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듣는 법 - 분별과 은혜
김형익 지음 / 두란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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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듣기는 죽고 사는 문제다 p43

믿음은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p158

우리는 지금 설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들으려는 의지가 없어서 그렇지 조금만 움직이면

어디서든 설교를 듣는다. 물론 그 설교의 형태와 방법, 조금은 미안한 말이지만 '질'은 다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설교는 하는 사람도 잘 준비해서 제대로된 말씀을 전해야겠지만 듣는 사람도

어떻게 들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저자가 사용한 '분별'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지금 우리에게 이 책은 제대로된 설교 듣기에 대한 기대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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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프롤로그에 쓴 저자의 말에 공감을 표한다. 목사들은 평생을 두고 지속해야 할 과업인 설교를

위한 수업을 적어도 한 학기 이상 공부하는데 비해 성도들은 평생을 들어야 할 설교를 바르게 듣는

법에 대해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과 설교자들의 설교에 토를 달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흔히

듣는 '목사가 어떻게 설교하던 잘 들으면 된다'는 식의 핑계를 배제하는 점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설교가 천편일률적이고 형식적인 설교가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설교의 홍수와 위기를 동시에 지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능력에 붙잡혀 바르게 선포하는 설교는 그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듣는 회중을 만나야 헌다. 양자 모두에겐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좋은 설교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성경으로부터 나온 성경적 내용이어야 하고 그 내용을 성령의 능력 안에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설교를 말하는데 여기서 내용과 전달 모두 중요한 요소들이다. 설교자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말씀을 전하는 심정이어야 한다는 대학원 시절 은사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최소한 설교자는

그래야 한다. 뼈를 깍은 고통과 산고의 아픔으로 한편의 설교를 완성해야 한다. 그리고 준비된 말씀을

전달하는 전달하는 전달자로 사용되면서 되는 것이다.(대학원 시절 은사님은 이 부분을 카세트

테이프에 비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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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설교 듣기에 요구되는 두가지를 이야기 한다. 그 첫번째가 '분별'이다. 분별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은 베뢰아 성도들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0).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고 더 나아가 성경에 비추어 보면서 '이것이 기록된 무고한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가?'하며

확인했다는 것인데 이것이 분별이다. 막연히 '그럴거야'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비추어

'정말 그러한가'를 발견하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검증(?)은 설교자를 긴장하게 만들고 더

세밀하고 분명하게 말씀 앞에 엎드리게 만들며 이는 자신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더

가까워지는 은혜를 더하는 것이다. 설교 듣기에 요구되는 두번째 요소는 '은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사람은 그 말씀 속에서 주의 영광을 보게 되고 그 영광을 볼 때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영광이 이르게 되며 그 역사는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사람은

자연히 자신의 추함과 약함과 무능함과 무가치함을 보게 되고, 그 차이를 경험하는 것이 은혜이며

이렇게 설교를 통하여 은혜를 받을 때 사람은 그 말씀을 통하여 거룩해지는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설교 듣는 기술'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설교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의 신앙과 영혼의 죽고 사는 것, 그리고 영적인 건강과 성장이 달려있기에 성도들에게

'분별과 은혜'를 통한 설교 듣기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요8:47)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해도 믿음이 결부되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믿음으로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를 의미한다. 실제로 '듣는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순종한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들음이라는 행위 안에 순종이 포함된 것으로 이는 말씀에

의지하여 변화함을 말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에서 들음은 '믿음으로 들음'이고,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들음'이며, '순종을 만들어 내는 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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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전반에 흐르는 이야기는 '들음과 순종', '믿음과 변화'이다. 어떻게 듣느냐가 신앙 전체의 성패를

좌우 한다는 도전과 함께 바르게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롭게 돌아 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평생을 말씀을 들으면서 분열과 은혜가 그리고 순종과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 채 맹목적인

신앙을 가지는 대부분의 성도들에게 베이스를 단단히 하는 책이 될것 같다. 또한 오랜 시간을 믿어왔지먼

여전히 그대로인 이들에게는 시험과 도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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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님의 1분 스파르타 - 운이 풀리는 행운 수첩 2억 우주님 시리즈
고이케 히로시 지음, 아베 나오미 그림,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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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법칙은 단순하다, 우주는 당신의 말버릇 속에 담긴 전제조건을 충족시키는 장소다'라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말로 시작되는 이 책은 2억의 빚을 가진 남자가 세상과 맞서는 방법과 의지를

보여준다.

