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호해지기로 결심했다 -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관계 심리학
롤프 젤린 지음, 박병화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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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고 말해도 사랑받을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렇게 말한 후에 후폭풍이 염려가 되어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자고 번번히 다짐을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다짐 위에서 군림한다. 그래서 우리는 'No'라고 말하는 것을 용기라고

말한다. 


건축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시간에 쫓겨 오롯이 자신을 찾기 어려운 현실을 실감하고 스트레스와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했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

전해주고 있고 책은 사례들을 통해 각자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술했다. 


'마음이 하고 싶은 말을 몸이 때까지 방치하지 마라' 문장은 사실 조금 두려움 마저 느껴진다.

침묵의 암살자들의 공격에 소리 없이 사라져 가는 지인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몸이 반응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얼마전 지인이 암이 발견된지 열흘만에 운명을 달리 적도 있었다.

마음으로 참고 인내하고 버티는 동안 몸은 점점 병들어 가고 힘겹게 버텨 내다 드디어 몸이 말을 하는

순간 이미 늦어버리기 때문이다. 단호해 지는것은 이상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

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단호해지기 위해서는 단순하고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없는 ,

내가 바꿀 없는 관계에 매달리지 말고 '내가 있는 ' 집중해야 한다. 가까워서, 사랑해서,

부모나 가족이라서 못하고 단호해지지 못할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고 상처 받고 결국 관계마저

단절되고 만다. 사랑도 표현해야 하듯이 부정적인 마음도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단호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으로 인해 관계가 멀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문장은 우리의 단호하지 못함과 우유부단 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병적으로 관계를

중요시한다. 그러다 보니 관계의 단절이나 소원함에 대해 광적으로 집착하고 미련을 가진다.

버림받을까봐, 따돌림 받을까봐, 혼자 남겨질까봐 두려워하며 단호함이 아니라 우유부단한

미적지근을 보인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회피하거나 우물쭈물하게

된다. 


저자는 우리를 감정쓰레기 통으로 여기는 사람을 손절하라고 말하며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 곁에

두라고 말한다.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는 관계는 각자의 욕구와 한계를 존중하며 함께 논쟁하고 대화를

나눌 있는 사람은 곁에 두어야 한다. 단호해 진다는 것은 불친절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을 사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할 여유와 이유가 없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거절은 빠를수록 좋다. 솔직하게 자신있게'. 책은 분명하게

'No'라고 말할 있는 용기와 도전의지를 주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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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빌리티 교양수업 : 생활 속의 물리학 - 나는 알고 너는 모르는 인문 교양 아카이브 있어빌리티 교양수업
제임스 리스 지음, 박윤정 옮김 / 토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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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어렵다. 진짜 어렵다. 특히나 문과를 나온 사람에게 중력,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들과 같은

분야를 다루는 물리학은 다른 나라 이야기인것 처럼 낯설고 어렵다. 그런 나에게 책은

물리학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쉽게 넘을 있는 사다리가 되어 주길 바라며 책장을 열었다. 


혀를 내밀고 있는 아인슈타인은 익살스러우면서도 세상을 향한 도발적 표현을 드러낸다.

'아인슈타인은 정말 수학을 낙제 했을까?' 우리가 대충 알고 있는 진실인 질문에 대해 책은

수학이 아닌 다른 과목 성적이 낮아서 낙제를 했다고 설명한다. 흔히 수학을 포기하거나 수학을

못해도 인생을 사는데 불편함이 없다라고 말하는 이들의 핑계거리였던 문장은 팩트체크가

일상화 현실 속에선 이상 사용할 없게 되었다. 


또한 유물의 연대를 측정하는 탄소 연대측정은 유물이나 화석의 나이를 측정한다고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모든 생물이 약간의 탄소-14 원소를 가지고 있는데 호흡을 통해 체내로 들어 온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살아있는 유기체는 호흡을 통해 탄소를 흡입하고 소비하기에 체내 탄소량이

거의 일정한데 유기체가 사망하면 흡입이 중단되고 탄소-14 시간이 지나면 일정한 속도로

소멸되기에 유기체에 들어 있는 탄소-14 양과 남아 있는 양을 비교하면 사망 시기를 측정

있다는 점은 처음으로 알게 사실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60 이내의 기간이라면 거의 정확하게

연대를 맞출수 있다고 하나 이상이 되면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우리 몸의 대부분은 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원격 자동차 키를 머리에 갖다 대면

멀리 있는 차량의 문을 열수 있다는 사실은 영화 어딘가에서 보았던 상황인데 그때는 '설마'라는

생각이었는데 책을 통해 전파가 물을 통과 전파의 전자기 효과가 분자를 동기화 시키고

분자는 전파 신호를 모방하게 되어 전파가 더욱 강해져서 멀리까지 전파가 전달된다고 한다.

