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목마름으로 시작됩니다.(p107)
세상엔 물이 많다. 물 부족 국가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물은 풍족함 그 자체이다. 그래서
우리는 물의 소중함을 모른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독립문 앞에서 연좌를 할때 그 뙤약볕 아래에서
5시간 정도를 앉아 있으니 말 그대로 '타는 목마름'을 경험했다. 그때 누군가 던져준 생수는
그야말로 '생명수'였다. 경험해 본 사람만 그 맛을 안다. 그후로 물의 소중함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생수(living water)와 관련된 말씀을 전하게 되면 이 이야기를 꼭 한다. 그래서 수가성 여인을
중심으로 한 저자의 책 '생수를 마셔라'는 더욱 기대가 되었다.

'갈증'
사람은 물을 마시지 않으면 갈증을 느낀다. 그리고 그 갈증을 해소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물을 마시는
것이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고 물을 마셔야 갈증은 해소된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도
마찬가지다. 영적으로 갈하고 지쳐 있으면 목마름을 해결해줄 유일한 분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는
프로그램에 목을 맨다. 프로그램은 일시적인 처방일 뿐 영구적 해결책이 아님에도 잠깐의 해결을
위해 쉽고 빠른 길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영적으로 매말라 있고 갈증상태이다. 수가성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주님은 '생명의 물'을 말씀하시는데 깊은 우물 밑바닥에서 건져올릴 우물물을
이야기하고 도구가 없음을 말한다.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 여인은 생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앎이 이해의 폭이기에 자신이 경험한 최고의 우물인 '야곱의 우물' 보다
더 위대한 것인지에 대해 묻는다. 사실 이것이 출발이다. 갈증을 느낀다면 그 갈증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영적 갈증을 느낀다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그 분을 찾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지금의
우리는 여전히 자기 팔을 휘두르고 있다. 주님은 분명 '내게로 와서 마셔라'고 초대하시는데 우리는
'주님 잠깐만요'를 외치며 열심히 딴짓 중이다.

'깨달음'
무지의 늪에서 벗어나 영적 깨달음을 얻으면 삶과 생각과 말이 바뀐다. 현실만을 바라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그 이면에 있는 진실을 바라보게 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도 믿게 되며 표현이
달라진다. 수가성의 여인이 그랬다. 야곱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생수를 생각하던 여인은 이제 영원히
목 마르지 않을 수 있는 물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물을 청한다. 저자는 이런 여인의 모습에 뭉클함을
느꼈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이 본문을 대할 때 마다 이 여인의 영적 변화에 감동하고 깨달음에
부러움을 느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생수가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게 된 여인의 고백은 하나의
도전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대한 거부이자 새로운 삶에 대한 첫 걸음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은혜'이다. 그 은혜가 우리를 갈급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것처럼 우리도 갈급하다면 찾아야 한다. 찾아야 찾을 수 있고, 두드려야 열리며, 구해야
얻을 수 있다.
'예배'
파스칼이 말한 하나님이 만드신 공간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수가성 여인처럼 예배의 대상 즉
'초월적 존재'(supreme being)를 찾게 되고 심지어 알지 못하는 존재마저도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다.
예배를 통해 자신들의 공허함, 외로움, 허전함을 채우려 예배한다. 그래서 그들의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어도 관계없다. 그러나 예배는 오직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다른 어떤것도 이것을
대신 할 수 없다. 예배의 모든 시간은 온전히 하나님에게만 집중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래서
'삶의 예배'가 어려운 것이고 신령(하나님의 영 안에서)과 진정(하나님이 말씀하신 예배 방법대로)이
어려운 것이다. 이 여인은 주님의 '내가 바로 그다'(4:26)는 말씀을 듣고 예배의 본질을 알게 된다.
'버려두고'
주님임을 확신한 여인의 행동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간다. 그리고는 자신이 만난 주님을
전한다. 여인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우물에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주님을
만났기에 잠깐의 갈증을 해소할 물동이는 중요하지 않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발견했기에
지금껏 움켜쥐고 있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손에 있는 것을 놓아야 정말 중요한 것을
움켜쥘수 있기에 버려야 한다. 그래서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자신의 것을 버려두고 따랐다.
주님이 주시는 것은 더 나은 것(better)가 아니라 가장 좋은것(best)이다.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농부처럼 그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주님은 생수를 즉 복음을 모든자들에게 차별없이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문제는 '내가
목마른가'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옛 말처럼 목마름을 느끼고 인정해야만 그 목마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신앙은 목마름에서 시작된다. 타는 듯한 영적 갈증으로 허덕이는 우리에게 주님은
'내게로 와서 마셔라'(요7:37)고 초대하신다.
이 책은 영적 기갈중에 있는 우리 청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탄산음료의 달콤함처럼 일시적인 재미와
흥미로움에 빠져 금방 다시 목말라하지만 자신들의 손에 쥔것을 여전히 놓지 못하는 우리 청년들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경험하여 깊은 방황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