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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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지'. 과자로 만든 의자. 의자는 의자인데 앉을 수 없는 의자. 생각해 보니 우리에겐

웨하스 의자가 너무 많다. 의식에는 존재하지만 현실에서 만나기는 싫은 '그림의 떡'이고

상실의 현실화이다. 그런 상실과 현실을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유연함과 유려함으로 전개해

나간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절실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렇다. 그 절실함은 금새

지치기도 하고 지루해지고 변질되기도 하지만 최소한 사랑하는 그 순간 만큼은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리고 주안공의 말처럼 '매일 조금씩 망가져 간다'. 사랑하는 것 자체의 달콤함과

예쁜 진실은 그리 길지 않다. 마치 끝이 보이는 터널과도 같이. 그럼에도 그 시작은 항상

외로움과 고독을 동반하고 또한 이내 부서져 버린다. 그래서인지 제목인 '웨하스 의자'는

두려움과 절망이다. 키에르 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처럼 말이다. 그녀의 절망은

아이러니하게도 완벽에 가까운 섹스를 하고 난 후 느끼는 감정이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입구도 출구도 없는 운동장(분명 어딘가에 있겠지만 별 의미가 없는)과 같은 인생에서

별 의미없이 운동만 할 뿐인 그곳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주인공에게 슬픔은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그녀는 갇혀 있음과 죽은것 처럼 살아 있음을 경험하다 애인이 나타나면

단박에 모든것을 다 잊어버리고 '보고 싶었어'를 말한다. 사랑 혹은 절망 그 사이의 지독한

고독감은 어쩌면 그녀가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사랑이 존재할까? 사랑에 제한이 가능할까? 제한을 한다고 그 사랑이

없어질까? 무엇으로 그것을 제한하며 못하게 할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둘이 안타까워진다.

아니 그녀가 안쓰러워진다. 결말을 아는 만남이어서인지, 머물다 갈 사람이라서인지 그녀에겐

항상 어둠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독자는 어느새 깊은 한숨이 나온다. 여하튼 그녀의

무미건조한 일상은 그로인해 살아나고 다시 죽는다.

 

에쿠니 가오리답다. 특유의 간결함, 담백함은 이제 그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호흡도 짧다. 길게 가져가지 읺고 단숨에 몰아친다. 이런 그의 마력이 일상과도 같은 단순함을

몰입감을 가지게 만든다. 그리고 몰입감은 그대로 생각으로 이어진다. '과연 그 남자도

사랑했을까?' 그들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으며 그것을 믿고 있고 같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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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말, 씀
글순희 지음 / SISO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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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고 관심을 갖게되고 상품을 구매할 욕구를 만들어 주는

글을 쓰는 이들이 있다.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들. 그들은 일반인들의

상식을 뛰어 넘고 현실 속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현실안에 살아 있는 글을 쓴다.

이 책은 그 중 한 사람의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말은 어렵다. 특히나 '국어'는 어렵다. 단어 하나, 문장 부호 하나, 삼지어 띄어 쓰기

하나로 의미가 바뀌고 달라진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우려다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장난 같지만 결코 그 갚이를 무시할 수 없는 언어의 유희, 우리

선조들은 이미 이 즐거움을 알았기에 언어의 유희와 농담을 해학과 풍류에 담아 즐겼다.

저자도 자신을 '글을 가지고 노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평범해서는 금새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는 그쪽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미친듯이 가지고 놀아야 하며, 생각해

내야 한다.

'오늘 잘했어'와 '자잘한 일이야', '오늘 도망쳤다'를 '오! 늘 잘했어'와 '자! 잘한 일이야',

'오늘도 망쳤다'로 바꿀 수 있는 기발함, 이 기발함이 그를 광고판에 남아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발함은 수 많은 공상과 망상 속에서 나온다. '얻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처절한 기억이라는 '고통의 산물'이다.

저자의 많은 말들 중 이말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수천 번의 연습이 단 한 번의

역습을 만든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한번에 덜컥 이루어지는

금수저들이 아닌 그저 평범한 우리에게 연습은 불가분이다. 그렇게 죽도록 연습하고

또해서 단 한번 찾아 오는 그 기회를 잡는 것이다. 기회는 준비되어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 한번의 역습이 모이고 모여 단 한번의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 누군가는 수천번의

실험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누군가는 수만번의 훈련을 통해 정상에 서고, 누군가는

수없는 시간과의 싸움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다.

