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가르쳐 준 기도 - 신·구약 성경 인물을 통해 배우는 기도의 삶
박광석 지음 / 두란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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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위대하시다면 우리의 정성도 그래야 합니다. P17

일어 서십시오. 장애물 앞에 멈칫 거리지 말고, 믿음으로 그것을 뚫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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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어렵다. 하면 할 수록 어렵고 힘들다.' 대부분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주님은

이런 우리의 사정을 아셨는지 친절하게도 '주기도문'이라는 기도의 모범과 성경 곳곳에 다양한 기도의

형태들을 보물 같이 숨겨 놓으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기도를 힘들어 한다. 힘들다 못해 걱정과

근심 덩어리가 되어 매일 주문을 외우듯 뭐라도 해야 안심이 되는 지경에 처했다. 이런 우리에게

저자의 책인 '성경이 가르쳐준 기도'는 제대로 된 기도를 하기 위한 마중물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연다.

이런 책은 참 드물게 만난다. 서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을 전부 풀어 놓는다. 성경에서

기도를 강조하는 곳(에베소서 6:18, 여기에는 모든 기도, 간구,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깨어 구하라,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렇게 다섯번 '기도'라는 단어가 나온다)과 최고의 기도(마26:39,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기도의 최고봉이다), 기도의 모범으로서의

예수님, 정답이 없는 기도, 교제하듯 하는 기도와 같이 기도의 핵심들을 이미 서문을 통해 밝힌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소중하고 기대되는 것이다.

유독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다. 유다의 14대 왕인 므낫세이다.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백성들을

잘 이끌었으며,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쳐들어 온 앗수르를 물리치기도 했고, 기도를 통해 죽을

병이 낳기도 한 아버지 히스기야와는 다르게 자신이 왕이 되자 우상을 끌어 들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아세라와 바알신의 우상을 가져다 놓고, 마술하는 사람과 요술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당과 넘치는

사람들을 끌어 들여 그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지금이라도 돌아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면 모든것을 용서해 주겠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므낫세는 악한 일을 멈추지 않고

결국 앗수르의 포로 신세가 된다. 최소 한달이나 걸리는 먼 거리를 무거운 쇠사슬에 묶인 채 끌려가면서

온갖 생각을 다한다. 사막 길을 끌려 가면서 타는 듯한 목마름과 태양 빛에 가죽이 벗겨져 피투성이가

된 처참한 상황 속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대하 33:12) 상황이

어려워지니 그제서야 깨닫게 되고 크게 뉘우치고 낮아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살려달라고, 하나님 만이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기도했을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해보고

온갖 방법을 다 써 본 후에 그제서야 하나님을 부르는 우리와 너무 흡사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속이 들여다 보이는 행동을 하는 므낫세를 받아주신다.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다시 그를 유다의

왕으로 복귀시키신다. 그렇게 돌아 온 므낫세는 여호와의 전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쌓아 놓은 모든

제단을 성 밖으로 던져 버린다. 말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라 철저히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진정한 회개를 한 것이다. 저자는 '므낫세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라면 우리의 기도 또한

들으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애통함을, 간절함을 결코 그냥 두시지 않는

분이시다. 문제는 우리의 낮아짐에 있다. 머리를 꽃꽂이 쳐들고 마치 맡겨 놓은 자신의 것을 돌려

달라는 사람 마냥 요구하기에 급급한 우리의 기도를 돌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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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 나오는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기도들을 보면 중요한 특징 하나를 발견한다. '믿음'이다. 주님은

그들의 행위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보신 것이다. 자녀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개 마냥 은혜를 구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주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8)고 말씀하시고, 중풍병자를 상에 매달아 지붕을 뚫고 내린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구원하셨고, 예수님의 옷에서 흘러 내린 가느다란 실 같은 무언가를 만졌던 열 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도 '내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하신다.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간절함'이다. 이들은 간절했고 절실했다. 예수님이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함과 예수님이면 하실 수

있으시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주님은 이것을 '믿음'으로 보신다. 몇번 해보고 안되면 '주님의 뜻이

아닌가봐'하며 포기해 버리는 우리의 얇은 신앙에 대한 도전의 메시지다. 기도에는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기도는 한번 하고 끝내 버리는 일회성 유희가 아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과 주님처럼 목숨을 걸

정도의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기도는 위대한 사역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기도 자체가 이미 '더 위대한

사역'이다는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J. Chambers)의 말과 단 한번도 기도에 실패 해 본적이 없다는

인디언 부족의 기우제가 생각난다.

