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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ㅣ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신이 말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후이지만 당시의 상황에 대해 기억하며
무언가 흔적을 남겨 주려고 하는데 이것을 통해 사인이나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한다. 이 책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닌 죽은 사람의 시신을 통해 제2,
제3의 범죄를 예방하고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법의학자의 노력과 현실이
담겨있다.
'CSI'라는 미드를 통해 더 많이 알려진 법의학자라는 일을 하는 저자의 첫마디는 이렇다.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을 배움으로써 삶에 대한 소중함을 느낀다" 이는 법의학이 사망의
원인과 종류를 판단하는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고인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가진다는 말이다.
'죽음을 통한 삶의 이야기'
타살자의 수보다 자살자의 수가 약 30배가 많은 현실 속에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져 분쟁의 소지를 많이 가지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죽음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과정이고 그 시신에는 삶이 그대로 뭍어 있기에 아름다운 죽음이 필요하고 아름답게 죽기
위해서는 그 삶을 잘 살아야 한다. 제멋대로 살다가 죽고 난 후 남겨진 시신이 말하는 나의
엉망진창인 삶을 누군가 알게 된다면 그건 남겨진 자의 수치인 것이다.
우리나라 첫번째 법의학자인 문국진교수와 장기려 박사와의 대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3년을 쏟아 부은 네 노력을 네 정열을 버리지 마라'는 장기려 박사의 충고는 어쩌면 너무도
쉽고 포기하고 그만둬 버리는 현실의 우리를 향한 질타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음을
다 잡은 문국진교수는 유학생활을 거쳐 우리나라 법의학계의 시작이 된다.
죽음은 개인의 권리와 동시에 사회 윤리학과 맞닿아 있다. 단순하게 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이것이 바른 것인가 아닌가를 밝혀야 한다. 이 문제에서 가장 첨예한 것이 아마도
어디서부터 사람으로 볼것인가 일것이다. 물리학자, 화학자, 생명과학자들이 보는 사람에 대한
관점은 다 다르다. 수태부터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카톨릭,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을 사람으로 보는 생태근본주의자들 과는 달리 형법에서는 '진통'을 사
람으로 보고,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지우는 민법에서는 자궁경부를 통해 완전하게 신체를
노출했을때 사람으로 본다. 이렇듯 언제부터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다양하다
보니 저자는 이를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이라고 부른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선생과 영화배우 그레이스 리의 유언은
지금까지 생각해 오던 죽음과 장례에 관한 기본틀을 많이 흔들어 놓았다. 혼수상태가 되면
이틀을 넘기지 말고, 화장을 하고,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이문구 작가의 유언은 향후 우리가
취해야 할 임종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런가하면 장례식장에 국화가 놓이는 것이 싫어 자신이
좋아하는 장미를, 자신은 후회없는 삶을 살았기에 슬퍼하기 보다는 경쾌한 탱고를 그것도 곡을
지정해서 틀어 달라고 주문한 그레이스 리의 유언에선 삶의 마지막 순간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100명의 삶이 있다면 100가지의 죽음이 있고 100가지의 원인이 존재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이 말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memento m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