 어느정도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그중에 특별히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계륵과 같은 처지가 되어

버린 로스쿨 관련 글들이다. 이 글을 통해 몇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미국 사회의 그것도

명문이라고 하는 대학들의 멋진 장학 제도가 그 중 하나이다. 저자는 그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가난해서 혜택을 받은 것이다 라고. 보통 미국의 로스쿨은

비싸다가 정론이다. 대충 졸업까지 20만불 정도의 돈이 든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엄두를 내기 쉽지 않은 금액이다. 그런데 예일은 학생들 중 가난한 학생들에게 어머어마한

장학 혜택을 준다. 저자만 해도 첫 학기 수업료를 거의 내지 않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약 4만불에 달하는 수업료중 단 1300불 정도만 내면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 하버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정작 그런 혜택을 보아야 할 학생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지원할 엄두 조차도 못 낸다는 것이다.

교수들의 학생들의 페이퍼에 대한 평가를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는 부럽기도 했다.

처음 저자가 페이퍼를 제출했을 때 '형편없음'이라는 혹평을 받았고 다른 보고서에는

자신이 쓴 긴 문단에 동그라미를 쳐 놓고 '문단을 가장한 문장의 토사물에 불과함. 수정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데 이렇게 하려면 최소한 그 페이퍼에 대해 교수가 완벽하게

읽고 숙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학기가 끝나갈 때 쯤에는

'완벽하다'라는 평가와 교수 스스로 가졌던 편견에 대한 사과를 받았다는 사실은

참 부럽기까지 하다.

글을 읽는 내내 노력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어떤 상황에서든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결국

사람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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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디저트 때때로 간식
히라사와 마리코 지음, 정은주 옮김 / 컬처그라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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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 참 좋아한다. 누군가 멋진 곳이 있다고 하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 간다. 그런데 어느날엔가 부터 방법이 바뀌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좋다는

곳이 아니라 그냥 간다. 가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을 발견할 때도 있고 정말

누구 말대로 개고생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여행의 순간 맛 볼 수 있는 로컬

음식들의 세계는 개고생 그 이상이어도 다시 여행 보따리를 싸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여행은 즐겁고 좋다. 저자는 그런 여행의 이면에 담긴 수없이 많은

로컬 음식들을 예쁜 그림과 함께 소개한다. 맛보아 본 것도 있고 전혀 생소한 것도

있지만 역시나 맛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군침이 돈다. 그냥 군침이 돈다. 그러다

어쩌다 내가 맛보아 아는 음식이라도 나오면 죽을 것 같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진다. 특히나 스톡홀름에서 북서쪽으로 세시간 정도 가면

만나게 되는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달라 플로다 호텔'에서 맛본 딸기 아이스

크림은 지금껏 맛보아왔던 그 많은 딸기 아이스크림 중 단연 최고였다. 그냥 단맛이

아니라 약간의 신맛을 곁들인 암튼 오묘하면서도 부드러운 딸기 아이스크림은 몇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입맛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저자가 떡하니 소개를 한다. 친절하게

그림과 곁들여서. 입에서는 군침이 돌다 흘러 내릴 경이다. 그 부드러운 우유 맛도

느껴지는 듯하고 달면서도 약간은 시다는 표현을 써야 하는 딸기맛도 느껴 지는 것 같고

바삭하게 구워낸 와플의 고소함도 느껴지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게 책을 읽어 가다 거의 마지막 즈음에서 만난 젠자이라는 빙수는 언젠가 꼭 먹어

보고 싶은 빙수이다. 오끼니와에 몇번 갔었는데 먹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음식인데

저자의 소개에 의하면 흑설탕의 감칠맛 나는 단맛과 향, 끈끈하고 진한 콩이 빙수와 어우러져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함을 맛보게 해 준다고 한다. 대충 예상이 된다. 밥상같이

투박한 테이블일것이고 그냥 보통의 집보다 조금 더 꾸며 놓은 가게일 것이고 숫가락은 닳고

닳은 모습일 것이고 그래도 그 나름의 멋고 향은 존재 할 것이다. 오키나와는 그랬다.

아무튼 이 책을 읽는 내내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언젠가 먹고 말거야' 라고 마음에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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