이 책은 여전히 기도의 맥을 못 잡고 중언부언과 주문을 외우는 듯 기도하는 자신들을 안타까워 하고

있는 우리 교회 젊은 집사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이 책은 그들에게 기도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며,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교재가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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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 공감과 연대의 글쓰기 수업
메리 파이퍼 지음, 김정희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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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예전에 좋아했던 글 하나를 발견한다.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큰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한쪽은 절망과 체념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 쪽은 완전한 소멸로 이어진다. 부디 우리에게 지혜가 있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우디 앨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의 선택은 완전한 소멸이었다.

(물론 그럴 수 있다면 이라는 전제가 깔린)

우리 앞에 체념과 절망 그리고 완전한 소멸만 있다는 우디 앨런의 말처럼 지금 우리의 상황은 충분히

나쁘다. 삶이 쉬웠던 적은 없으나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그 오늘보다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 있어 수백년 이전에는 당장 눈 앞에 닥친 문제만 해결하면 됐다. 오랜 시간 인간은 대륙

저멀리는 커녕 바로 앞 산 너머의 일도 모르고 살았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것만 알았다. 그러던 인류가 과도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게 되자 우리 대다수는 그들이

뿜어내는 넘쳐나는 자극과 어찌할지를 모르는 무력감이 한데 얽혀 불안과 절망에 빠진다. 그렇게

우리는 '실존적 무지(existential blindness)'의 시대를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대상화하고 비인격화하고 비인간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언어는 무기가 된다. '우리와

다르다'는 꼬리표가 달리면 그들에겐 더 이상 문명화된 행동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불법 체류자를

뜻하는 'illegal alien'이 좋은 예다. '불법'이라는 의미의 'illegal'이나 '외국인 체류자' 혹은 '이질적인'이라는

의미의 'alien', 두 단어 모두 지칭하는 사람을 우리와 분리시킨다. 하지만 세상에는 불법인 사람도,

이질적인 사람도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우리는 마르틴 부버(Martin Buber)가 말하는 '나와 너 관계(I-thou relationship)'를 기억해야 한다. 부버는

'나와 그것'과 '나와 너'의 관계를 구분한다.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피상적으로

다룬다. '그것'은 그저 우리의 목적을 돕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마치 은행원은 우리에게 돈을 내어주거나

받아 주는 존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것 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와 너'의 관계로 옮겨간

은행원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꿈도 있고, 욕망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존재가 된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봐야 비로소 상대를 향한 존중이 생기는 것이다. 이때 '나'와 '너'가 '우리'의 관계로 진입하게

된다. 우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에게 꼬리표를 달면 그들의 인간성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그럴수 없도록 우리와 그들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져야 할 책임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의 역사, 그들의 가족, 그들의 감정, 그들의 정당한 요구들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복잡한

인간인지 보여주는 일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연결해야 한다. 연결하면 책임감이 생긴다.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얽혀 있다. 변화를 촉진하는 최선의 방법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의식이 있는 작가는 자기 글 면면에 진정성과 투명성이 배어 있기를 바란다. 그들은 독자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려고 애쓴다. 또 혼자 힘으로 얻기

어려운 아이디어와 경험으로 독자를 이끌고 연결해준다. 이런 유형의 글은 언제나 독자가 준거의 틀을

넓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더 큰 그릇(bigger container)'에 물건을 담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영혼의 성장이란 공감, 명료함, 선에 대한 열정을 꾸준히 키워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더 잘 감응할 뿐만 아니라, 구별하기를 걷어내고 연대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특정한 종류의 지혜를 향한 여정이며, 그 지혜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감사다. 줄루족에게는 연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

이 책에는 글쓰기에 대한 최고의 조언이 들어 있다. '말할 필요도 없어라는 말은 쓰지 말아라. 말할 필요가

없다면 안하면 된다. 여러분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인생이 엿 같다'이면 독자들은 그걸 모면하게 해줘야

한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기에 말에 다리가 달려 멀리 달아난다. 작가는 수많은 길을 제각기 걷지만 하나의

교차로에서 마주친다. 그중 하나가 '관찰'이다. 작가는 호기심으로 세상을 흡수하는 사람들이다. 남의 대화를

엿듣고, 쉴 새 없이 읽고, 자기가 읽는 것으로도 모자라 지하철이나 상점에서 다른 사람이 무엇을 읽는지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렇게 관찰한 것을 글로 쓰는 것이다. 관찰에 대해 틱낫한은 이렇게 말한다. '깊이

들여다 봐야 볼 수 있다. 헤엄을 치며 맑은 강물을 즐길 때, 우리 또한 강물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영감을 북돋는다. 계속 써라. 성공했다면 계속 써라. 실패해도 계속 써라. 흥미를 느꼈다면 계속 써라.

