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셈인생 - 지식공학자의 ‘조금은’ 다른 관점의 이야기
허병민 지음 / 쉼(도서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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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페이지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써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많은 의미를 담은 말이다. 어제의 나는 찌질하고 실수투성이에

욕을 얻어 먹는, 아니면 칭찬을 듣고 뭔가 거창한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그도 아니면 이런저런

큰일 없이 무난하게 보낸 하루의 나였을 것이고 오늘이라는 새로운 현실에 마주하고 있는 나는

어제와는 다른 관점과 생각을 가진 아니 어쩌면 그럴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나일 것이다. 자신을

과시하느라 '설마' 농락 당해 버린 어처구니 없는 어제의 나에게 던져진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간절히 살고 싶었던 바로 '이다.

 

저자가 첫번째로 등장 시킨 인물은 스티브 잡스(Steve Jobs). 혁신의 아이콘이자 젊은이들의

희망이기까지 했던 잡스를 표현하는 단어들은 무수히 많지만 역시 그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Stay hungry Stay foolish) 'identity' 그를 기억한다. 그는 자신과 자신이 만드는

물건에 끊임없이 'identity' 부여하고 주문한다. 기술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인문학(교양)

결합시키고 애플이라는 회사의 정의를 '애플=기술+인문'으로 각인시킨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곳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했기에 가능한 일이고 일을 해낸 그를 우리는 정복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Who I You'. 자신있는 사람만이 심플해질수 있다는 말처럼 자신에 대한,

자기 자신을 바라 보는 , 정체성을 찾는 것은 세상이라는 정글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생각이다. '무의식의 화가' 불린 천재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지금 자신의 꿈은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것 처럼 말이다. 그의 천재성은 달리 자신에게서 시작됐고 자신안의 천재를

발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친절하게도 저자는 50년이라는 사건을 제시하며 만약 50년을

산다면 50()x365()x24(시간)x60()x60()=1,576,800,000 라는 결과를 알려준다. 평균 여명을

80세라고 가정하면 지금 30세인 사람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15억초 정도 밖에 안된다. 그보다 훨씬

나이가 있는 나는 적을 것이다.(계산을 보았지만 밝히고 싶지 않다) 막상 남아 있는 시간을

확인하니 시계의 초침 소리 하나하나가 무겁게 느껴진다. 마치 시간의 도둑이 시간을 갉아

먹고 있는 것처럼. 카이로스의 시간이 떠오른다.


재미있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우리는 박경철이, 안철수가, 이외수가, 김난도가 아니다'. 맞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이다. 나와 다른 성향, 나와 다른 성격의 그들이 하는 것을 따라한다고 그들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여야만 하고 이런 나는 나로서 존재할때가 가치가 있는 것이며 나의 삶의

주인은 결단코 나다. 나를 안다는 , 나를 알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매우 길고 어렵고 지루한

길이다. 하지만 결코 피할수 없는 길이다. 피할 없으면 즐기면 된다. 그게 답게 사는 길이다. 


저자의 책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법칙을 발견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저자가 단골로 다니는

구멍가게 사장님으로부터다. 사장님은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무슨 조커도 아니고' 항상 상냥하게

웃으신다고 한다. 친절함, 상냥함, 웃음은 의외로 강력한 무기다. 결국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따뜻한 햇빛이었던것 처럼 말이다. 하나는 2-3 정도의 정보가 피드백인데 말을 조금 틀어서

생각하면 잡스가 가졌던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정체성을 의미한다.

정확히 알기에 손님에게 자신있게 말할 있는 것이다. 어설픔이 아니라 정확함이 생명이다. 마지막이

손님을 ''으로 보지 않는 다는 점이다. 나와 상대하며 만나는 사람을 동일한 인격으로 생각하고

가족이나 이웃처럼 생각하기에 그곳엔 정이 넘칠 밖에 없고 옆에 현대식 가게가 있음에도

그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다.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알아야 자신의 가치를

장할 있다. 웃는 얼굴에 뱉듯이 친절함과 상냥함은 상대의 마음을 녹이는 비밀 병기이다.