사람은 누구나 소원을 가지고 산다. 보통은 소원을 가지면 그것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성취하는데

이 책은 조금은 다른 방법을 찾는다. 소원을 우주에 '주문'한 뒤 우주로부터 '힌트'를 얻어 그 힌트에

어울리는 최선의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조금은 막막하다. 그러나 여기에 답과 숨겨진 비밀이 존재한다.

사람은 무엇을 보는가에 떠라 현실이 바뀌고, 사고방식에 따라 미래가 바뀐다. 그래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주가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해서 진짜 우주가 뭔가 말을 걸어 온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우주 속에 있는 만물들 안에 힌트가 들어 있고 그 힌트는 볼 수 있는 사람의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주를 '우주님'이러고 부른다. 지금까지의 자신을 새롭게 바꾸고 싶다면 마음을 먹고

바로 움직여야 한다.

우주로 보내는 주문은 명확해야 한다. 두루뭉실하거나 뭉뚱그려진 주문은 해주고 싶어도 해줄수가

없다. 저자는 이에 대해 만약 주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주문을 보내는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구체적이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도 고려 할 필요도

없다. 나의 것을 하면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된다.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원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격하게 공감되는 부분을 만났다. Spiritual'이라는 단어다. '힘들 때는 기도를 한다'라는

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인생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지금 스피리추얼이라는 단어는

오해하기 쉬운 단어다. 하지만 스피리추얼은 매우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단어다. 마치 땅에 두 발을 대고

서서 철저하게 현실을 살며 갖는 믿음 그것이 '스피리추얼'이다. 저자의 말처럼 마법처럼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환상이다.

과거는 과거일뿐이다. 지금 바로 이곳에서 현실을 살고 있음으로 기억해야 한다. 현실은 결코 피할수도

넘겨버릴수도 없이 우리에게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제 그 도전을 받아들여 싸울것인지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살것인지가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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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평화를 향한 탐구 - 핵무기와 전쟁이 없는 세계를 이야기하다
이케다 다이사쿠.로트블랫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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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대립과 분단으로 대변되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계층, 계급, 소득 수준, 피부색 등

대립을 이루는 요소는 넘치고도 넘쳐 극심한 사회 갈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이다. 지금이야말로 저자의

말처럼 대화를 통한 이해와 소통, 그리고 조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류는 '종(種)의 멸망'을 생각하게 되었고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 중 하나가

바로 '핵 무기'다. 인류의 역사를 두가지를 나눈다면 핵무기 이전과 핵무기 이후로 나눈다는 조금은

파격적인 발상을 차지하더라도 '핵'이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분기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평화운동가인 이케다 다이사쿠와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핵 무기

폐절 운동의 대표주자인 조지프 로트블랫의 대담집을 엮은 책이다.

'네가 공격한다면 즉시 보복하겠다. 아직 우리에게 많은 핵 무기가 남아 있으니까'로 대변되는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개념은 저마다 핵무기를 가져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단박에 알게 한다. 이는 핵무기가 자국의 안전보장에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기인하며 지구상에는

약 3만발의 핵무기가 존재하는데 이 중 전략 핵무기는 1만 2천발이라고 한다. 서로를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핵이라면 지금 수준의 백분의 일만 있어도 충분한데 자신들이 가진 것으로는 상대방을

완벽히 제압하지 못한다는 판단에 의해 핵무기는 점점 늘어나며 강력해 지는 추세다.