우리에겐 동일한 조건이 주어진다. 다만 그것을 위한 시간과 상황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마지막'을 거꾸로 하면 '막지마'이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을 의미하는 이 말, 코로나라는 생경한 경험 앞에 놓인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한 마디 같다. '마지막'이 아니라 '막지마'이다. 다시 시작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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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여행입니다 - 나를 일으켜 세워준 예술가들의 숨결과 하나 된 여정
유지안 지음 / 라온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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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은 아픔이다. 그리고 버텨냄이다. 저자는 삶의 버팀목인 남편과 아버지를 연이어 떠나

보낸 상실감을 치유 할 방법으로 여행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여행은 결국 '사람이 있었음'이다.

'상실에 대한 복구'는 저자의 말처럼 자신만의 방법으로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가진 후에야

가능하고 그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생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혼자만의 여행. 여행은 외로움이다. 그 외로움의 길에 처절하게 혼자 내버려지는것이 여행의

묘미이다. 당연히 긴장도 된다. 어색하고 낯설고 때론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이 결국

'사람'이다.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는 여행은 그 자체로 이미 살아 있음이 된다.

벽은 넘어서라고 있고, 어려움은 견디라고 있으며, 문제는 풀어 내라고 존재한다. 여행은 벽과

어려움과 문제를 동시에 만나는 시간이다. 그래서 첫 걸음이 중요하다. 아들과의 동반에서

진정한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되었을 때 리라를 인출하고 유심칩을 사고 갈아 끼우는 것이

더디고 어렵지만 결국 해 나가야 하는 일이고 그래야 한다. 그렇게 혼자만의 여행은 시작된다.

오래전 멋모르고 시작했던 프랑스 남부 배낭 여행이 생각났다. 지금은 정보나 자료가 넘쳐

나지만 그 당시는 인터넷 보급률도 거의 바닥이었던 시기라 지도책 하나에 의지해서 무려

14일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그때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중 두 사람은 연락을 한다. 그래서 저자의 '여행은 결국 사람이다'라는 말이

공감이 된다.

이 책에는 민족대표 33인을 연상케 하듯 33인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들이 소개된다. 이사도라 던칸의 남편인 세르게이 에세닌(Серге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Есенин, 1895∼1925)의 화려한 여성 편력과 예술혼,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로 먼저

기억되는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1882-1941, 영화 '디 아워스'에서 내가

좋아하는 니콜 키드먼이 연기했다)의 집필과 휴식과 평안을 위한 '자기만의 방', '내 이름은

삐삐 롱 스타킹'에서 우리에게 말괄량이 삐삐로 알려진 그녀의 은신처이자 놀이터인

수백년된 느릅나무가 있는 린드그렌(Astrid Lindgren, 1907-2002)의 생가터, 2013년 서울

롯데 호텔 앞에 시인 푸쉬킨(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1799-1837)동상 건립에 대한 화답

차원으로 2017년 샹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한국어학당(120여년 전부터 한국학을

가르쳐왔다) 앞에 세워진 박경리 선생의 동상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꺼리들이 등장한다.

친절하게도 관련된 사진들과 함께.

유지안 작가를 만난 이들이 하는 말 중 '그녀는 바람과 같습니다'라는 말처럼 그녀는 어디든

갈 수 있는 가벼움과 그 가벼움을 가능케 하는 비움이 있는 사람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비워야 떠날 수 있다. 나이는 영혼의 옷일 뿐이고 우리는 그 옷을 선택할 권리와 이유가 있다.

어딘가에서 만나게 될 빨간 모자를 쓴 그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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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노인과 바다 - 최신 버전으로 새롭게 편집한 명작의 백미, 사자의 심장을 가져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민우영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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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papa)라는 건강하고 거침없는 미국 남성상의 상징과도 같은 닉네임을 사용하는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어떤 자세로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평생 따라다닌

관심사이자 문학적 숙제였다.(아쉽게 헤밍웨이는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미국 문학에서

아담적 전통(Adamic Tradition)을 가장 잘 계승한 그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이념

문제를 포함해서 모든 정치 사회적 현안을 배격한 채 비극적 세계에서 고독한 영웅주의를

추구하는 인물을 소설속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작가이다.

이 책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헤밍웨이 자신도 '평생을 바쳐 쓴 글', '지금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이라고 할만큼 그의 문학 인생이 농축된 작품으로

작가는 감정의 절제와 압축을 통해 현실과 상황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익숙한 줄거리다.

