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 일, 관계, 삶의 과부하 속 내 마음 회복수업
로라 판 더누트 립스키 지음, 문희경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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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럼에도 뭔가를 하라'

다양한 삶의 형태와 상황 속에서 반복되는 동일한 질문인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한

저자의 대답이다. 일상의 과부하와 두려움 앞에 손과 발을 놓아 버리기에 급급한 우리들에게

저자는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 그리고 다시 일어섬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

말한다. 자신을 알아야 문제도 해결할 있고 문제를 해결할 있어야 다시 시작할 있다.

물론 쉽지 않다는걸 저자도 안다. 그럼에도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리기엔 우리네 인생이 너무

아깝기에, 패배자인양 의욕마저 상실한채 멈춰버리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소중하기에

다시 시작해 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버거운 일상에 짐을 하나 얹는 것이 아니라 아직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 있음을 말한다. 


삶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의지야 말로 자존감의 원천이다. 어떤 상황에 처하던, 어떤 감정을 느끼던

결국 적절히 행동하는 능력은 우리 안에 분명히 존재하고 자신을 위해 선택하는 크고 작은 순간들이

쌓이면 결국 자유로워 있다. 어떠한 선택이든 상황의 제약을 받고 선택 사이에 긴장이 발생한다.

이때 당장 수면위 물결이 아닌, 속의 고요한 내면을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과부하의 무게를

줄일 있는 방법이다. 문제는 과부하와 나란히 걸어 가느냐, 과부하로 손발을 묶고 재갈을

무느냐이다. 


요즘 우리는 '바빠' 신드롬에 빠져 있다. '요즘 어때'라고 물을 당연하다는듯이 '바빠, 미친듯이 바빠,

죽을것 같아, 나도 그래' 튀어 나온다. 이렇게 대답하지 않으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메세지 처럼 들리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무슨일을 하고 어디에 살든 일로 과부하에

걸리면 생산성과 행복이 감소하는데 그렇게 바쁜 우리의 대부분은 '행복하게 살려고' 그렇게

한다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문제는 '정말 바쁜가?'이다. 정말 그렇게 돌릴 틈도 없이

바쁠까? 아쉽게도 아니다. 정리되지 못한 일의 우선순위를 찾지 못해, 준비되어 않은 일의 실행,

넘쳐나는 정보에 대한 무차별적 습득등 일로 인해 바쁜게 아니라 외적인 것들로 많이 바쁘고

분주하다. 여기에 눈치도 크게 한다. 바빠 보이지 않으면 '베짱이' 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모두들 일요일 되면 우울하다. 


온전하다는 것은 완벽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깨진 부분도 오롯이 수용한다는 의미이다. 자기를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능력은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한 중요한 포인트다. 이때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흘려

보내지는 못해도 적어도 한동안 떠내려가게 놔둘 필요는 있다. 이는 무의식 중에 선택하고 정신 없이

빠져드는 모든일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멈추고, 알아차리고, 심사숙고해서 선택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 온전해 지는 방법이다. 


작가이자 사업가인 패리스(Tim Ferris) 말은 책을 덮은 후에도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내가 맞은 거대한 폭풍' 영원하지 않다. 그렇다고 내게 닥칠 마지막 폭풍은 물론 아니다. 앞으로

많은 폭풍이 불어 닥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불을 피워 따뜻하게 유지하면서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우리가 쌓아 놓은 일상과 습관과 인간관계와 대처능력) 있으면 내리는

비를 홍수가 아니라 거름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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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게 하고픈 말 -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를 향한 심중소회
류호준 지음 / 두란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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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설교자의 진정성 있는 삶과 신앙이 담보되지 않는 설교는 죽은 설교입니다. P142


심중소회(心中所懷). 마음속의 생각이나 느낌이라는 의미의 한자성어인데 저자가 <목회와 신학>에서 

2 동안 왔던 글의 제목이고 자신을 종교개혁의 신학적 유산을 물려 받은 신학자라고 소개하는

저자의 '진짜 하고 싶은 ' 들어 있는 작심발언 성격의 책이기에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책을

썼는지 궁금해졌고 국민일보와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 읽었다. 인터뷰 내내 저자의 한국 교회에 대한

사랑과 그의 탄식을 느낄 있었다. 특별히 '목회자는 성경을 무시하고 교인은 성경에 무지하다'

'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몸부림 치는 것이 신앙'이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런 저자의

글이기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연다. 


역시 강하다. 저자는 한국교회에 대해 특별히 지도급 인사들을 '실천적 무신론자들'(practical atheists)

이라고 비판하며 입으로는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이 없는 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설교하고, 기획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예로 적폐목록 63개를 나열하며 마지막에 '' 붙인다.

있다는 말이다.


