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혁명 5.0 - 인류 번영을 위한 통찰력
매일경제 세계지식포럼 사무국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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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인지혁명부터 농업혁명, 과학혁명, 산업혁명까지 4차례의 '지식혁명' 거치며 성장하고

발전해 왔고 우리는 지금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현재 세계는 G2 무역갈등으로 기술패권

전쟁이 확산되고, 경제와 금융 불완전이 심화되며 글로벌 거버넌스는 매우 취약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것이 대한 반성이자 대안으로 제시되는 지식혁명 5.0 기술은 물론 제도와 문화등

분야에 걸쳐 전체 인류 번영을 목표로 하는데 출발점이 '지식'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식만이 세상을 바꿀 있으며 지식을 얻는 수단은 치밀한 관찰과 경험, 과학이다. 


'양자 컴퓨팅이 삶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20세기에 시작된 컴퓨팅과 IT발전은 현대사회를 급속하게 변화 발전 시켜왔고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데이터로의 접근성은 AI성장을 가능케했고, AI 기술은 데이터의 효율적 분석을

통한 문제해결 능력의 발전으로 이어졌지만 고전컴퓨팅이라고 부르는 현재의 컴퓨팅 패러다임은

한계에 다다르게 것이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양자 컴퓨팅' 등장했다. 양자 컴퓨팅은 '양자

입자들은 다른 곳에 동시에 존재 있고, 파동처럼 행동하며, 고전 역학으로는 이해할 없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엄청난 양의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있다' 특장점을 가진다. 학자들은

양자 컴퓨터가 인공지능, 화학, 제약, 머신 러닝, 금융, 물류, 교통등 거의 분야에서 혁신을 이룰

이라고 예측한다. 다만 양자가 가지고 있는 속성 자체가 가장 적이라는 지적처럼 오류를

줄여서 원하는 답만 정확하게 추출해 내는 것은 아직 남아 있는 숙제다. 


신문기사로도 보았던 니얼 퍼거슨(스탠퍼드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 린이푸( 세계은행 수석부총재,

경제학자)간의 설전은 미중 간의 말로하는 경제 전쟁이었고 양국간 경제 대리전이라 불릴 정도로

뜨거웠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중 경제 전쟁의 가장 피해국가가 한국에서 말이다. '중국은

여러분들의 점심을 뺐어 먹을 '이라고 포문을 퍼거슨과 '미국과 다른 중국 체제의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생긴 오해'라고 맞서는 교수의 설전은 '미국은 우방국인 일본과 한국에

관세를 부과하려는 악수를 두고 있고 적을 제대로 모르고 싸우는 같다' 교수의 역공과 '중국이

40여년간 혁신을 이뤘다고 하는데 이는 자체 기술을 개발해서 이룬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것을

카피해서 이룬것'이라는 퍼거슨의 반격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흥미진진함을 느끼게 한다. 중국의 경제

성장 전망에 대한 서로의 예측은 6%선에서 좌우될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이에는 20 중국

경제에 관한 2만위안( 377만원)짜리 내기가 성립됐다. 개인적으로 나는 퍼거슨을 응원한다. 


세계 경제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레버리지(Ieverage, 타인의 자본을 지렛대처럼 이용하여

자기 자본 비율을 높이는 , 빚을 끌어다 투자하는 ) 디폴트(default, 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해

있다. 알레나 오코로첸코 S&P 아시아 태평양 대표는 이에 대해 세계의 레버리지는 지난 10년간

늘어 나기만 했고 이제 신용 사이클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사이클이 끝나면 힘든 디폴트를

경험하게 될것 이라고 경고한다. 일례로 글로벌 기업 레버리지 30% 중국기업이며 이는 유로존과

미국 기업의 레버리지를 합한 것과 같은 규모이다. 