원격 자동차 키는 단거리 무선 송신기로 자동차에서 수신한 특정 부정신호를 전파로 만들어 문을

여는데 전파는 전자와 같이 전하를 입자의 움직임에 의해 생성된다. 놀랍게도 말은 우리 몸이

증폭기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특별히 책은 물리학자, , 입자, 천체, 우주학, 날씨, 물질, 기술, 컴퓨터, 전자기기라는 11가지의

주제가 114개의 질문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장마다 주어지는 가지의 퀴즈는 물리학을

이해하기 쉽고 흥미를 가지게 한다. 지금까지 무작정 물리학이 어렵다는 생각을 가졌던 나로서는

'우리 주변의 법칙과 규칙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저자의 말과 '흥미로움과 경의로움의 세계'라는

말에 강한 도전 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각각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조금 짧은 점인데

'교양수업'이라는 사전 고지는 이마저도 이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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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어
권라빈 지음, 정오 그림 / 스튜디오오드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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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 

책의 제목이다. 제목을 보는 순간 지어지는 미소는 아마도 그런 경험이 나에게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무언가 하고 있는데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그것, 저자는 바로 그것을 이야기 한다.

사실 SNS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작가들의 글을 보면 살짝 아쉬운 점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무언가 엉성한 구성도 그렇고, 이것저것 감성들을 모아놓은 잡화상 느낌도 나고, 작가

자신의 개성도 뚜렷하게 러나지 않는 글을 여러번 접한 이후론 왠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것

같다. 일단 책은 제목에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다행이다. 작가 특유의 간결함과 섬세함은 읽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공감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시원하다. 타인의 슬픔을 보며 이상한 소리를 해서

상대방의 속을 긁어 놓는 사람에게 던지는 '염병 떨고 있네' 가슴 응어리까지 던져버리듯 시원하다. 


행복은 내것 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도

아닌 오롯이 내것 이어야 한다. 기준이 나에게 있는데 타인이 뭐라 이유는 없다. 그들의 눈엔

'애개, 겨우 정도'일지 모르지만 내겐 그것이 행복이고 전부다. 저자는 이것을 '먼지와 우주'

표현한다. 비교조차 없지만 그것이 내겐 우주로 전부일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것이기

때문이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눈에 별것 아닌것 처럼 보이지만 내겐 가장 아픔이고

고통이다. 제발 그냥 내버려두면 좋겠다. 괜한 오지랖으로 끼어들어 힘들게 만들지 말고 저자의

표현처럼 '그냥 꺼져' 주면 좋겠다.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하나가 '비교'. 그냥 하나만 보면 되는데 자꾸 비교한다. 그렇게

비교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는데 그냥 비교만 하고 그냉 자리다. 자신은 발전도 변화도

없으면서 비교 당하는것은 죽기보다 싫어 한다. 아이러니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대상과의 비교에서

좌절과 박탈감을 느끼고, 상대적으로 약자와의 비교에서 비교 우위를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정도면....'이라는 자기 만족과 함께. 


자신을 '기억의 조각을 줍는 사람이라 소개하는 권라빈 작가. 책에는 작가 자신의 삶이 묻어난다.

아픔과 고통, 외로움과 아쉬움과 같은 가장 감성적인 삶의 흔적들이 하나하나 살아나듯 펼쳐진다.

보일러가 고장난 방에서 강아지를 끌어 안고 우는 작가의 모습이 떠올라 여름인데도 옷깃을

여미게 되고, 가족들이 보고 싶어 안타까워 하는 작가를 떠올리며 부모님 댁에 전화를 하기도 했다.

책을 읽노라면 마치 나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고 나에게 전하는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생각이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짧은 글이지만 깊은 울림과 감동이 전해지는 권라빈 작가의 글과 글을

완성시키기라도 하는듯 그려 일러스트 정오의 그림은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생각 정도로

절묘하다. 소중함을 잊은 대가는 결국 내가 치러야 하며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말은 두고두고

기억나는 구절이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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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하루 10분 글쓰기
조이 캔워드 지음, 최정희 옮김 / 그린페이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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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어려서부터 가진 습관이 하나 있다. 무언가 생각나는 글이나 좋은 문장을 보면 메모를 한다.

처음에는 그냥 메모를 했는데 조금은 정리를 해보는 것이 좋을것 같아 분류를 시작했다. 그러다

컴퓨터라는 유용한 기기가 등장하면서 플로피 디스크와 하드디스크를 이용하여 저장을 시작했고,

지금은 클라우드라는 가상 저장 공간까지 이용하게 되었는데 양이 제법 많고 가끔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렇듯 글쓰기는 우리 삶의 일부일수도 있고 희망사항일수도 있다.