공동체성을 상실하고 자기연민주의(Narcissism) 탐닉하기 시작한 교인들을 강도 높은 종교적 마약

복용에 중독 되었다고 표현하며 그런 메세지를 전달하는 목회자들을 '종교 마약 거래상'이라고 비판하는

저자의 말은 서슬퍼런 검과 같다. 말씀의 본질을 버려두고 종교적 흥미와 대중들의 인기를 얻기

위한 '광대놀음' 이미 강단을 점령했고 우리의 신앙을 변질시켰다. 문제는 서로가 이것을 눈치채지

못한채(어쩌면 모른척 하는 것일수도)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 마냥 폭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세속적 대류의 근저에는 '성경 무지' '성경 무시'라는 근원적 일란성 쌍둥이 병원체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TV 드라마나 IT 기기 사용에는 중독성 반응을 보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거워하는(1:2) 경건생활에는 영적 중요성과 우선권을 두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회는 점점 황폐해지고 돈으로 양반의 관직을 사는 공명첩이나 부모의 은덕으로 벼슬을 하는 음서제와

같은 말도 안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마치 교회 직분이 유교적 관료주의 같이

계급화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하고 '선거운동'(일명 얼굴 알리기)이라는 미명하에 여러 어려운

봉사를 서로 하려고 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물론 이마저도 선거가 끝나면 그만둔다.)

이들에게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소금의 역할이나 어둠을 몰아대는 빛의 역할은 이미 생각 밖의 일이다. 


목회자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처럼 어느새 목회자들에겐 '성경 무시'

현상이 팽배해져 종교 개혁 당시 외쳤던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설교를 위한 수단이 되어 버렸다.

정작 자신의 영혼을 깎아 만들어 가는 인고의 노력은 뒤로 하고 쉽고 편하게 아는 것만으로 혹은

남의 것을 도용해 한탕을 해치워 버린다. 그러면서 교인에게 억지 신앙을 강요하고 영혼 없는 말로

르치고 훈계하는 영적 갑질을 자행한다. 종교적 언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도 가장 비종교적 영혼을

소유한 종교 소매상 혹은 생계형 종교인들이 너무 많다. 주전 7세기의 스바냐 선지자가 부패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싸잡아 질타할 (3:4) 그들을 지칭한 말인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 원뜻이 '믿을 없는', '함부로 말하는', '쉽게 속이는', '위장하고 겉치레에 능숙한', '위선적인', '권위적인', '상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인데 지금 자신들의 본연의 자리에서 이탈하여 일탈을 벌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와 같아 뜨끔하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단순히 구호가 아니라 시행되어야할 실제이다.

지금 우리 교회들은 세상의 걱정 거리가 되어 있다. 


저자의 은사이기도 마르텐 와우스트라(Marten H Woudstra) 박사의 연설은 책을 덮은

이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첫째, 말씀(text) 존중하십시오. 둘째, 강단(pulpit) 존중하십시오. 셋째, 회중석(pew)

존중하십시오." 적어도 세가지만 지킬 있다면 우리의 강단은 그나마 깨끗해 질것이고

강단이 깨끗하다면 성도들을 향한 선포에 당당해 있을 것이다. 교회를 향한 주님의

음성은 '피로 값주어 사신'이다. 


책은 동기 목사님들에게 선물할 생각이다. 목회 현장에서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하지만

자리여서 안타까워하는 목사, 중형 교회 3 목회자로 청빙을 받아 갔지만 2

목사님과의 갈등으로 힘들어 하는 목사, 대형교회 부목사로 있으면서 부임지와 개척을

놓고 고민하는 목사에게 선물하고 싶다. 저자의 '심중소회' 그들에게 도전과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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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 자기관리론 - 워런 버핏이 가장 애독한 20세기 최고의 처세술 책
데일 카네기 지음, 이문필 옮김 / 베이직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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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멘토인 데일 카네기는 자신의 저서들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심리와 대화, 스트레스를 분석하고 체계화시켜 인간관계론을 구체화시켰고 책은 중에서

유명한 에피소드 만을 선별하여 카네기 사상의 핵심, 사업과 인간관계와 가정과 심리분야의

조언을 제공한다. 


'공감하고 인정하라'

특별히 저자는 자신과 반대되는 생각과 의견에 공감하고 인정하라고 말한다. 공감한다는 말은

자신의 생각보다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욕심을 부리지 않음을 의미하며 공감하기에

당신의 의견을 청취합니다를 나타내는 말이다. 공감은 그렇게 상대방의 마음을 얻게 한다.