특별히 세션에서는 현재 무역갈등을 겪고 있는 한일간에 갈등에 관한 전망도 나왔다. 양국 모두

기술가치 사슬, 투자자 신뢰, 소비자 신뢰도에서 영향을 받겠지만 한국은 여러 화학 물질과 중간재를

일본에 수입 의존하고 있고 반도체에 필요한 화학 물질의 경우 일본이 전체 시장 점유율의 80%

차지하기에 만약 일본이 수입 제한을 하게 되면 한국의 대표 수출 품목인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기거나 고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일 경제갈등 초기에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급하게 일본을 방문 밖에 없던 이유를 있을 같다. 


책은 다양한 주제에 관해 세계 석학들과 현장 실무자들의 생생한 현장 소식과 불확실성으로

대변되는 미래에 대한 예측들로 가득하다. 세계는 이렇듯 빠르게 '다음' 준비하는 지금 우리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과 현실에 대한 결단력 등을 가지고 다가올 세대를

준비해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흘려 듣거나 스쳐지나 버리기엔 너무도 소중한 정보들로

가득한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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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생각한다
존 코널 지음, 노승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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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이 젖에 떨어지는 아주 오래된 소리. 농사꾼이라면 누구나 아는 소리이자 어린 시절의 소리이며

부모님의 소리이며 부모님의 부모님의 소리인 소리가 난다. 어릴때 시골에 있는 할머니댁

(할아버지가 계셨는데도 할머니댁이라 불렀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가면 들을 있었던 소리이다.

어떤 글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소리를 저자도 들었던 같다. 하나의 소리가 있다. 어미소가

송아지를 낳고 송아지에 대한 처치를 마치고 송아지가 초유를 받아 마시면 평소에 안하시던

'하나님 감사합니다' 연발하셨는데 저자도 그런 경험을 한다. 그때 순간 사람이 있는

가장 진실한 말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연에 맡긴다. 농사는 어깨에 죽음을 짊어지고 왼쪽에

질병을, 오른쪽에 정신을 앞쪽에 생명에 대한 기쁨을 데리고서 생존과 함께 걷는 길이다. 


소에 대한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배웠다. 소는 1 500년경 전부터 개와 함께 인류의 오랜 동반자였고

기원전 700-600 경부터 가축화 정도로 기원이 오래된다. 집소의 기원이라 불리는 오록스(Auroch)

키가 2미터가 넘는 거우였기에 당시 인류에겐 신으로서 경배의 대상이 되거나 악마로서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물론 현생종 소와는 사뭇 다르게 생겼지만 고대의 오록스는 경배의 대상이었고

카이사르는 '힘이 세고 날래며 사람이든 동물이든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공격한다'라고 평하기도 했고

최후의 오록스는 1627 폴란드 약토루프 숲에서 자연사했고 그곳에는 녀석을 기리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세상은 어느곳이나 종교적 갈등이 존재한다. 특히나 유럽은 개신교와 가톨릭의 갈등이 심해 이것 때문에

전쟁이 일어 나기도 한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축에게는 우리가 어떤 종교를 믿든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사람은 자신들을 편하게 도와주는 조력자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는 그렇게 우리와 평생을 함께하며 그렇게 살아 간다. 인간과 중요한 관계를 맺은 최초의

동물은 말이 아니라 소였고 이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였다. 인간은 소를 포식자들로부터

보호했으며 소는 이에대한 대가로 모든것을 내어 준다. 


역시 저자는 아직 젊다. 생각과 행동이 시골마을에서 소를 기르기에는 너무 도회적이고 아직 도시 냄새가

. 그런데 그는 원래 시골 사람이고 시골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비록 아이폰을 가지고 다니고

댄스 음악을 듣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아버지와 갈등 관계이다. 도무지 폭은 줄어들지 않는다.

조금 줄어 들었나 싶다가도 이내 벌어지고 조금 가까운듯 싶으면 냉냉하다. 저자 말대로 농사에 관한

모든것을 아버지에게 배웠음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시골에 조금씩 스며든다. 


또한 아버지의 행동은 그가 있는 최대한의 '미안하다' '사랑한다'이고 그나 아버지나 여전히

그대로이다. 비록 욕은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바뀌면 좋으련만. 


