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 이곳이 싫어 떠난 여행에서 어디든 괜찮다고 깨달은 순간의 기록
봉현 지음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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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걷고 쓰고 사색하고 그리고 다시 쓰고. 언제가 꼭 해보고 싶은 일상이다.

온전한 나로서 혹은 오롯이 나만의 길을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섬세한 글과 그림으로 알려진 <베개는 필요 없어, 네가

있으니까>의 작가 봉현의 일러스트 에세이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를 만난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 일견 부럽다. 자신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이 가능하다는 것부터 그럴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과 체력이

된다는 사실에 살짝 샘도 난다. 물론 작가는 죽도록 서울이 싫어서 떠났다.

그런 그가 힘겹게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어떤 세상에서도 나 자신을 위해 살 수 있다는 믿음. 그건 결국 내가 떠나온

그곳에서도 분명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아주 오래전 무작정 가방을 둘러매고 여행을 떠난적이 있었다. 당시엔 해외

여행이 거의 불가능했던 시기라 선택한 곳은 우리나라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국도 도보여행이었다.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정말 좋았다. 그떄 만난 분들

어떤 분들은 돌아가시고 어떤분은 할머니가 되셨고 어떤분들은 결혼을

하셔서 부모가 되셨고 그렇게 삼십여년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여행은

그런것 같다. 어떤 여행이든 나름의 의미가 존재한다. 무작정 떠났던

목적을 가지고 떠났던 혹은 도망치듯 떠났던 말이다. 저자가 그랬듯이

그러면서 어디에서든 나는 변함없이 나라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어려운

결론을 가지고 돌아 온다. 그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단어 몇 글자로

이루어진 말들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당신의 삶을 바꿀지도

모르니까요'


우울함에서 홀로섬으로 그리고 어느덧 당당함으로 변하는 저자의 삶의

굴곡진 변화를 글과 그림으로 느꼈다. 이런 용기를 낼수 있음에 평생

누구도 해보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했다는 점에 '자신감'이라는 삶의

소중한 자산을 얻을 수 있음이 내심 부러웠다. 여행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별일 없는 하루하루. 떠나면 하루하루 모든 게

새롭고 특별한 일의 연속일 줄 알았는데 그냥 일상의 반복이더라'

여행도 삶의 일부분이다.


베를린. 파리와 북유럽. 산티아고. 스리랑카. 중동. 네팔. 인도. 벌써부터

작가의 다음 여행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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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컬러 명화 수록 무삭제 완역본) - 명화와 함께 읽는 현대지성 클래식 63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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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페스트 La Peste

1947년 갈리마르(Galimard) 출판사를 통해 발표된 알베르 카뮈의

작품인 페스트는 그로부터 70여년후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예견이라도 한듯 우리가 겪은 현실과 놀랍게도

일치한다. 책의 겉표지에는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클림트의 '죽음과

삶' 일부가 인쇄되어 있고 본문에는 뭉크, 빅토르 타르디유, 게리

맬커스 등의 작품이 본문의 내용과 결을 같이해서 실려있다.


카뮈는 이 작품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한다. 전체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의 광기에 대해 죽음과 이별 그리고 고립과 공포를 마주하는

인간의 감정의 변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대 혼돈 앞에

어떻게든 저항하려는 민중과 그것을 은폐하고 감추려는 권력과의

대립을 통해 시대가 겪어야 하는 아픈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것이 우리가 취할 가장 최선의 선택임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당연함은 어쩌면 당연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페스트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각기 다르다.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현실로 맞닥뜨려 본 우리는 결코 어느편에도 설 수 없다.

단지 그들의 선택일 뿐이다. 랑베르로 대표되는 도피적 태도를 보이는

이들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하고 외면한다. 페스트는 우리의

죄에 대한 신의 징벌이니 달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파늘루 신부로

대변되는 초월적 태도를 보이는 이들, 삶은 원래 그런 거야.'라는 전제에

굴복하지 않는다. 비록 정말 삶이 무의미한 것이더라도,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내겠다는 부류들이다. 이들은 바닥에 눌어붙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삶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신기루일지라도 삶의 목표로 삼아

열심히 허우적대는 삶을 선택한다. 무엇을 선택하건 자유다. 결단과

책임의 문제만 남는다. '단언하건대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각자 자신 안에

페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건데, 왜냐하면 실제로 아무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또한 잠시 방심한 사이에 다른

사람 낯짝에 대고 숨을 내뱉어서 그자에게 병균이 들러붙도록 만들지

않으려면 늘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단속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병균이기 때문입니다'


글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상황과 현실에 대한 카뮈의 철학적 해석과 페스트를

질병이 아니라 2차세계대전과 같은 전쟁과 같다는 상징적 표현들과 '이때는

또한 도시에 갇힌 모든 수인(囚人)이 자포자기하던 시절이기도 했다'등과 같은

독백들은 독자들의 흥미와 책의 깊이를 더해준다.


지금 우리도 그런 현실과 맞닥 뜨리고 있다. 이 부조리한 시대, 우리 눈앞에

닥친 페스트에 우리는 어떻게 맞설 것인가. 선택만이 남았다. 그리고 무엇을

선택하든 본인의 몫이다. 스티븐 잡스의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과연 하려던 일을 할까?’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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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소망 - 오늘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힘
류응렬 지음 / 두란노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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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를 타일러 거친 들로 광야로 데려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P17

부활을 확신한 사람이 누리는 것이 하늘의 평안이요 넘치는

기쁨입니다. P165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줄 몰랐다고 고백하는

이들을 요즘 자주 만난다. 그들은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라고 말하기도 무색하리만치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며 힘겹게

하루를 버텨낸다. 그럼에도 내일이라는 하늘이라는 소망을 붙잡는

그들에게 오히려 소망을본다. 이런 나에게 '눈을 들어 나를 보라.