인정한다는 말은 두가지의 측면에서 있는데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선입견과 편견과 같은 장막을

걷어내고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며 인격을 존중한다는 말이다. 현대인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하나인데 여기에는 시선과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마음의 렌즈만 조절하면 문제는 해결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결코 상대방을 받아들일 없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없게 된다. 자신을 드러내고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신뢰해야 하며 자신의 현재 상황, 처지, 입장등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인간의 가장 약점은 '체면' 중시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최후의 심리적 방어선을 가지고 있는데,

일단 이것이 무너지면 결국 '자위'라는 수단에 도달할 밖에 없고 이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도 혹은

무너뜨릴 수도 있는 힘이 된다. 누구에게나 자존심은 있으며 대부분은 이를 위해 어떠한 대가라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현명한 사람은 상대의 자존심을 생각하고 체면을 세워준다.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행위는 범죄나 다름 없다. 상대의 자존심을 짓밟고 상처를 나에게 원한이 쌓인 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체면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체면도 중요하다. 


생각이 바뀌면 운명이 달라진다. 슬픔에 빠져 있으면 슬퍼지고, 두려움에 빠져 있으면 두려워진다.

마찬가지로 즐겁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즐거워진다. 어짜피 모든 일은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받아들인

것들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는 편이 현명하다. 인생이 언제나 순조로울 만은 없다. 다만 용감하고

적극적인 사람만이 좌절을 극복하고 일어날 있다. 이들에게 좌절이란 높은 고지, 높은 곳을

점령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하다. 인생사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처럼 생각은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

비록 업무에 대해 삶에 대해 피곤하고 심리적인 피로가 생리적인 피로보다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만들지만 역시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경중이 달라진다. 모든 앞에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책에는 미주리의 옥수수밭 노동자 출신이있던 데일 카네기가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멘토로 자리할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다양하고 적절한 이야기와 함께 실려 있다. 두께가 두꺼워서 부담될 수도 있으나

친절하게 소개되는 에피소드와 함께 읽으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들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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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다이빙 - 현실에서 딱 1cm 벗어나는 행복을 찾아, 일센치 다이빙
태수.문정 지음 / FIKA(피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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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 주인공 쿠퍼는 블랙홀 속에서 과거의 자신을 향해 외친다. 'Stay'. 누구에게나 멈추고 싶은 순간이 존재한다. 영원히 움직이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시간, 우리에겐 그런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시간들은 우리의 숨결과 세포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우리는 기억을 먹고 산다. 나도 그렇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산다. 다른 사람의 , 시선, 행동, 심지어 숨소리 조차도 의식하며 산다. 그런데 놀라운건 그들은 전혀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데

혼자 의식하고 신경쓰고 눈치를 본다. 그러다 보니 행동은 부자연스러워지고 어색하고

경직된다. 말로는 '신경 안써' 말하지만 이미 신경은 타인에게 가있다. 정작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이다. 


'감정은 습관이다'

말에 동의한다. 감정은 학습되어지고 학습은 습관으로 자리잡는다. 굴러가는 낙엽을 보고도 웃고 울던 우리가 어느새 유치해서 웃지 않고, 별거 없다며 울지 않는다. 사실 어쩌면 우린 울고 웃는 방법을 잃어 버린건지도 모른다. 화낼 만한 것에 화내고, 웃을 만한 것에 웃고, 만한

우는 과정 속에서 우리에겐 무표정이 습관처럼 자리잡게 것이다. 그리고 상황을

들키지 않으려 많은 연기를 한다. 웃기는 것은 평생을 하는데도 도통 연기가 늘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알고 눈치챈다. 차라리 억지스러운 연기는 안하면 좋겠는데 정작 본인은

자신의 연기력이 얼마나 형편 없는지 모른다. 우린 그렇게 만들어진 습관이 익숙해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은 불행과 고통이라는

괴물들을 어깨에 매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역설적이면서 현실적인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살아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견뎌야 하며, 버티고 일어서야 한다.

슬프지만 우린 주문을 계속 외워야 한다. 불교에서 말하듯 인생은 고해(苦海)이기 때문에

고해를 건너기 위해 끊임없이 노를 젖듯 주문을 외워야 한다. 


백창우의 '나이 서른에 우린' 보면 '우리들의 노래와 숨결과 만남과 약속이 나이 서른엔

어떤 뜻을 지닐까'라는 가사가 나온다. 저자(혹은 저자들) 서른이라는 나이에(혹은 즈음에) 현실이라는 세계에서 살짝 비껴서서 지나온 삶을 돌아 보며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는 'Half Time' 갖는다. 그리고 조금 무모하다 싶은 다이빙을 한다. 나에게도 '나이 서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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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불평등 시점
명로진 지음 / 더퀘스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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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태생적으로 불평등하다. '소유'라는 개념이 등장한 이래로 한번도 인류는 평등했던

적이 없다. 수없이 많은 제도와 이상들이 나왔지만 나름의 모순을 가지고 있어 결코 평등하지

않았고 이름만 바뀐 불평등은 지금도 계속 된다. 그런 현실 앞에 저자는 시선 자체를 갑이

아닌 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불평등한 갑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지랄맞은 갑들아,

눈치 챙겨'. 이런 저자를 인문학자인 김경집은 뭉툭한 칼과 예리한 펜의 소유자라고 한다.

