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계단 - 금융전문가 아빠가 전하는 투자 레벨 올리는 법
신현준.김학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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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라는 경제 구조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 지금, 우리는 수익률에 목을 매며 동학개미와

서학개미, 로빈 후더 등의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고수익을 향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에

발 맞추어 이런저런 종류의 투자비법들이 판을 치며 개미들의 푼돈을 갉아 먹고 있는 현실 앞에 저자는

복잡한 투자이론이나 쉽게 돈 버는 방법이 아닌 냉혹한 투자 세계 속에서 현명한 인생 투자를 이어가는

방법론과 전력을 이야기 한다. 이미 우리는 로버트 기요사키(Robert Kiyosaki)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통해 자산과 부채의 차이가 무엇인지 어떻게 실제 생활에서 좋은 투자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웠고, 레이 달리오(Ray Dalio)의 <원칙>에서 투자 결정시에 따라야 하는 자기만의 원칙의 필요성과

일관성, 정직성, 투명성을 배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투자는 어렵다. 그냥 어려운게 아니고

수익을 내는 것이 마늘 귀를 통과하는 것 만큼 어렵다.

인생은 선택이고 투자는 그 선택의 선상에 있는 양날의 검이다.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는 수많은 투자

현안을 잘 이해해야 하고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선택은 감이 아니고 현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투자의 제1원칙은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파는 것'이다. 싸게 사기 위해서는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한다. 좋은 물건을 남 보다 먼저 알아 보는 안목도 필요하고 그 물건을 선점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알지 못하는 곳에 투자하지 말라'는 격언은 항상 옳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본인이

책임지면 되지만 막무가내식 묻지마 선택은 어쩌다 수익률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시대와 공간과 영역을 넘어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몰지각한 정치인이 자주 사용했던 소위 '영끌'은 투자가 아닌 투기를 권장하는 것이다.

투자의 관점에서 볼 때 '젊음'이 갖는 장점은 투자의 규모가 아니라, 시간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무궁무진한 '경험의 양'이다. 투자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부동산,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을 배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사는데 있어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현명하게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능한 빨리 배우라고 권한다.

저자의 글 중 눈에 쏙 들어 오는 대목이 있다. '100% 이길 수 있는 투자자는 없다'. 진리이다. 그런데 우린

가끔 이 진리를 잊어 버리고 수익률에 목을 맨다. 70% 이상을 이기면 대가가 되고, 80%이상을 이기면

투자의 신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70-80%의 승률은 대단한 결과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이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대박'을 꿈꾼다. 저자는 냉정하게 이길 수 있는 확률이 50% 또는 그 이하가

되면 투자를 안하는 것이 좋고 이것을 도박 또는 투기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것이라고 말한다. 특히나

필요한 전문성도 인력도 충분한 자금력도 없는 개인투자자들은 더욱이 가질 수 있는 패가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투자가능 자금(investable fund, 보유 자산 중 필수적이거나 급하게

사용할 용도가 없는 돈) 파악을 통해 큰 위험이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손병두(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추천서에도 나와 있듯이 저자는 참 친절하다. 마치 코치의 레슨처럼 투자의

정석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짚어준다. 이 책은 시중에 넘쳐나는 '부자 되기 자습서'가 아닌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걸으며 자신만의 투자의 길을 발견하게 돕는다. 기초를 잘 다지는 길이 늦어도 바른 길이라는

진리가 또 한번 강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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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생각식당 - 생각으로 돈을 버는 기획자의 발상법
김우정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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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값을 매긴다면? 아마도 우리는 매번 적자에 허덕일 것이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격으로 매겨진다면 우리의 생각의 대부분은 쓰레기통으로 던져질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생각의 폭과 방법은 좁고 좁고 좁다.

생각은 규칙을 만드는 작업이다.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좋은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규칙은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절실함을 만나야 비로소 실체가 나온다. 생각에는

예술가의 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값을 받을 수 있다. 예술혼이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표면적

외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정신이다. 연극

프로듀서인 찰스 코크란(Charles Cochran)의 '절대 관객을 위해 쇼를 올리지 마라. 오히려 항상 너 자신을

위해 올리되, 최선을 다해서 제작해라. 그러면 아마 관객이 보러 올 것이다'라는 말처럼 자신의 심장이

터질것처럼 만드는 생각만이 누군가의 시선과 집중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성공은 운이 따라주어야 가능하다.' 저자의 솔직함이 묻어나는 문장이다. 그렇다. 성공의 비법은

모두 허구다. 그 사람에게 그것이 통하고 운이 다았기에 성공한 것이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린 그 허구를 마치 진리인양 쫒는다. 비법에는 운이라는 달콤한 함정이 숨어 있고 정작 누구도

그 함정을 알려주지 않는다. 좋은 수는 성공의 비법이 아니라, 실패를 하지 않는 방법이다. 실패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작이 된다. 두려워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면 된다. 위인전을 읽었다고 위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사람을 안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운은 움직인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쉽게 잡히지는 않지만 운은 스스로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 온다.