마침내 너에게 소망을 줄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 책은 나의 믿음

없음을 돌아 보게 한다.


광야를 만난다. 모세도 고멜도 이스라엘도 예수님도 그리고 지금의

우리도 광야를 만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그곳 광야.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 아니 이미

그곳에도 그분은 계셨다. 그곳은 낮추시며 시험하시고 확인하시며

위로하시는 곳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마저도 그곳으로

내 모신다. 지금 우리는 그 광야로 돌아가야 한다. 편안함과

안락함에 젖어 광야의 기억을 잃어 버린 이스라엘처럼 지금 우리의

신앙도 너무도 유약하고 힘이 없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닌 '때문에'의 신앙은 몇 년전 수련회에서

다룬 부분이어서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물론 불구하고의 신앙도

훌륭하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선 '때문에'는 분명한 이유와 절실함이

담겨있다. 저자는 불구하고는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야 될것 같은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떄문에'는 하용조 목사님의

아픔과 고난을 알기에 이 단어가 주는 뜨거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사는 것이고 하나님 때문에 견디는

것이고 성령님 때문에 버티는 것이다. 그분도 그러셨기 때문에.


소망은 그런것이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그분을 만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얻는 기쁨이며 간절한 열망이며 절실함이다. 사도 바울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받혀 죽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죽은 사람으로 고백하지만 그는 영광 십자가를 보았기에

그의 삶은 혁명이 일어 났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다시오심으로 이어지는명확한 소망을 가졌다. 우리에게도

이런 소망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당당하게 고백하는 그런 신앙 말이다.


이 책은 우리 청년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소망을 잃어 버린 채 무의미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다시금 생명이신 주님을 만나는 기쁨과

회복의 시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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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영화들
이남 지음 / 미메시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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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영화학 교수이자 영화평론가인 저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며 추적하며

해석해서 감독이 사회에 던지는 메세지가 무엇인며 그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읽는 입장에서는 감사한 일이지만 이 일을 해야하는

입장에서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하며 책장을 넘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분명 단순하지 않다. 한국 사회의 문제와 상황에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의 영역에서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도 하며, 개인의 삶을 깊이 조명하기도 하며,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하기도 하며, 그들의 삶의 고충과 애환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안에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사회와 구조적 모순들을 보여준다.


자신의 영화 파이널 컷 결정권은 감독이 가져야 한다는 봉준호의 강한

의지는 <설국열차> 개봉 과정에서 벌어진 거물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과의

1년여에 걸친 갈등은 감독의 비전과 스타일을 온전히 인정받기 위한 그만의

고집이었고 자존심이었다. 대부분 헐리웃 영화들은 최종 컷의 결정권이

감독이 아닌 제작자나 스튜디오에 있음을 감안하면 그의 그런 결정은 더 큰

상업적 성공 가능성 보다는 작가적인 진정성을 지키기 위한 분투였다.


영화는 선이 분명하다. 철저하게 오락성으로 가든 철저하게 작품성으로

가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이에 반해 봉준호 감독은 그 둘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이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상업 장르의 틀

안에서 '정치적 블록버스터'라는 과감한 형식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대중적 성취까지 이루어 낸 점을 찾을 수 있다. 그의 영화가 지니는

정치성은 전혀 노골적이거나 교훈적이지 않으며, 영화가 지닌 오락성

안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관객들이 반응하고

호응하는 것은 곤경에 처한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이 가져다주는 공감대

때문이다.


최근 감독의 작품인 <미키17>을 보면서 봉준호답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영화 속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고 사회적

문제의식과 영화적 감각들이 온전히 담겨 있어 '누가봐도 봉준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그의 차기작이자 아홉번째 작품은 에니메이션이라고

한다. 여덟편의 작품으로 영화계에 커다란 흔적을 남긴 봉준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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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고비에 꼭 만나야 할 장자
이길환 지음 / 이든서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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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나이 마흔을 일컬어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마흔이 되면

주변에 미혹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잘 절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마흔이 되면 정말 웬만한 일에 미혹되지 않을까?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마흔은 인생 중반을 지나는 과도기다.


우리가 살아내는 삶은 단순하지 않다. 방향을 잡기도 목적을 가지고

전진하기도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시기이다. 이런 우리에게 장자는

'누군가의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가라'고 조언한다. 그 자신이 세상의

시선이나 이야기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기에 가능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나만의 길' 여기서부터 막힌다. 어떤것이

나만의 길이며 나의 나아갈 방향인지부터 막막하다. 뭔가 나만 뒤쳐진

느낌이고 나만 주류에서 동떨어져 있는 불안함은 이시대를 살아가는

마흔들 뿐 아니라 모두에게 동일하다.


'사물은 '저것'이 아닌 것이 없고, 또 '이것'이 아닌 것이 없다'는 장자의

재물론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여기에서 오랜시간을 머물렀던것 같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며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지만 결국 한 단면만 바라보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편견에

빠지기도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이에 저자는 '중용(中庸)'을 이야기한다.

중용이란,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간적 욕심과 도덕적 본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인간적 욕심이 없을 수 없으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도덕적 본성이 없을 수 없는데, 두 마음을

다스리는 이치며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가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

또는 감정 표현에 부족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나친 것인지를 살펴서,

상황에 맞는 적절함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를 틀에 가두는 우리

사고의 자물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의 틀을 가질것을 요구한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장자는 '모든 만물은

상대성에 따라 존재한다'고 말한다. 어떤일에 실패 했거나 아름답지

않거나 무언가 부족하다 할지라도 상대적인 것이며 판단의 기준을

반대되는 상황이 아닌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이 그런 때이다.


정신분석가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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