그는 시니컬하지만 조롱기가 없고 진지하지만 유쾌한 사람이다. 


'꼬붕의 시다바리'

꼬붕도 억울한데 시다바리다. 좋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서 20 정도 초고속

승진을 해야 그것도 운이 좋아야 '꼬붕' 되고 창업주 2.3세대의 뒤치다꺼리를 한다. 그러니

이제 졸업한 이들은 꼬붕의 시다바리일수밖에. 젊은이가 불편하면 사회가 불편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시작부터 불편하다. 뭔가 대책이 필요한데 다들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다. 이러다보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디스토피아(Dystopia). 


우리는 ''인가. 아닐수도 아니 아니다. 최소 우리가 중견기업 정도를 가지고 있지 않는

우리는 을이 아니라 을에게 일감을 받아야 하는 ''이거나 혹은 병에게 일감을 받아야 하는 ''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어차피 병과 정이라면 우리의 발버둥은 무의미해진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은 '부자가 되려면 부자를 만나라' 어이없는 말마저 만들어 냈다. 그러나 저자는

부자를 이야기하며 부자를 그냥 만나거나, 만나지 말거나, 부자가 되고 나서 만나라고 말한다.

결코 그들만의 리그에 끼어들수 없으며 끼어든다 하더라도 가끔 먹는 신기한 별식 수준이거나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이러한 상황에 분노한다. 그냥 분노만 한다.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 '분노하라' 나오는 이들처럼 행동하지 못하고 마음 분노에

그친다. 굳이 ''라고 묻는다면 '밥그릇'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병과 정들은 여전히 고달프다. 


문제는 중요하다.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피와 같다. 피가 돌지 않으면 사람이

죽듯이 돈이 돌지 않으면 사회가 죽는다. 돈이 없으면 있는 것이 없다. 누굴 만날수도 없고, 마음껏 먹을 수도 없고, 곳도 없어지고, 입을 옷도 없어진다. 이것이 죽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에 이미 2600년전 현자인 관중은

'기본적인 재산이 있어야 문화도 있다'라고 말한다. 


세상엔 '리더'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리더가 세상을 움직이고, 리더가 역사를 만들고....'. 물론 리더는 중요하고 누구나 리더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세상엔 '리더' 없다.

모두가 리더가 되고 싶어 하는데 정작 리더가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 앞에 저자는 초나라의

장왕(초장왕) 소개한다. 왕위에 오르고 처음 3년간 주색잡기만 하다 정신차리고 초나라를

다스리다 '손숙오'라는 멋진 참모를 만나 부국강병을 이룬 인물이다. 그의 일화 '당교'

관한 이야기는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난을 진압하고 베푼 연회에서

젊은 장수가 술이 취해 후궁의 허리를 껴안자 후궁이 재치를 부려 장수의 관끈 하나를 잡아

끊은 초장왕에게 사실을 고하며 벌해 달라고 하자 초장왕이 모두에게 관을 벗고 끈을

끊으라고 명한 이야기다. 이후 초장왕은 장수에게 벌을 주지 않은 것을 따져 묻는 후궁 여희에게 '해가 지면 왕과 신하는 술자리를 그쳐야 하는데 마시자고 잘못이다'라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 리고 그때 후궁의 허리를 껴안은 장수가 훗날 정나라와의 전쟁에서 결사대500명을 이끌고 적진 안에서 맹렬히 싸워 승리를 견인한 '당교'이다. 저마다 자신의 공을

내세우다 못해 아랫 사람의 공까지 가로채는데 혈안이된 우리에게 리더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일화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중산층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준은 재산이 얼마이며, 평짜리 집에 살고, 차는 무엇인지 경제적 관점에 따른 구분이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의 기준엔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 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정한 기준엔 '페어 플레이를 하는 사람' 들어 있고 미국 영국

프랑스의 공통된 기준엔 '사회의 약자를 돕는 사람' 들어있다. 과연 기준대로 하면 우리는 과연 중산층일까? 물론 'What you eat is what you are'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아니 아니라고 믿고 싶다. 역사가 반복 되듯이 '식사(食史)' 반복 된다. 


인생은 불공정한 게임이다. 게임 자체의 출발선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에 알면 알수록 절망하게 된다.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있다' 환상이다. 그냥 환상 정도가 아니라 개꿈이다.

세상은 공평하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죽음 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누구도

이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는 누구나 죽음을 피할 없기에 살면서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의 길을 선택할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하며 지금을 치열하게 살것을 말한다. 치열하게

살며 자기 삶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있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있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 점에서 삶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저자가 스무살 아들에게 하는 마지막 말에 가슴이 뜨끔해진다.

'투표를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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