지루하다면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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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 나다움을 찾는 확실한 방법
모종린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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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물질 외적인

가치를 찾는다. 이처럼 라이프 스타일을 개인의 성향이라는 틀에서 인식하고 분석하는 것이

확산되면서 최근 자존감, 힐링, 비혼, 홀로 살기 등의 키워드가 부상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친구를 찾는다. 이는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이 연대와

커뮤니티에 관한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활동한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과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라이프 스타일을 특정 계층이 공유한 가치와 생활방식으로 정의했고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부르주아, 쁘띠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계급적 취향과 정체성을 구별하는 수단으로 이해했다. 이처럼 사회적인 측면으로 접근할 때,

나다움은 더 폭 넓게 구성되며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일과 공간으로 연결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라이프 스타일의 본질은 나와 물질의 관계에서 출발하고 물질을 나의 삶의 어디에 두는지가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서구 역사를 살펴 보면 산업 사회의 문화를 한 마디로 표현해주는

부르주아로 대변되는 '물질주의'와 물질과 독립된 삶을 제안하는 탈 물질주의로 나뉘어진다.

탈 물질주의 안에는 예술가 보헤미안, 문화저항자 히피, 진보 기업가 보보, 로컬 크리에이터 힙스터,

프리랜서 노마드 등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모델들이 존재하며 이 책에서는 여섯가지의 라이프

스타일을 중심으로 각각의 역사와 배경 그리고 미래를 분석한다. 특이한 것은 해당 라이프 스타일을

대표하는 도시와 기업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강남 좌파와 일맥 상통하는 '보보'(스)가 눈에 들어 온다. 보보는 '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의 합성어로 진보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가나 고소득 전문직을 의미한다. 특이한

것은 부르주아는 산업사회의 엘리트로 전형적인 물질주의 가치를 추구하고, 보헤미안은 그런 부르주아

문화의 대척점에 서 있던 부류라는 것이다. 보보는 그 이름의 유래처럼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를,

정치나 생활면에서는 보헤미안의 가치를 지향한다. 이 단어는 칼럼리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자신의 저서 '천국의 보보스(Bobos in Paradise)'에서 처음 사용하였는데 그가 말하는

보헤미안의 가치는 예술가적 가치 뿐만 아니라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책임을 포함하는

탈물질주의이다. 보보는 기본적으로 문화적 인간이다. 전통적인 귀족 엘리트가 아니라 '교육 받은

엘리트(The Educated Elite)'로 규정한다. 보보는 일, 직업, 여가, 신앙, 정치 분야에서 부르주아와 다른

생활 방식을 추구한다. 이들에게 직업은 좋아하는 일이다. 취미의 연장이라고 할 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 보보 문화도 다른 라이프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산업과 융합된 자신만의

도시를 만든다. 여기서 보보 도시는 보보가 모여 사는 즉 탈물질주의를 중시하는 부유층이 모여 사는

도시를 말한다. 그리고 보보 도시가 직면한 문제점은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이다. 일례로 한국의 보보를

자처하는 강남 좌파는 특유의 부르주아적 성향을 버리지 못해 생활과 정치를 통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라이프 스타일은 선택이다. 자신에게 맞는 라이프 스타일을 찾으면 트렌드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6가지의 라이프 스타일은 어떤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공존 할 것인데

그 중심에는 '탈물질주의'가 있다.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은 '나 다움'을 완성할 것이고 '개인의 자유는 필수,

커뮤니티는 선택'인 미래 사회에서 역동적인 자신을 만나게 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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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버 데이 원 - 위기 때 더 강한 아마존 초격차 시스템
램 차란.줄리아 양 지음, 고영훈 옮김, 박남규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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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ver day one'(매일을 첫날처럼)은 아마존의 경영전략 중 하나이다. 아마존의 경영관리시스템은