중국 4 추녀이던 종리춘의 '엉뚱발랄'함과 '재치'처럼 말이다. 또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결코 사람을 ''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레오(카아누 리브스분)에게 주어진 가짜 현실에

안주하는 파란 알약과 적나라한 진짜 현실을 있는 빨간 알약처럼 항상 우리 앞에 선택지가 놓인다.

그리고 선택의 몫은 오롯이 자신에게 있다. 저자가 말하는 곱셈 인생은 바른 생각과 바른 판단과

바른 선택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가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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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원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구원과 영생, 복음의 성경적 정의
존 오트버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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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삶이 우리 삶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P21

희생은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옮기는 행위다. P86

 

복음의 핵심은 구원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구원은 이상 최고의 가치가 아닌지 오래며

긴박성과 희소성 마저도 상실했다. 복음의 힘과 약속을 잃어 버리고 축소시킨 우리의 오류는

결국 하나님의 크기마저도 제한하고 작게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현실 앞에 던지는 저자의

'How Do I Know If I'm Really Saved?'라는 질문은 '다시 복음 앞에' 서야하는 우리에게 긴장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 단순히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하면 통과되는 통과의례가 아닌

세상의 소망으로서의 구원에 대해 말하는 오트버그(John Ortberg) 글은 하나의 도전이다.

 

10여년전 교회 청년부 헌신예배 설교 부탁을 받고 ' 땅에서의 천국' 대해 전한적인 있다.

예배를 마치고 다과를 하는 교회 담임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각 난다. '목사님

자유주의 신학이세요?' 당시는 그랬다. 사후에 천국가는 복음이 최고의 가치이던 시절 혈기방자한

젊은 목사가 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에 와서 땅에서의 천국을 이야기하니 놀라셨을 만도

하다. 그런 구원을 책에서 다시 만났다. 


구원의 핵심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의 문제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시는 일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하나님 나라의 삶이 우리 삶으로 스며들어

안에서 연합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이 관해서 아는 '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말장난이 아니라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감사하게도 은혜의 선물로 내가 그분의 친구가 되는 것이고,

동행하는 것이고, 지금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대해서 아는 사람도 이것을

안다. 차이는 그것을 누리며 사느냐이다. 누린다는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사용하며, 드러내며,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영생은 죽은 뒤에야 보험금을 받는 보험증서가 아니요

훗날 천국의 한자리를 보장해주는 마법의 면책특권도 아니고 옳은 답을 알거나 옳은 교리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명백히 밝힌다. 

구원은 철저한 은혜다. 구원은 단순히 우리가 내린 잘못된 선택들의 결과에서 건짐 받거나 나은

상황으로 구조되는 것이 아니고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변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달라스 윌라드(Dallas Albert Willard, 기독교 사상가, 철학자,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은혜의 저자) '은혜' '노력'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얻는 '

반대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대인 '나를 따르라' 앞에 마주선다. 함께 걸어가자고 초대하신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함께 걸어 가는 것이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며 그를 배우는 것이다. 삶과

생각과 마음과 뜻을. 그리고 그대로 사는 것이다.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그렇게 사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임재를 인식하는 '깨어남',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들을 버리는 '정화',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깨달음', 그분의 임재가 현실이 되어

'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15:4) 이루는 '연합'으로 설명한다. 물론 과정은

직선적 과정이 아니다. 단계들을 통과하는게 목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렇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분명한 이유요 목적이다. 


아주 흥미롭지만 무서운 내용 하나를 발견했다. "과연 우리는 천국을 간절히 원할까?" 단순히 꿈꾸고

기대하고 원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바로 천국 말이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피할 방법이 없다.(이는 땅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은근슬쩍 이것을 용인하고 사용한다) 가끔,

아니 자주 '하나님이 이것만은 보시지 않았으면....'하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우리에게 모든것이 그대로

공개되고 드러나는 천국의 삶은 마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만난 조각이 너무 불편해

슬그머니 자리에 내려두고 다시 길을 떠나는 이가 빠진 동그라미처럼 답답하고 불편할 있다.

