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 - 도시에서 사일 시골에서 삼일
한순 지음, 김덕용 그림 / 나무생각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잡한 곳에서 4일, 물 맑고 공기 좋은 한적한 곳에서 4일을 산다.(일주일은

7일이지만 목요일 오후에 내려와서 월요일 새벽에 올라가는 나에게는 모두 4일씩이다)그렇게 산지

벌써 3년이 되어 간다. 나도 저자처럼 서울로 올라가려고 준비할땐 한없이 밍기적거린다. 서울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심히 생활하지만 경기권을 벗어나 6번 국도에 들어서면 마음이 설렌다. 일단

창문을 내린다. 숨이 쉬어 진다. 그렇게 숨을 쉬기 시작하며 서울 생활을 하며 생각나거나 좋았던

음악들을 하나씩 듣는다.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집에 도착하면 며칠 동안 방치된 마당과 텃밭이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집에 들어서서는 짐도 풀기 전에 그라인더에 빈을 담고 간다. '드르륵 드르륵' 갈리는

소리와 함께 올라오는 커피향이 너무 좋다. 그리고 여과지를 깔고 정성껏 물을 부으면 올라오는 커피향은

이미 그 자체로 행복이다. 그렇게 내려진 커피를 후배가 만들어 준 하얀 잔에 담으면 또 한번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렇게 나의 시골 생활은 시작된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시골 생활이 그려진다. 나와 거의

비슷하기에 동질감 마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말하는 '섞이다'라는 말이 마음으로 느껴진다. 나도 그랬다. 낯설고 어색하고 경계심

많던 서울 촌놈이 어느새 자연을 누리고 즐기며 함께 섞여 가고 있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십년여를 살아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던 무관심 말기 환자가 옆집 앞집(뒷집은 없다.우리집이 마지막

집이기에) 어르신들의 자녀들 손주들 이야기까지 속속들이 안다. 그뿐인가. 그저 '풀떼기'로만 알고 있던

무수히 많은(저자의 글에도 나오는 원추리, 개망초, 작년에는 자연산 송이도 캐봤다) 식물들을 알게 되는

개벽이 일어 났다. 사람은 그렇게 섞여가는 것이다. 세상과 섞이고, 사람과 섞이고, 자연과 섞이며 그렇게

사는 것이다.

저자는 임지훈이라는 가수에게서 쉼표를 건져냈다. 노래를 하지 않는 순간 노래를 느끼는 경지를 만나기도

한다. 아무 소리 없는 공명, 음과 음 사이의 여백, 기타 소리의 긴 여운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난다. 나도 '꾸러기' 시절의 그를 만났다. 정말 꾸러기였고 숫기없는 삐딱이였다. 그런 그가

무대에만 오르면 광기를 보였다. 무아지경에서 나오는 기타 소리는 천상의 소리이다. 가끔 둔탁하게 들리는

6번 줄의 소리는 징과도 같았던 기억이다. 그는 여전히 미사리의 어느 카페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같은

기억과 비슷한 세대들의 공통점은 문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나와 같은 세대일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쉼표'가 있다. 김민기 선배이다. 선배는 노래를 참 못 부른다. 목소리도 굉장한 탁성이다. 그런데도 난

선배의 노래를 들으면 그냥 좋다. 마음이 편안해 지고 숨이 쉬어진다. 선배의 곡을 리메이크한 젊은 가수들의

곡들은 참 맑고 깔끔하고 세련되었지만 난 여전히 선배의 노래가 좋다. 마치 가을이 되면 편지를 써야 할 것

같아 진다.

단숨에 읽었다. 나와 비슷한 시대의 사람이 비슷한 환경에 살며 비슷한 생각과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서

그런지 흐뭇하다. 저자가 금요일이 되면 둘러싼 모든 일에 함구무언하며 가방을 싸는 것 처럼 나는 목요일

오후에 가방을 챙긴다. '시골에 들어와 나무를 제대로 보려면 한 3년은 걸려'라고 말씀하시는 20여년차

선생님의 말씀을 나는 앞집 어르신에게 들었다. 그렇게 이 책은 나와 닮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