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누구나 쉼을 원하고 쉼을 말하지만 쉽지 않다. 그 어느 누구도 쉼에 대해 이것이 쉼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각자의 상황이나 환경과 위치에 따라 쉼의 형태는 다양하고 깊이 역시 천차만별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쉼은 예수와 연관되어 있고, 불교에서 말하는 쉼은 비움과 관계되며, 세상이
말하는 쉼은 '내버려 둠'과 닿아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 앞에 '자기와의 마주섬'을 쉼의 주제로
삼는다. 그러면서 느린 거북이의 걸음을 이야기 한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는 것.
나이가 들었다는 것과 늙었다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해 짐을
의미한다. 나이의 무게 만큼 켜켜이 쌓인 삶의 경험들이 자신을 더욱 성장시키며 오롯이 '나'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든 사람들을 보며 배우고 따르고 존경하는 것이다. 그러나 늙는다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점점 '꼰대'가 되는 것이다. 덜 영글은 열매처럼 시고
떫고 맛이 안난다. 시간이 지나 맛난 열매가 될 법도 한데 여전히 그대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서
점점 밀려 나게 되고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다. 멋지게 나이들어감은 삶에서 마지막 열매를 맺기 위한
노력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 어떤 것에도 휩쓸리지 않고 오롯이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것이다.
울음은 슬퍼서만 우는 것이 아니다.
울음은 사람의 감정이 극에 달하면 나온다. 그것이 슬픔 일수도 분노 일수도 기쁨 일수도 사랑일수도
있다. 울음은 슬픔의 결과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지는 감정의 최고점이다. 진정한 사람은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다. 제때 울 줄 알고, 주변의 불행을 보며 눈물 흘릴 줄 알고, 상대방의 최고의
기쁨의 순간 기꺼이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에게선
찾아 보기 힘든 일지만 말이다.
행복은 늘 가까이에 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곳에 있는데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멀리 더 먼 곳을 바라 본다. 더 멀리 있는 곳에 있는 신기루를 행복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잡으려고
애를 쓴다. 마치 파랑새를 찾으려고 온 세상을 돌아 다니다 집에 돌아와보니 바로 그곳에 있었던 것 처럼
행복은 늘 가까이 있다. 내가 가진것 그것이 행복이고, 내 곁에 있는 사람 그것이 행복이고, 지금 누리는
이 시간 그것이 행복이다. 익숙한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중심 잡기'이다. 마음의 중심도 생각의 중심도 여간해서 잡기가 어렵다.
중심을 잡는 다는 것은 자신이 바로 서 있다는 의미다. '바르다'라는 말에 어원을 보면 '바르게 서 있다'는
의미와 '마음을 바로 잡다'라는 의미가 공존 하듯이 우리의 삶에서도 마음과 자세가 바르게 서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 잡기'가 가능해진다. 중심이 반듯한 사람의 삶은
멋지고 아름답다. 결국 쉼은 중심 잡기의 시작인 것이다. 바르게 쉼을 통해 마음과 생각과 행동의 중심
잡기가 시작되고 그런 사람의 삶이 멋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