저자는 삶의 일부 속에서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발견하고 진짜 숨은 목소리를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펜은 마치 마술 지팡이 같다'. 책을 시작하는 저자의 말이다. 공감한다. 종이에 끄적이는 순간,

정성스레 찍는 마침표 하나, 가끔 여백으로 남겨 공간, 잠간 쉬어 가기 좋은 쉼표, 모든것이

어우러져 벌이는 축제가 문장이고 글이다. 저자의 말처럼 작업은 굉장히 예민하고 노력이

요하다. 끊임없이 감각을 유지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긴장을 놓으면 글은 깊은 산속 어디메로

도망가 버린다. 그뿐인가. 글에는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분노도

기쁨도 슬픔과 아쉬움 마저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펜을 들고, 안에 잠재된 힘을

발견하며 끄적거린다.


! 이제 마법의 방망이를 손에 쥐었으니 종이든 혹은 마음판이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어떤것이라도 좋다. 감정이 이끄는대로, 혹은 펜이 움직이는대로 보는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무죄다. 오히려 상상하지 않는 작가가 문제가 있는 것이지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무려 몇백년이나 전에 천공의 라퓨타와 거인국과 소인국의 이야기를 담은 '

걸리버 여행기' 조나선 스위프트도 있지 않은가. 물론 내면의 목소리를 소재로 사용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작가의 의지에 달려 있지만 언젠가 부딪치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당당할 있도록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저자의 특별히 공감이 되는 말이 있다. '글을 쓰는 것을 특별히 직업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맞는 말이다.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사람을 정원사라고 부르지 않듯이 굳이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글을 있다. 좋은 글은 장차 나무로 자라날 씨앗과 같은 잠재력을

가진다. 이런 잠재력이 모여 좋은 글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글을 쓰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걸음마 없이 걷기가 불가능하듯 글쓰기도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책은 노력을

위한 준비를 이야기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마음 속에 렌즈를 가지고 있다. 사건을 확대시켜 보는 광각렌즈가 있는가 하면,

사건을 축소시켜 보는 접사렌즈도 있고, 멀리 있는 사물을 가까이 당겨서 보는 망원렌즈도, 사건을

조금은 변형시켜 보는 어안렌즈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렌즈들을 통해 사건과 사물을 바라보며 최대한

판단을 배제하고, 주변을 관찰하고, 감각을 통해 세상을 느끼며 모든 경험들을 통해 글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풍성한 소재로 가득한 삶을 얼마나 들여다 보느냐에 따라 글의 질감이 달라진다.

사람의 일생이 항상 파란만장하지는 않듯이 글도 항상 스펙터클하고 긴장감이 넘치지는 않는다.

적절한 '책갈피'라는 쉼표가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소재들을 얼마나 조절하고 사용하느냐에

달린것 같다. 


저자는 책의 전반에 걸쳐 '상상력' 이야기 한다. 풍부한 작가의 상상력은 노력의 산물이다. 경험과

습득을 통해 얻어지는 재료들을 가지고 상상의 폭을 넓혀 나갈수록 좋은 글이 만들어 진다.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에서도 다가가야 목표가 있듯 작가의  상상력은 뚜렷한 목표의식 속에서 좋은 글감으로

표현되는것 같다. 책은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 보면 좋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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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리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 지금 느헤미야를 묵상하다
황성은 지음 / 두란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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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주의 일에 참여 ,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한 손을 의지하며 거룩한 주의

일에 기쁨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P60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P 144



코로나 19 사태는 우리에게 교회당의 크기와 모이는 사람의 숫자와 같은 천박한 과시가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을 알게 하고, 마스크로 입을 막고 생활하다 보니 그동안 무책임하게 내뱉었던

말들이 생각나 억지로 틀어 막고 있는 마스크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 속에서 무너진

성전을 수축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느헤미야의 모습은 잃어 버렸던 혹은 잊고 있었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되찾기 위한 최고의 기회임을 깨닫게 해준다. 


느헤미야를 공부해 사람이면 것이다. 그는 지금으로 치면 교포 3세다. 할아버지가 바벨론으로

끌려 땅에서 아버지 하가랴가 태어났고 대를 이어 느헤미야가 태어 났다. 고대 엘람 왕국의

수도인 수산궁에 거할 정도로 출세한 그는 '왕의 술관원'(1:11) 된다. 고대 근동 지방의 왕의

술관원이란 지금으로 말하면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을 겸하는 막강한 실세이다. 포로로 끌려온 3세가

정도의 위치에 올랐다는 것은 느헤미야의 능력이 출중했음과 그가 완벽한 바사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느헤미야에게 포로로 잡혀 오지 않고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무너진 성벽을

세우지도 못하고 노략질 당하며 환난과 능욕에 시달리고 있는 예루살렘의 상황이 전해지자 그는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1:4)했다. B.C 597년과 B.C 538

두차례에 걸쳐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은 스룹바벨과 에스라에 이어 느헤미야

3 귀환을 하게 되는데 성전을 보호하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느헤미야를 공부하며 만났던 단어 하나 때문에 참을 씨름한 기억이 난다. '그때에'라는 단어이다.