저자는 착한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세상이 착하지 않기 때문에 착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단지

누가 덜 악한가의 문제이다. 누구나 악당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악당에게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저

내가 그 대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영원한 승부는 없다. 승부는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고 잘 끝낼 줄 알아야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요즘 well-being 만큼이나 well-dying이 중요해졌다. 결국 인생은 자신과의 승부이기에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 전반을 좌우하기도 한다. 늦지 않았다. 긴 호흡으로 하나씩 시작하면 된다.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이고 염려는 시작하면 사라진다. 살아남는 것이 승부에서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강한 사람이 살아 남는 시대가 아니라 살아 남은 사람이 강한 것이다. 문제에 봉착했다면

이 문장을 기억해보자. '문제 자체는 문제가 아니야, 진짜 문제는 문제를 대하는 너의 자세지'(캐리비안의

해적 중에서) 승부의 세계에서 '직시'는 승패의 전부이다. 무엇을 보며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생각하는

지에서 이미 승부는 결정된다. 그리고 우린 여전히 그 승부의 갈림길에 서있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고민이지만 새로움이며 익숙함을 바꾸는 일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세상에 없다.

지금 익숙한 모든 것도 처음에는 변화된 새로움이 시작이었다. 변화는 발칙(저자는 이 단어를 사용한다.

마음에 든다.)하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변화까지 변화시키는 일이 혁신이다. 혁신은 변화보다 본질적이고,

발견보다 의도적이며, 모험보다 계획적이다. 내가 행동으로 경험한 것만이 혁신의 연료이다. 혁신은 가격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 고통의 대가를 치러야 완성되는 선물이다. 낡고 무딘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변화이고 혁신이다. 0이 마침의 숫자라면 1은 출발의 숫자이다. 시작은

결국 끝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이다. 완벽한 것은 하늘의 길이고 완벽하고자 노력하는 것은인간의 길이다.

그리고 그 인간의 길은 '진심'이 통한다. 그런 길을 우리는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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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 - 도시에서 사일 시골에서 삼일
한순 지음, 김덕용 그림 / 나무생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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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잡한 곳에서 4일, 물 맑고 공기 좋은 한적한 곳에서 4일을 산다.(일주일은

7일이지만 목요일 오후에 내려와서 월요일 새벽에 올라가는 나에게는 모두 4일씩이다)그렇게 산지

벌써 3년이 되어 간다. 나도 저자처럼 서울로 올라가려고 준비할땐 한없이 밍기적거린다. 서울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심히 생활하지만 경기권을 벗어나 6번 국도에 들어서면 마음이 설렌다. 일단

창문을 내린다. 숨이 쉬어 진다. 그렇게 숨을 쉬기 시작하며 서울 생활을 하며 생각나거나 좋았던

음악들을 하나씩 듣는다.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집에 도착하면 며칠 동안 방치된 마당과 텃밭이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집에 들어서서는 짐도 풀기 전에 그라인더에 빈을 담고 간다. '드르륵 드르륵' 갈리는

소리와 함께 올라오는 커피향이 너무 좋다. 그리고 여과지를 깔고 정성껏 물을 부으면 올라오는 커피향은

이미 그 자체로 행복이다. 그렇게 내려진 커피를 후배가 만들어 준 하얀 잔에 담으면 또 한번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렇게 나의 시골 생활은 시작된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시골 생활이 그려진다. 나와 거의

비슷하기에 동질감 마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말하는 '섞이다'라는 말이 마음으로 느껴진다. 나도 그랬다. 낯설고 어색하고 경계심

많던 서울 촌놈이 어느새 자연을 누리고 즐기며 함께 섞여 가고 있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십년여를 살아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던 무관심 말기 환자가 옆집 앞집(뒷집은 없다.우리집이 마지막

집이기에) 어르신들의 자녀들 손주들 이야기까지 속속들이 안다. 그뿐인가. 그저 '풀떼기'로만 알고 있던

무수히 많은(저자의 글에도 나오는 원추리, 개망초, 작년에는 자연산 송이도 캐봤다) 식물들을 알게 되는

개벽이 일어 났다. 사람은 그렇게 섞여가는 것이다. 세상과 섞이고, 사람과 섞이고, 자연과 섞이며 그렇게

사는 것이다.