혁신적이다. 질적으로 좋으면서도 가격은 저렴하며, 서비스 처리 속도는 더욱 빠르고 편리하며

고객들을 위해 끊임없이 발명하고 새로운 비지니스를 창출하며 기존 생태계를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이에대해 워렌 버핏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을 '경이적이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아마존의 경영관리시스템을 구성하는 6가지 핵심 원칙 중 유독 눈에 들어 오는 단어가 하나 있다.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인데 바로 '집착'이라는 단어이다. 보통 어떤

대상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몰두하거나 집중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 '집착'을 아마존에서는 '가장

중요한 고객'에게 사용한다. '가장 중요한 고객에 대한 집착(customer-obsessed)'을 기반으로 플랫폼,

생태계, 인프라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개념을 만들었다. 아마존은 '집착'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고객 중심

경영을 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객이 최우선이다'를 모토로 삼지만 그 대부분이 지켜지지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마존은 '집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만치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마존은 여러 측면에서 전통적인 사업 방식을 탈피한다. 이 책은 맹목적인 모방이 아닌 선택적

수용을 이야기한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는 것은 본인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아마존의 CEO인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에 대한 연설을 할 때 마다 빠뜨리지 않는 내용이 있다. 바로 고객이 대한 집착

그리고 고객 중심주의다. 베조스는 1997년 첫 번째 주주서한에서 아마존의 기본 경영방침과 의사결정

방식에 관한 9가지 원칙을 밝혔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우리는 고객들에게 끊임없이, 끈질기게 집중할

것이다'였다. 그의 고객이 대한 감정은 경외심에 가깝다. '우리는 쉴 시간이 없다. 경쟁사가 아니라

우리 고객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에서 깨야 한다. 우리 고객들은 현재 우리의 사업을 만들어 주었고,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며, 우리가 큰 의무를 져야 할 사람들이다.' 고객의 신뢰는 기업이

노력을 통해 얻어낸 특권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들이 제품의 가격을 책정할때의 목표는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것이지 최고의 단기 이윤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고객과

관련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한가지는 고객의 '신성한 불만'이다 라고 말한다. 고객의 기대치는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올라가기에 고객의 신성한 불만은 아마존의 발전과 혁신에

지속적인 원천이 된다.

아마존이 다른 기업과 현격히 다른 하나는 '실패'다. 베조스는 아마존이 세상에서 가장 실패하기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실패와 발명은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다. 발명하기 위해서는 실험해봐야 하고 실험은

반드시 실패가 따른다. 성공 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안다면 그것은 실험이 아니다. 아마존은 이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으며, 실패하더라도 성공 할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발명의 과정은 효율적이지 않다. 좋은 결과가 나오려면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 과정은 고되고 오래 걸리며 불확실하다. 이에 대해 베조스는 발명은 '방랑의 힘이다'라고 말한다.

베조스는 아마존이 언제나 Day1의 정신을 지키는 조직이 되기를 바란다. Day1 정신의 핵심은

지속적인 기준 향상이다. 데이터 및 측정지표 시스템은 아마존의 모든 구성원이 최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측정 가능한 방식으로 기준을 향상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인 장치들이다. 이를

토대로 아마존은 성장해왔고 성장해 나갈 것이다.

아마존의 특징 중 꼭 짚고 넘어갈 부분이 '속도와 민첩성'이다. 기존의 관료주의적 의사결정은 속도가

느릴 뿐 아니라 여러겹의 계층에 따른 긴 승인 절차, 사내정치, 구성원들의 교묘한 시스템 이용, 그리고

데이터의 투명성 부족으로 인해 탁월한 결정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러한 관료주의적 의사 결정 과정은

디지털 기업에 꼭 필요한 '속도와 민첩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명령과 통제'를 위해

설계된다. 이외에도 '소신있게 반대하거나 헌신하라'와 베조스의 선택의 최후의 무기인 '후회 최소화

프레임 워크'는 머리 속에 오래 기억되는 방식들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항상 고려하는 Day2에 대해 베조스는 'Day2는 정체 상태이다. 몹시 고통스러운

쇠퇴가 따르고, 마지막은 죽음(앤트로피 증가에 따른 우주의 열역학적 종말인 '열 죽음(heat death)'을

빗대어 한 말)에 이르게 된다. 언제나 Day1 이어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한다. 불현듯 '멈출 것인가 변할

것인가'를 외쳤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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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씁니다 - 1%의 외로움, 나만 아는 이야기
김석현 지음 / 북스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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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외로움은 나 자신을 위한 감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상황이 외로운것인지 상태가 외로운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나뉠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사람은 외롭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외로움에 무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외로움에 처하면 속절 없이 무너져 내린다. 사실 외로움에 무딘 것이 아니라 그런

외로움을 경험해 보니 못한 것이다. '지독한 외로움'은 광풍과도 같다.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겨우

움켜 잡고 있는 의식을 여지 없이 날려버릴 만큼 거대한 광풍이다. 저자는 이러한 광풍을 파리에서

만난다. 세상에서 가장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이 몰려 있는 파리, 그곳에서 저자는 철저히 혼자가 되고

'나만 아는 외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 글은 그로 부터 시작된다. 외로움은 고정적이지 않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감정이기에 '관찰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를 표한다.