'그때에 내가 왕의 술관원이 되었느니라'(1:11) 나오는 단어이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의 지경을 넓혀 민족의 죄를 자기 죄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기도를 바로 '그때에'

응답해주셨다는 것이다. 그때란, 시기 상으로 가장 적절한 ,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수도 있지만 그때가 바로 가장 정확한 '하나님의 ' 것이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항상

적절하다. 우리가 원하는 그때가 아닌 당신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타이밍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때를 기다리는 인내와 때를 바라 있는 영적인 눈이다. 


느헤미야의 기도의 다른 특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 위해 기도했다는 것이다. 성경 어디를

찾아봐도 술관원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출세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그곳으로 유대 백성들이

들어오게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그때에' 일을 있는 적절한 자리로 가는 은혜를

더하셨다. 자리는 도구일 뿐이다. 자리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면, 도구가 목적이 된다. 자리는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수단을 간구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우리에게 벌어진다. 우리의

기도가 바뀌어야 한다.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있는 기도를 해야 한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 온다. 그리고 문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들이 닥친다. 세상은 영적

전쟁터이기 때문에 선한 일을 위기가 오기도 한다. 이것은 어쩌면 사탄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공격일것이다. 우리 밝게 깨어 있고 선한 일을 하면 자신의 영역이 축소되고 힘을 잃게

되므로 격렬하게 저항하고 방해할 밖에 없다. 느헤미야의 성전수축 과정에서도 동일한 일이

벌어진다.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인물들이 자기의 영역이 침해 당하고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유대 백성들을 공격한다. 온갖 거짓말로 이간질을 획책하고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술책에도 성전수축이 진행되자 이제는 유다 백성들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그들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불어 넣는 심리전을 펼친다. 힘도 없고 돈도 없어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무슨 수로 자신을

지키겠느냐며, 하나님께 버림받아 이미 황폐해진 성에서 예배를 드려봤자 하나님이 받으시겠냐며,

하루만에 지을 듯이 덤벼 들지만 결국 부실 공사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린다.(4:2).  우리의

삶과 흡사하다. 우리가 믿음의 길에서 중요한 결단, 믿음의 결단을 내리려 마다 자주 듣던 소리다.

이때 느헤미야의 대처가 멋지다. 산발랏의 조롱과 비아냥거리는 말도 안되는 이간질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 만을 바라보며 몸부림치며 기도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문제는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점점 커져서 결국은 하나님을 보게 가려버린다. 느헤미야는 문제와

씨름하는 대신에 하나님과 씨름했다. 문제 해결의 키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이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한다. 



느헤미야에는 감격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우는 장면이다. 성벽을

재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사 에스라를 청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청한다. '모든 백성이 일제히

청하매'. '같은'이라는 의미의 '일제히' 많은 백성이 사람인것 처럼, 모든 백성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열망했다는 것이다. 같은 목적, 같은 ,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 것이다. 그때

모인 사람이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8:2) 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새벽부터

정오까지' 대략 6시간 동안 말씀을 들은 것이다. 설교 시간이 25분이 넘어가거나 예배 시간이 한시간이

넘어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호들갑을 떠는 우리의 상황과 너무도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렇게

6시간을 말씀을 듣는 이들의 태도는 '귀를 기울였다' 표현된다. '귀를 기울였다' 단어와 '마음에

새기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데 말은 지금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마음에 새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책을 폈을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는 말씀을 통해

그들의 마음과 자세가 어떠했는지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장면이 9절에 나온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우는지라'(8:9) 조상들이 죄를 지어서 죄로 인하여 포로로 끌려갔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다시 돌아온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무너진 성전과 성벽이 모두 재건된 예루살렘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감격의 눈물이,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의 눈물이 말씀을 통해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감격이 있어야 한다. 주일이

되었으니 어쩔 없이 교회를 가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 대한 벅찬 감격과 기대감으로 가야하며

무거워진 눈꺼플과의 싸움에서 져서 낮잠 보충하는 시간이 아니라 오늘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내게 주시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눈물로써 말씀을 대하는 그런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의 회복은

이런 것이다. 숫자와 크기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고 예배의 대상이 분명해 지는 것이다.

자신들의 만족을 위한 쇼를 그치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는 예배를 드려야 것이다. 


책은 우리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싶다. 예배의 본질과 자세에 대한 좋은 지침이 될것 같다. 젊은 나이에

예배에 대해 바로 알고 드린다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예배의 회복이 조금은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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