저자는 임지훈이라는 가수에게서 쉼표를 건져냈다. 노래를 하지 않는 순간 노래를 느끼는 경지를 만나기도

한다. 아무 소리 없는 공명, 음과 음 사이의 여백, 기타 소리의 긴 여운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난다. 나도 '꾸러기' 시절의 그를 만났다. 정말 꾸러기였고 숫기없는 삐딱이였다. 그런 그가

무대에만 오르면 광기를 보였다. 무아지경에서 나오는 기타 소리는 천상의 소리이다. 가끔 둔탁하게 들리는

6번 줄의 소리는 징과도 같았던 기억이다. 그는 여전히 미사리의 어느 카페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같은

기억과 비슷한 세대들의 공통점은 문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나와 같은 세대일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쉼표'가 있다. 김민기 선배이다. 선배는 노래를 참 못 부른다. 목소리도 굉장한 탁성이다. 그런데도 난

선배의 노래를 들으면 그냥 좋다. 마음이 편안해 지고 숨이 쉬어진다. 선배의 곡을 리메이크한 젊은 가수들의

곡들은 참 맑고 깔끔하고 세련되었지만 난 여전히 선배의 노래가 좋다. 마치 가을이 되면 편지를 써야 할 것

같아 진다.

단숨에 읽었다. 나와 비슷한 시대의 사람이 비슷한 환경에 살며 비슷한 생각과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서

그런지 흐뭇하다. 저자가 금요일이 되면 둘러싼 모든 일에 함구무언하며 가방을 싸는 것 처럼 나는 목요일

오후에 가방을 챙긴다. '시골에 들어와 나무를 제대로 보려면 한 3년은 걸려'라고 말씀하시는 20여년차

선생님의 말씀을 나는 앞집 어르신에게 들었다. 그렇게 이 책은 나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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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인가, 제자인가 에센셜 에디션 팬인가, 제자인가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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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수치와 죄책감과 두려움의 이유였던 얼룩이 이제 사랑과 은혜와 포용의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P115

그분은 우리의 단 하나 뿐인 애인이 되고자 하신다. P53

일요일이되면 습관적으로 교회에 간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헌금을 내며 한 시간을 잘 버틴 댓가로 일주일의

위안을 얻는다. 다른 어떤 교회의 모임도 개인적인 경건생활도 없다. 혹은 교회에도 꼬박꼬박 나가고

성경공부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봉사도 꽤 하지만 정형화된 종교 생활이 굳어져서 자신이 정한 기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 책에서는 이런 이들을 팬이라고 하고, 성경과 다른 책에서는 바리새인이라고

하며, 세상은 이런 이들을 종교 생활만 하는 종교인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그런 종교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분명한 위치를 정하라고 주문한다. '경기가 끝나면 쉴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안 끝났다.'

(Don't Give Up중에서)라고 말하며 지치고 힘겹고 어려워서 포기하려고 하는 우리에게 강렬한 재도전 의지를

불어 넣었던 저자의 강한 믿음과 견고한 신앙을 기억하며 책장을 연다.

'친밀감'. 참 어려운 단어다.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친밀감이 아니라 가슴으로 다가오고 마음으로 인정되는

그런 친밀감을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친밀감을 주님과 가지라고 이야기한다. 단순히 모여서 지적 충만함에

도취되어 배우는 그런 성경 공부가 아니라 몸이 따라주고 행동이 동반되는 그런 친밀감을 말하는데 사실

어렵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네 앞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약한 믿음에 경고를 보내신다. 이 말을 잘 생각해야 한다. 내가 첫번째 자리에 앉을게가 아니다. 다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죽을 각오를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말한다. 자녀가 우선이 되지 않고, 돈이 우선되지 않고, 출세와 성공이 우선되지 않고 모든

것에 앞서 하나님이 우선이 되는 것이 바른 믿음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현재의 혹은 과거의 위치와 자리,

상황에 관계없이 딱 두 부류의 크리스천이 존재한다. 팬인가 제자인가?

'와서 죽으라'는 충격적인 초대 앞에 어떻게 할것인가? 음, 죽으라는 초대가 너무 과한가. 그러면 가진 것의

절반을 내놓으라는 초대는, 혹은 누군가처럼 사랑하는 자녀를 내놓으라는 초대는 어떤가? 사실 주님은

우리에게 '쉼'을 허락하시는 초대에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라는 한정을 두신다. 그만큼 삶에 치열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다. 이러한 초대는 결국 우리의 믿음과 신앙의 결단을 요구한다.