그렇다. 외로움은 지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관찰이 관찰로만 끝나면 소모적이다 못해 외롭다. 관찰

자체가 외로운 행위이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를 움직이는 대부분의 동기는 외로움 탈피, 혹은

여기에서 파생되는 안정의 욕구나 과시의 욕구, 소유의 욕구이기에 타인을 관찰하다 외로워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는다고 해도 외로움은 가시지 않고 남아 있는 외로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외로움을 말끔히 날려 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해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덜 외로워질

장치 정도는 찾아야 한다. 저자는 이런 장치를 '글쓰기'에서 찾는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카페에는 외로운 사람들과 덜

외로워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이 존재하며, 소음은 혼자 일하는 외로움을 상쇄해준다.

(사실 나는 아직 이런 소음이 부담스럽다) 심리학 용어로 'Mere Belonging(단순 소속감)'이라는

작용인데 대화나 신체적 접촉을 비롯한 그 어떠한 상호작용 없이 전혀 모르는 타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느끼는 약한 강도의 소속감을 말한다. 강력한 제한과 억제력은 없지만 나름의 유대감도

형성하고 그들 나름의 암묵적 룰이 생기기도 한다.

유럽 대부분의 집에는 발코니가 있다. 그곳은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시는

지극히 개인적 공간이다. 심지어 공간이 넓지 않으면 작은 의자를 하나 놓고서라도 그렇게 한다. 그곳은

자신 만의 안식처다. 누구로부터 침해 받고 싶지 않고 혼자 있고 싶을 때 찾는 그런 공간을 집 곳곳에

설치해 두고 자신만의 안식처로 삼는다. 발코니는 커녕 베란다까지 확장 공사를 해서 없애는 우리의

주거 공간과는 사뭇 다른 유럽의 모습은 외로움이라는 또다른 문제 앞에 우리를 직면하게 만든다.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이 책에서 다시 만난다. 남녀 주인공이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재회한다는 설정 덕분에 유명세를 타기도 한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에 힘들어 한다. 외로운 사람들은 외롭기 때문에 작은 인사 하나에도

반갑게 반응한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낳고 그 외로움은 또 다른 외로움을 불러 온다. 그렇게 우리는

지독한 늪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윌슨'(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혼자 남은

톰 행크스가 배구공에게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대화를 나눈다)이 존재한다. 그것이 넷플릭스가

될수도, 게임이 될수도, 유튜브가 될수도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 '의인화(anthtopomorphize)'라고

부르는데 외로움의 절정을 드러낸다.

이 책은 '요리소개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나온다. 밀가루 반죽이 각종 고기, 채소,

치즈로 속을 만들고 물에 삶아 소스를 곁들여 먹는 우리의 만두와 비슷한 라비올리, 일체의 첨가물을

섞지 않은 자연 발효 와인인 내추럴 와인, 아침 일찍 먹는 갓 구운 바게트, 그 맛이 일품이어서 간식으로도

혹은 한끼 식사로 먹기 좋은 에그타르트, 고급인 아라비카 원두가 아닌 질이 낮고 쓴맛 95%인 로부스타

품종의 원두, 에그타르트의 성지인 '파스데이스 데 벨렘(Pasteis de Belem)', 제노바 기차역 근처의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맛본 참치 링귀네 파스타가 포함된 런치세트등은 그 이름만으로도 군침이 돌게 만든다.

외로움에 대한 저자의 글은 외롭지 않게 만든다. 저자가 자신의 글 속에서 이야기 하는 그곳들을 다 가보고

맛보기에도 벅차니 말이다. 외로움에 관해 어떠한 정의도 내리지 못하겠다. 그저 밀려오면 밀려오는 대로

다가오면 다가오는 대로 맞이하고 만나야 할것 같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 나오는 대사 하나를 적어 본다.

'어디에 가도 슬픈 사람은 있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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