저자가 전하는 그의 삶에 대해 적어 본다. 

'가축은 모두 우리 곁에 있고 가족 모두 같이 있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 뿐이다. 우리가 배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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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글쓰기 - 공부머리 좋아지는 도쿄대 작문수업
니시오카 잇세이 지음, 김소영 옮김 / 생각정거장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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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생각하지 않은 일방적인 글은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책의 핵심이자 글쓰기의 핵심이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읽는 사람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은 글은 선뜻 읽혀지지가 않는다. 한때

'소통'이라는 단어가 유행 적이 있지만 세상은 여전히 '불통' 이유가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이와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가 '서로'이어야 한다.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전달하는

자와 전달 받는 자의 상호 소통이 일어나는 것이 좋은 글이다.


'그래서 '

우리는 가끔 '보고'하는 듯한 글을 쓴다. 아쉽게도 우리의 이러한 글은 '그래서 '라는 의문만 남길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말하는 내용 자체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좋은 글이란 상호작용을 갖추고 공감을 이끌어 내는 글이다. 상대의 반응까지도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 마치 '비밀의 정원(조해너 베스포드)'이라는 책이 일본에서 베스트 셀러가 이유가 책을

사람들이 자신이 색칠한 그림을 SNS 자랑하듯 올렸기 때문인것 처럼 상호작용은 글쓰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친절한 문장은 논리적인 문장이다. 논리란 한마디로 연결이며 이론이나 문장,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논리이며 이것들을 연결짓는 법이 논리적 사고이다. 그래서 논리적인 글은 앞뒤 문장이 서로 호응하고

상대방도 이해하기 쉽다. 논리적인 문장은 설득력을 가지는데 설득력은 단언할 생긴다. 글을

주저주저하거나 우물쭈물하면 독자는 이미 만큼 가버린다. 독자를 잡아 두기 위해서는 강력한

방이 필요한데 이것이 '단언'이다. 단언 한다는 것은 '진짜 단언할 있어'라는 반론이나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행위이다. 그런 부분을 알면서도 단언한다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한다는 의미이므로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자신이 난처해 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전하는 말이기에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글을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와 줄기, 가지, , 꽃이나 열매에 해당되는 문장들이 존재한다. 중요한것은

자신이 문장 모두가 필요한 문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무를 가지치기해서 보다 아름답고 탐스럽게

만드는 처럼 글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필요한 문장과 불필요한 문장을 구별해서 독자로 하여금

읽을 마음이 사라지게 만드는 문장은 과감히 지워버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글은 자연스럽게 짧아지게

비판적 사고력이 생기게 된다. 이때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타인의 시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필요한 것만 쓴다는 자세는 독자를 향한 배려이다.


어차피 글쓰기의 목적이 다른 사람이 읽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일방적 자기 주장이 아닌 쌍방향

상호작용이어야 하며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독자의 시선을 잡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글쓰기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읽고 배운 내용이든, 감상이든, 무엇이든 실제로 문장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을 하위 10%라고 칭하는 저자가 전하는 니시오카

잇세이가 일류대학인 도쿄대에 합격할 있었던 비결은 글쓰는 방법을 알았고 그것을 계속해서 연습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책으로 인해 글쓰기의 공포에서 벗어나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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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트 트립 - 일생에 한 번은 중세 미술 여행
김현성 지음 / 더퀘스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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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기억되는 중세는 인류 역사의 오점, 빛에 반대되는 시간, 이성의 시대, 암흑기로 대변된다.

당시의 미술은 너무도 강한 종교적 주제에서 오는 거부감도 강하며 특유의 투박함에서 오는 낯설음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르네상스와 비교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편견에 조토 디본도네(Giotto di Bondone)라는 사실 나에겐 조금 생소한 그러나

미술사학자들에게는 중세 1000 동안 가장 중요한 예술가로 꼽히는 인물을 소개하며 조토의 그림은

우리의 미적 기준에 비교적 가깝고 예술적 완성도가 높아서 중세 미술이 어렵다는 편견 없이 감상

있을 것이라고 소개한다. 


