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여행입니다 - 나를 일으켜 세워준 예술가들의 숨결과 하나 된 여정
유지안 지음 / 라온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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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은 아픔이다. 그리고 버텨냄이다. 저자는 삶의 버팀목인 남편과 아버지를 연이어 떠나

보낸 상실감을 치유 할 방법으로 여행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여행은 결국 '사람이 있었음'이다.

'상실에 대한 복구'는 저자의 말처럼 자신만의 방법으로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가진 후에야

가능하고 그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생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혼자만의 여행. 여행은 외로움이다. 그 외로움의 길에 처절하게 혼자 내버려지는것이 여행의

묘미이다. 당연히 긴장도 된다. 어색하고 낯설고 때론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이 결국

'사람'이다.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는 여행은 그 자체로 이미 살아 있음이 된다.

벽은 넘어서라고 있고, 어려움은 견디라고 있으며, 문제는 풀어 내라고 존재한다. 여행은 벽과

어려움과 문제를 동시에 만나는 시간이다. 그래서 첫 걸음이 중요하다. 아들과의 동반에서

진정한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되었을 때 리라를 인출하고 유심칩을 사고 갈아 끼우는 것이

더디고 어렵지만 결국 해 나가야 하는 일이고 그래야 한다. 그렇게 혼자만의 여행은 시작된다.

오래전 멋모르고 시작했던 프랑스 남부 배낭 여행이 생각났다. 지금은 정보나 자료가 넘쳐

나지만 그 당시는 인터넷 보급률도 거의 바닥이었던 시기라 지도책 하나에 의지해서 무려

14일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그때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중 두 사람은 연락을 한다. 그래서 저자의 '여행은 결국 사람이다'라는 말이

공감이 된다.

이 책에는 민족대표 33인을 연상케 하듯 33인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들이 소개된다. 이사도라 던칸의 남편인 세르게이 에세닌(Серге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Есенин, 1895∼1925)의 화려한 여성 편력과 예술혼,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로 먼저

기억되는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1882-1941, 영화 '디 아워스'에서 내가

좋아하는 니콜 키드먼이 연기했다)의 집필과 휴식과 평안을 위한 '자기만의 방', '내 이름은

삐삐 롱 스타킹'에서 우리에게 말괄량이 삐삐로 알려진 그녀의 은신처이자 놀이터인

수백년된 느릅나무가 있는 린드그렌(Astrid Lindgren, 1907-2002)의 생가터, 2013년 서울

롯데 호텔 앞에 시인 푸쉬킨(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1799-1837)동상 건립에 대한 화답

차원으로 2017년 샹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한국어학당(120여년 전부터 한국학을

가르쳐왔다) 앞에 세워진 박경리 선생의 동상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꺼리들이 등장한다.

친절하게도 관련된 사진들과 함께.

유지안 작가를 만난 이들이 하는 말 중 '그녀는 바람과 같습니다'라는 말처럼 그녀는 어디든

갈 수 있는 가벼움과 그 가벼움을 가능케 하는 비움이 있는 사람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비워야 떠날 수 있다. 나이는 영혼의 옷일 뿐이고 우리는 그 옷을 선택할 권리와 이유가 있다.

어딘가에서 만나게 될 빨간 모자를 쓴 그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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