몇달동안 고기를 못잡은 노인, 그런 그의 곁을 찬구처럼 지켜준 소년(다른 번역판에는

청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원서에는 'boy'로 되어 있다), 어느날 낚시 바늘에 걸린 청새치와의

드잡이, 항구로 돌아오는 갈에 만난 상어떼의 습격과 사투, 앙상한 뼈와 대가리만 남은 물고기,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를 꿈꾸며 지쳐 잠이든 오두막. 헤밍웨이는 이 단순한 내용에 인간을

대입시킨다. 광활한 자연 앞에 내던져져 홀로 남은 고독자로서의 인간, 그 인간이 자연과 맞서며

끝끝내 버텨내는 불굴의 정신, 그럼에도 여전히 혼자여야 하는 단독자로서의 인간의 운명,

그 속에 던져지는 인간과 얽히는 굴레들, 해밍웨이는 노인의 입을 통해 고전적 휴머니즘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람은 파멸당할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이 책에서는 '사람은 죽으면 죽었지 패배하지 않아'로 번역했다).

인생은 혼자 걸어가는 길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옆에 사람이

없어서도, 모가 나서도 아니고 그렇게 나이 들어 가는 것 같다. 저무는 해처럼 사람은 나이

들어 가고 점점 더 먼곳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여전히 여정은 계속되고 그 여정엔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노인이 청새치와의 드잡이와 상어와의 사투 중에 끊임없이 반복하는 '그

아이가 있었으면 좋을텐데' 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도 이와 같이 꼭 필요한 그 순간의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누가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져본다.

해미웨이는 '실패'와 '허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말한다.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어떤 결과를 내었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삶을 살아 왔느냐도 중요하다. '희망이 없는

것은 죄악이야'라는 노인의 독백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기현상 속에 휘말린 우리에게

던지는 주문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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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이방인 - 최신 버전으로 새롭게 편집한 명작의 백미, 죽음에 맞서는 진실에 대한 열정!
알베르 카뮈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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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는 죽었다(Aujourd'hui, maman est morte)'로 시작하는 이방인은 다소 건조한

문장들이 이어지는 간결한 문체로 된 알뵈르 까뮈(Albert Camus)의 소설이다. 엄마의 죽음,

아랍인의 죽음, 뫼르소에게 주어진 죽음. 이 세개의 죽음은 죽음의 모든것을 보여준다.

자연사, 타살, 법에 의한 죽음, 결국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고 그 사실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그 죽은은 언제나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한다.

까뮈는 이 소설을 29세(1942)에 발표했다. 이방인(L'Étranger)은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해

낯설게 느끼는 자' 혹은 '사회가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자'를 말한다. 이 책에서는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 '뫼르소'로 대변된다. 곳곳에 까뮈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미 살인의 마음을

품었다고 판단하며 이는 살인의 동기로 충분하다는 유약한 논리는 어쩌면 까뮈가 고발하고자

하는 논리도 부족하고 이유도 불분명한 세상 속 '부조리'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뫼르소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행적은 재판 과정을 통해 드러나며 그의

생각은 점차 자기 확신으로 나아간다.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것에 대한

확신, 너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해 확신이 있어'라고 말하며

자신의 죽음의 과정에 대해 확신에 차 있고 이는 강한 신념으로 비춰진다. 그리고 뫼르소는

자신의 사형집행일에 많은 사람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구경와 주길 기대한다. 그의 죽음 앞에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애인, 신부, 변호사)이 있었음에도 그는 억지로 누군가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는 상존하되 고립되는 '이방인'이 되어 간다. 이런 그에게 '자발적 이방인'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샤르트르(Jean Paul Sartre, 사상가, 작가)는 '은

설명하는 책도 증명하는 책도 아니고 부조리의 인간을 묘사한다. 카뮈는 다만 제시할 뿐, 원래가

정당화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인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책 의외로 어렵다.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면 되돌아가기와 멍때리기를 반복해야 한다. 분명

예전에 읽었는데(심지어 이 책은 세계명작동화 전집에 포함되어 있다)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문장은 간결하다 못해 심심할 정도인데 조금만 생각을 기울이면 그대로 빠져들고 잠시 한 눈을

팔면 여지없이 되돌아 가야 한다. 까뮈는 뫼르소의 재판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의 삶이 무참히

무너져 내린 채 죽음에 대한 어떠한 구원마저 얻지 못하는 철저한 이방인이 되어 있는 모습과

세상과 마주해 억압적이고 부조리한 관습과 양식에 대해 고발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혹 우리 역시 철저한

'이방인'이 된 채 그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할것 같다. 생각이 많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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