숨어서 몰래 죄를 짓고도 아무도 모른다고 자위하는 우리에게 어쩌면 천국은 족쇄일수도 있다. 우리의

문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천국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구원의

핵심은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우리에게로 가져오는 것이다'.

책은 열세가지의 질문과 대답으로 되어 있는 아주 작고 얇은 책이다. 그러나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보물'이고 '정수'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이며,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정확하다. 그래서 책은 신학교에 들어간 후배들이 읽어 봤으면 한다. 그들의 신학이

고착화되기 전에 기초와 주춧돌이 되어 것이고 평생토록 사용할 아주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게

될것이다. 나도 책을 올해 신학교에 들어간 제자에게 선물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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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간절함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이대건 지음 / FIKA(피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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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은 위기(危機)이다. 맞는 말이다, 위험한 고비이며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는 시련의 계절이다.

혹자는 위기를 기회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이 부분은 그렇게 넘겨본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며

승자의 고백이기에 선뜻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저자가 근무하는 공간은 위기와 위험, 그리고

기회가 동시에 존재하며 그곳엔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인 수 많은 승자들과 위기를 위기로 숙명처럼

인정해 버린 이들이 공존한다.


그들의 인사는 독특하다. '다음에 다시 만나지 맙시다'. 환우들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인사이자

어쩌면 가장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 교회의 목적은 모이는 것인데 목사는 성도들에게

'다음 주일에는 만나지 맙시다'를 염원을 담아 간절하게 선포한다. 다음 주일에는 부디 건강을

회복하여 각각 출석하는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기를 바라는 목사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환우들은 이 한마디가 은혜가 된다고 한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와 저자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고백이다. 


그래서 이들은 기도한다.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이사야 38:5)는 말씀을 붙잡고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또 기도한다. 기도에 놀라운 힘이 있음을 믿기에 그들은

이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기도를 부탁한다. 초등학교 6학년 혜영이의 기도처럼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신체, 마음, 영적으로 아파하는 이들이 그들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하는 기도 속에 항상 기억되고 있음을 느끼며 힘과 용기를 얻게 되길 믿으며 그들은

오늘도 기도한다.

 

이 책에는 절절한 사연들이 가득하다. 평생을 살면서 가져보지 못한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중환자실과

죽음 앞에서 발견한 남편과 아내들, 심장병을 앓고 있는 10살 딸 아이를 위해 온전하게 다 낫게

달라고 감히(?) 기도하지 못하고 조금만 아프게 해달라는 엄마, 4살난 동생을 위해 기도하는

6살 창윤이, 한번만 단한번 1초만이라도 눈을 떠서 '엄마'하고 불러 주길 소원하는 엄마....모든 사연들이

가슴이 먹먹해지고 애절하다. 그렇게 이들은 기도한다. 자신들의 간절함이 기도가 되고 눈물이 되어

채워져 넘친다. 


저자의 말 중에 이런 말이 생각난다. '큰 교회는 외형이 크고 신도가 많은 교회가 아니라 마음이 커야

큰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가졌지만 나눌 줄 모르고 오히려 더 가지려고 발버둥 치는 우리의 현실

앞에 던지는 경종이며 자신들이 믿는 신과 맘몬을 동시에 섬기는 혼합주의 종교자들에 대한 도전이다.

일년에 2-4회씩 소위 교인수가 좀 많다는 교회들에 도움의 편지를 보냈지만 전화벨은 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전화벨 올리기를 기다리는 애타는 심정이 글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자기 아이의

생일잔치 비용을 다른 아이의 수술비로, 자기가 상실의 아픔이 있기에 또 다른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수술비를 지원하는, 자녀들이 준비해 준 칠순잔치 비용을 다른 사람의 병원비로,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모아 놓았던 것 중 최소 비용만을 남기고(자녀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다른 이의 병원비로

흔쾌히 내어놓는 이들이 정말 마음이 큰 사람들이 아닐까.