첫번째가 아시시(Assisi)이다.  너무도 조용하여 찾는 이들을 오히려 당황하게 만들고 소박한 마음과

청빈에 대한 의지로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인구 3만의 작은 도시. 실제로 내가 가본 아시시는

투박한 시골 마을이었다. 이곳에 중세 가톨릭에서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인물인 프란치스코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프란치스코 성당이 있고 이곳에 조토의 연작 벽화 스물여덟점이 있다.

프란치스코의 '작은 형제회'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조토의 명성도 같이 상승했고 아시시로 몰려드는

젊은이들은 자연스럽게 조토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유명세를 치르게 된다. 


'사회는 계급으로 구분된다. 싸우는 자들(기사), 기도하는 자들(사제), 그리고 일하는 자들(농부,

수공업자)'라고 말한 11세기 주교이자 시인인 아달베론(Adalberon) 말은 한세기가 지나기전 '상업하는

자들'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부상했고 이는 도시의 성장과 산업발달의 초석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시민들은 귀족 세력의 전횡을 견제하고 밖의 도적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코뮌(Commune) 설립한다. 코뮌의 등장은 견고하게 이어져오던 사회구조의 균열을 가져오게 되었고

견고했던 중세의 틈이 벌어지며 사이로 근대화라는 미지의 세계가 엿보이는 시기이고 시발점이

곳이 바로 코무네광장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포르치운콜라(Porziuncula)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 안에 있는 작은 성당으로

프란치스코가 직접 흙과 돌을 나르고 발라서 지은 높이 4미터 7미터의 스무명 정도가 예배 드릴

있는 작은 성당이다. 별다른 장식도 없이 단출한 모습은 평생 가난하게 살며 선교에 헌신한 프란치스코의

삶을 닮아 있고 바로 여기에서 중세 유럽을 휩쓴 종교 운동이 일어났다. 놀라운 점은 프란치스코는

수도회에 입회한 수사로서 로마 가톨릭 교단이 인정한 사제는 아니었다는 사실이고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회, Ordine die Frati Minon) 회칙이 상상을 초월할 만치 엄격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선교를

나갈 화폐는 물론 신발 심지어 성경책도 가지고 다닐 없었고 누더기 같은 의복에 가죽 허리띠를

두르는 것도 금지되어서 노끈으로 허리를 묶고 다녔는데 이것이 현대 작은수도회 수도복의 표본이다. 


저자가 우피치 미술관에서 소개하는 치마부에, 두초, 조토의 '마에스타(Maesta-영광의 그리스도상)'

스승이자 제자이자 라이벌이었던 명의 천재가 동일한 형식과 주제로 자신의 예술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비잔틴 미학을 집대성한 거장이자 성화에 인간적인 감성이 더해지고 시작한 후기

비잔틴을 대표하는 화가 치마부에(Cimabue), 고딕회화로 불리는 시에나 화파의 수장으로 고딕이념에

따른 회화의 방향을 제시한 두초(Duccio di Buonisegna), 중세회화의 페러다임을 바꾸며 근대 미술로의

길을 조토(Giotto di Bondone) 선보이는 예수 탄생에 대한 그림인 <마에스타> 각각의 그림에

자신들 만의 특징을 드러낸다. 아기 예수를 손으로 가르키는 성모의 동작은 ' 분이 길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비잔틴 시대의 호데게트리아(Hodegetria) 떠오르게 하고(치마부에), 성모가 두른

외부의 금빛 선의 부드러운 흐름을 통해 우아하고 아름다운 성모의 위엄을 전하는 사실적 묘사와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두초의 마에스타, 무엇보다 찬란한 황금빛 옥좌에 앉은 성모의 위엄을

 표현하고 무릎 꿇고 있는 천사의 모습에서 르네상스 예술의 씨앗이 발견되는 조토의 마에스타.