말로만 하는 것은 안된다. 지금까지 말로만 예수를 믿었기에 가장 높임을 받아야 할 분을 세상의 놀림거리와

근심거리들의 우두머리로 전락시켜 버렸다. 이제 우리는 위선과 허영으로 가득찬 종교 생활을 걷어 내고

'야다'의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배설물처럼 여겨진 바울에게 예수님 때문에 죽는 것은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임' 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의 죽음은 하나님과의 또다른 동행이기에

도망하지고 반항하지도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것이 제자의 삶이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미친 사람의 이야기 중 최고는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 가셨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우리가 그분을 먼저 쫓은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우리를 쫓으셨다. 우리가 그분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우리가 먼저 그 길을 간것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그 길을 가시고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따르는 것이 제자이다. 팬은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만 봐도 무방하다. 앞에서 미친듯이 열광하다 뒤돌아 서면 적이 되어도 된다. 그러나 제자라면

그 곁을 지켜야 하며 멀리 있어도 그 마음이 변해서도 안되며 그가 따라오라고 하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그 길을 가신 그 길의 끝은 모든 것을 다 내어놓은 죽음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그 길로

초대하신다. 주님은 항상 우리를 부르시지만 우리는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기에 주저하고 머뭇거린다.

그런데 더 놀라운것은 이런 우리를 그래도 기다려 주신다는 것이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이 책에는 제자의 본을 보여주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눈에 들어 오는 두명이 있다. 니고데모와

윌리엄 보든이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공회 출신의 엘리트라는 신분적 제약으로 한밤중에 예수남을

찾아 왔던 사람이다. 그밤에 그는 예수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아 들이고 제자가 된다. 그후 무도한 법정에 선

예수님을 홀로 변호하다 공회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나 그의 믿음은 결코 굽혀지지 않았다. 비어 있던 무덤에도

찾아가고 평생을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제자는 이런것이다. 배웠기에 그 배움대로 살려고

생명을 건다. 저자는 자신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분명히 말한다. 자신이 저지른 어떤 실수도, 어떤 성공도,

이 사실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받아 들이면 예수님을 따를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보든(William W Borden)의 신앙 고백이자 제자의 삶에 대한 세 개의 문장을 적어 본다.

No Reserves.

No Retreats.

No Regrets.

주님께서 그리스도인을 부르실 때 주님을 알고(Knowing God), 주님으로부터 배우고(Learning from God),

주님을 아는 지식에까지 자라게(knowledge of God) 하시려 부르셨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히-야다,

헬-기노스코)은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정보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얻게되는

경험적, 체험적, 실재적, 관계적인 앎이다. 이 책은 제자의 길을 걷길 원하는 모든 이들과 신학도의 길을

걸으려고 마음 먹은 모든 이들이 꼭 읽어 봤으면 좋겠다. 그들을 향한 부르심에 'Here I am'이라고 응답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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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생존 수업 - 인공지능 시대가 불안한 사람들에게
조중혁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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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토마스 모어(Thomas More)를 인용해 인공지능에 대해 설명한다. 모어는 인간이 신에게 벗어나

스스로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인간의 이성과

덕성을 통해 세상을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유토피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힘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노예제도를 인정했는데 저자는 여기에서 착안하여 우리를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방법이 '인공지능'이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은 만능이 아니다. 대화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도,

융합적인 사고를 하는 것도, 상황을 파악하여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도, 무엇보다 일을 만드는 일과 일을

해결하는 것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그래서 저자는 인공지능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해하면 인공지능을

통해 훨씬 좋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게 될것이라고 말한다.

뉴턴 이후 최고의 물리학자라고 이야기 하는 스티븐 호킹 박사는 '생각하는 로봇 개발을 위한 완전한

인공지능의 등장은 인류의 멸망을 가져 올지 모르며 컴퓨터가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지금까지의 초기 인공지능 기술은 유용성을 충분히 입증했지만 인간의 능력에 필적하거나 이를

뛰어 넘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영화나 소설에서나 보아 왔던 기계에 지배당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진화는 매우 느리나 기술은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하면 폭발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기계가 사람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가정은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창의성'이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개인은 창의성을 가지고 스스로

살아 남을 수 있어야 하며 기업 입장에서도 인공지능으로 대부분의 일이 자동화, 정형화되면서 이전과는

차별된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로봇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로봇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누구나 알고 있는 지식,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을 통해서는

결코 살아 남을 수 없다. 세계경제 포럼은 현재 7세 이하 아이의 65%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 한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 남을 무기는 '창의성'이다. 창의적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창의적 생각을 하기 위해 깊은 고민을 오랫동안 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창의적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의지만 가지고 어떤 일을 오래 지속하기는

어렵다. 즐거움이 있어야 그 일을 오래 할 수 있다. 창의성은 구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에서

나온다. 이를 통해 문제해결을 가능케하는 생산적인 창의성이 나온다.

인공지능의 발달하면서 사회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분야만 계속 고집하는

전략은 특수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위험성이 커질수 밖에 없다. 사회의 빠른 변화 속도를 이기기 위해서는

파도를 헤쳐 나가려는 바이킹이 아니라, 파도를 타고 다니는 서퍼가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서는

직업의 유연성이 매우 중요하다. 즉 언제라도 변신 할 수 있는 전략적 무기를 두개 이상은 가져야 한다.

이미 와 있는 인공지능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우리의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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