기다림이 기도다. 지금 이순간도 환우들과 가족들 그리고 지인들은 '기적'을 기다린다. 그 기적은

간절함에서 온다. 그리고 그 간절함은 기도이다. 모든 아픈이들에게 이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도 이 사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대건 목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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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산다는 것 - 융 심리학으로 보는 남성의 삶과 그림자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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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사회는 치유와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점은 확대되어 '개성'이라는

차이를 발견하게 되고 틀림이 아닌 다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으나 세상은 여전히 틀림이다.

사람의 개인사와 대중의 신화를 이루는 역사의 씨실과 날실들이 한데 엮이면서 개성(individual

character) 만들어 진다.

 

책의 원제는 '새턴의 그림자 아래서'(Under saturn's shadow)인대 남성이 언제나 이데올로기의

림자 아래서 난항을 겪고 고통을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새턴은 로마신화에서는 사투르누스

(Saturnus) 농업의 신으로 불리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늘의 남신 우라노스(Uranus)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 사이에서 태어난 크로노스(Cronus) 의미한다. 새턴의 그림자는 타락한 권력에

고통받고 두려움에 쫓기며 자신도 모자라 타인까지 상처입히면서 살아가는 땅의 모든 남성들이

겪고 있는 어두움을 상징한다. 


인간의 삶은 온전하고 건강한 싹을 지닌 자유인으로 태어나며 시작하지만 이내 자연스러운 본성과

멀어져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가 요구하는 바에 일정부분을 자신을 맞추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희생을 강요 받고 억압을 요구당한다. 이러는 와중에 남성의 대부분은 '기대를 충족 시켜야 한다는

공포' 경험한다. 새턴의 그림자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포는 경쟁, 승자패자구도, 생산성을

척도로 삼고 일정 기준에 도달할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탈락하거나

힘겨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성들은 공포에 대해 비웃음을 당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공유하지

않고 혼자 외로운 사투를 벌인다. 사투는 대부분 보상심리로 이어져 본질이 아닌 다른 것에서

위안을 삼으려 한다. , 권력, 혹은 성적(sexual) 무엇으로.


저자는 '새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치유에 이르는 일곱가지 방법을 내어 놓는데 나의 눈을 사로 잡는

두번째인 '비밀을 털어 놓아라'이다. 남자이지만 남자인것이 지긋지긋할 때도 있고, 남성이라는 역할에

환멸과 거부감을 가질 때도 있다. 철학자 핸리 데이비드 소로(Hanny David Thoreau) 표현을 빌리자면

대부분 남성들은 '조용한 절망의 '(lives of quiet desperation) 살고 있다. 두려움과 부정이라는 사악한

영혼을 감추고 숨기기 위해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행동을 보지만 내면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혼란스럽다.

이것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방법은 영혼의 진실을 스스로에게 밝히는 것이며 진실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인생에서 겪는 최고의 시험이라고 말하지만 이를 극복한다면 이상 남자라는게

지긋지긋한 삶은 살지 않게 될것이다. 우리의 삶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으며 무의식중에 내렸던

선택으로 자기소외의 미궁 속으로 빠졌다. 사실을 인지 한다면 늪과도 같은 상황에서

나와야 하며 여기에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책은 드물게 보는 '남성해방운동' 전조와도 같은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엇나가는

부분이나 설득력과 논리적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도 발견된다. 그럼에도 책은 자유를 이야기하고

억압받고 상처 받는 남성들의 치유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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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100권의 책 - 역사를 만들어 낸 명작들을 한 권으로 읽는다
스코트 크리스찬슨.콜린 살터 지음, 이현정 옮김 / 동아엠앤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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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접했을 들었던 가장 의문은 어떤 기준으로 100권을 선정하였는가였다.

책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목차를 확인하고 혼자 예상했던 권의 책을 찾아 보았다. 대부분의

책이 들어 있음에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생각지 못한 책들에 눈길이 갔다. 재미있는

사실은 저자가 책을 '역경'(易經, 기원전 2800년경)으로 시작하여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지 클라인, 2014) 끝냈다는 점이다. 6개의 동전을 던져 미래를 넘치는 것에서 만약 모두가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할 있음을 예언하는 글을 앞뒤에 배치하고 안에 다양한

세계관과 문제와 주제들로 가득 채우는 저자의 탁월한 구도에 잠시 감탄을 했다. 