작품은 같은 하나 분명 표현하는 양식이나 방법, 의미하는 바가 다른 그런 작품인데 작품을

곳에서 있다. 조토의 작품은 중세 회화의 현실세계의 공간과 인간으로서의 성모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서양 회화의 출발점으로 매번 인용되며 치마부에로 대표되는 이전 시대의 예술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로 걸음을 옮기는 계기가 된다. 


책은 중세 미술에 관한 좋은 책이다. 그리고 책은 좋은 여행지침서이다. 피렌체, 아시시, 파도바로의

여행을 계획한다면 책에 실려 있는 작품 하나하나를 만나는 경이로운 시간을 욕심내도 만큼 훌륭한

지침서이다. 아마도 그러기에는 너무도 시간이 촉박하겠지만 도시 하나에 며칠을 투자해서라도 해보고

여행이다. 책의 부제 처럼 '일생에 한번은 중세 미술 여행'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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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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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를 한적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 가야 하는 어떠한 의무와 권리를 가지지 못했고 당연히

주정부와 연방정부에게는 존재 하지 않는 아이, 그러나 그녀는 존재했고 자연과 대지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 숨쉬면서 살아있었다. 정부의 간섭과 생존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위해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지만 결국 생활을 하고 살아야 하기에 제도권 아래로 나올 밖에 없으나 마저도 자신과의

적절한 타협으로 무마하고 넘기는 가족들. 모순이긴 하지만 출생증명서의 출생일에 대한 논란이나

어쩌다 동네 유일의 산파가 엄마 이야기는 재미있는 시트콤을 보는 흥미롭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법적 증거인 '출생증명서' 받아드나 사실 이마저도 날자가 정확하지

않다. 본인들은 모르지만 외부인 대부분은 그들을 허상과 피해망상으로 만들어진 덫에 둘러싸여

점점 고립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추억을 먹고 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억이 희망이 되어 조금씩 조금씩 추억을 탕진하며

산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요즘 우스개 소리 마냥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일을 한것 마냥 으스대기도

하고, 기억의 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저자도 그랬다. 저자가 가진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특별하다. 외부와 단절된 일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마음 놓고 얘기 있는

그런 존재였다. 물론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장의사들이 잘못 칠해 놓은 입술을 그대로 간직한 .

화장실을 다녀온 손을 씻어야 한다는 할머니와 손에 오줌을 싸지 말라고 가르치는 아빠 사이에서

저자는 혼란스러울 법도 한데 이쪽 저쪽 적응한다. 여기서 배운 적응력이 그녀를 자립적이고

독립적으로 성장시켰는지도 모른다. 


책은 1부에서는 태어나면서 17세에 ACT 시험에서 28점을 획득해 브리검 대학에 합격하기까지를 

2부에서는 1 보다 파란만장하고 스펙터클한 대학생활이 그려지고 3부에서는 캠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의 석사와 하버드에서의 박사과정이 소개된다. 트리니티 칼리지의 입구는 돌문으로 막혀

있고 돌문에는 작은 나무문이 달려 있어 문으로 들어서야 칼리지 안으로 들어 있다. 이곳에

방문객도 손님도 아닌 자신의 이름이 문에 페인트로 있는 서류로도 이곳에 속한 사람이 저자의

경이로움과 기쁨은 '캠브리지는 여전히 기억 속에 있던 대로 오래되고 아름다웠다' 말로 충분히

표현된다. 그리고 속에 자주 등장하는 중세 시대의 흉벽은 마음의 쉼터이자 편안함을 제공하는

안식처였던것 같다. 누구나 그렇게 바라보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과거는 영향을 끼칠 없는 대단치 않은 유령에 불과했다. 무게를 지닌 것은 미래뿐이었다'

저자의 삶의 자세를 말해주는 문장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물론 과거가 존재하기에 현재도 미래도

존재하지만 과거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책임질 있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현실에 충실해야 하며

충실한 현재가 미래를 가져오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교육' 대해 이야기하며 '자아' 말한다. 때로는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변화된 자아이며 성장한 자아이고 그녀는 이것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녀는

책을 비망록(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둔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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