반가운 권을 만났다. 금속활자 인쇄술을 최초로 사용한 '구텐베르그 성경(1450년대), 기하학의

가장 고전이며 기본이 되는 '기하학 원론'(유클리드, 기원전 302년경), 나뿐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을

심취하게 만들었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집'(1557), 젊은 시절 우리의 우상이자 로망이며 금기를

깨뜨린 해방구였던 '마담 보바리'(귀스타프 플로베르, 1857) '채털리 부인의 사랑'(데이비드

허버트 호런스, 1928), 그리고 성적 무지와 편견을 깨준 훌륭한 성지침서인 '킨제이 보고서'(1948,1953),

암울했던 80년대에 희망과 위로가 되어준 '침묵의 '(래이첼 카슨, 1962) '이반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알렉산드로 솔제니친, 1962) 등이 그것이다. 


중에 유난히 눈길이 가는 책이 있다. '모주석어록'(毛主席語錄)이다. 마오쩌둥의 '홍빠오유

(빨간 보물책)'이라 불리는 책은 1960년대 '해방군보' '오늘의 생각'이라는 신문 사설에 실린

200 가지를 추려서 편집한 것을 여러번의 수정을 거쳐 중국 공산당 주석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출범 시킨 '혁명의 '으로 여겨진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인용구 427개가 실려 있다.

중국 인구가 워낙 많아서인지 책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쇄된 하나이다. 일례로 1965,

이듬해에 개시할 '문화대혁명' 준비하면서 당시 집계된 인구인 7 4천만명에게 무상으로

배포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중국 전역의 출판사는 과로에 시달리고 종이나 링크는 동이나 버린

일도 있다. 책의 형태가 병사들의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고 빨간 비닐 커버를 씌워서 책은

'빨간 작은 '이하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병사들이 치켜들고

호를 외치는 장면에 등장하는 빨간 책이 바로 모주석어록이다. 어록에 실린 하나를 적어 본다.

'우리는 배움에 목말라야 하며 타인에게는 가르침 주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모주석어록은 1950년대에 추진하던 경제건설운동 '대약진(大躍進) 정책' 실패하자 비판을 잠재우고

인민해방군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 쓰인 책이다. 


그외에도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 소설도 100 안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면 파급력과

영향력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있는 대목이다. 특별히 반지의 제왕은 소설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영화에서보다 훨씬 섬세하고 스케일 판타지 모험을 제공한다. 심지어 책은 저자인

로널드 톨킨(J,R,Tolkien, 1954-1955) 1966년에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설에

대해 ' 줄거리를 형식으로 만드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오딧세이' 영화화하는 편이

훨씬 쉽갔어요. 오딧세이에서는 그저 폭풍우 몇번만 칠뿐이죠'라고 말할정도로 스케일이 엄청나다.

그러나 저자의 말을 비웃이라고 하듯 세월이 흘러 3부작으로 반지의 제왕은 영화화되었고 역사상

꼽히는 흥행작이 되었다. 


물론 아주 생소한 책도 있다. 겐지를 둘러싼 정치적 소용돌이와 연애사를 간결하게 다룬 '세계 최초의

소설'이라고 불리는 '겐지 이야기'(무라사키 시키부, 1021) 2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인들 미각에

희망을 가져다준 '지중해 요리'(앨라자베스 데이비드, 1950), 프랑스 중세 건축에서 얻은 고딕 양식에

대한 흥미를 돌과 언어로 풀어낸 영국하원의원이었던 호러스 월폴이 '오트란트 '(1704) 사실

많이 낯설다. 


책은 친절하다. 책의 표지나 내용을 일일이 두장의 사진으로 보여주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특히나 기원전 이전의 작품들에 대한 사진은 더욱더 흥미롭다. 작가가 머리맡에 썼듯이

절반 정도는 대부분이 수긍할 만한 책들이나 나머지는 'why'라는 의문이 나올 만한 책들이지만 

매해 225만권의 책들이 출판되는 현실에서 정도의 '걸러냄' 이루었다는 것으로 저자의 소임은

다한 것이고 이러한 노력을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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