이 책에서 오래전 들어 봤던 '세계인'이라는 단어를 다시 만났다.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 공간에서

지구에 대한 강력한 파트리(향수)를 갖고 진정한 '지구민족' 의식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근본적으로 세계인이라는 큰 틀 안에서 공존공생하는 모두를 아우르는 말 '세계인'. 물론 아직

갈 길은 멀고 소원하다. 국가 주의라는 강력한 벽과 민족주의라는 거친 장벽을 넘어서야 하는

어려움은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은 아마도 '세계인'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주권'의 개념은 '국가 자립성'으로의 전환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대답은 자연스럽게 '세계정부'로 이어진다. '러셀, 아인슈타인 선언'을 예로 들며 군사력을 세계정부

아래에 둔다는 가설을 설명한다. 이들이 말하는 세계정부는 모두가 같은 독재자 아래 놓인다는 의미가

아니고 국민국가는 나름의 자치권을 가지고 그대로 존재하고 언어나 문학을 발전시키는 문화적인

기능은 남긴채 세계 모든 지역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그에 대한 무력 반응을

대부분 무력화 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금의 UN이 어느정도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유엔이 대안은 아니다. 다만 전 세계를 아우르는 통합기구라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로트블랫 박사는 적절한 과학 활용의 관점에서 미래를 보는 창의적 시각을 보여줬다면

이케다 회장은 그의 지식의 근원인 불교 철학을 바탕으로 논리의 관점에서 평화를 바라 보았다.

얼핏 어울릴것 같지 않은 두 관점이 묘하게 '세계평화'라는 명제 앞에서 만나 어우러져 하나의 줄기를

이룬다. 핵 무기에 대한 시대적 흐름을 따라 나누는 대화는 읽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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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의 무늬 - 이해할 수 없는 통증을 껴안고 누워 있으며 생각한 것들
이다울 지음 / 웨일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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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그러나 의학적 병명과 진단명이 없는 아픔은 엄살이라고 혹은 게으름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스스로를 의심한다. '내가 정말 아픈걸까?'. 지어 낸것이 아니라 명백히 실제하는데도

나는 여전히 꾀병이다. 이 책은 이런 억울함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저자는 모두의 아픔이 보다

자세히 말해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한다. 엄살이라는 말이 우리를 위축시키지 않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은 큰 결심이고 어려움이다. 그것이 가족이어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혼자 지낸 시절이 긴 사람에게 이것은 고문이다. 어려움을 겪고 찾아 온 친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게 하다 딱 이틀만에 스스로 호텔 신세를 진 적이 있는 나에게 저자의 엄마와의

동거는 백번 이해가 된다. 이것은 가족을 떠나 불편함이고 어색함이고 이질적 존재감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그녀는 너무 부지런했고 그녀에게 나는 너무 게을렀다.'

맞다. 생각이 다르고 행동양식이 다르고 의지가 다르기에 같을 수 없음에도 궂이 같음을 찾기에

우리의 동거는 항상 힘들다. 그게 누가 됐든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은 '천장의 무늬'이다. 아마도 저자가 아픔을 겪으며 누워 있었던 그 침대에서 바라

보는 천장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나에게 '천장의 무늬'는 도화지가 된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의 순간을 함께 해준, 눈을 뜨면 처음 마주하는 공간, 섬뜩하리만치 강렬한 통증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나에게 유일한 눈빛 대화를 나눌수 있던 친구와도 같은 존재가 바로

천장이었다. 그 속의 무늬들을 가지고 마음껏 유희를 즐기며 무한변신 로봇을 대하듯 이리저리로

움직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도 하고, 옮겨진 방의 천장과 긴장감 가득한 대치를 경험하며 서서히

받아들이기라는 숙제를 풀어 나갔던 공간이 천장이다. 그리고 그 무늬는 매번 달랐다. 이 다름은

새로움이라는 호기심과 다양함이라는 흥미를 제공한다. 호기심과 흥미는 이내 확정되었습니다

또 다른 새로움과 다양함을 가져온다. 그리고 반복된다.

공유할 수 없는, 규정할 수 없는 통증의 시간이 빚어내는 불안과 불화와 조율에 대해 처절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맞선 작가의 노력과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 아픔 그 자체를 글 쓰기로

녹여내는 저자의 내면의 울림이 그대로 전해지는 이 책은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는' 몸부림이자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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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하길 참 잘했다 - 사람과 사랑에 상처받은 마음에게 전하는 위로 산문집
이민혁 지음 / 레몬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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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에게나 단점과 숨기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저자가 자신의 이름이 싫지 않음에도

어느 순간 자란 불편한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기를 어색해 하는 것과 같이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불편한 나무 한 두 그루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포장을

해서 애써 아닌척 해보아도 그 불편함은 어느 구석에서든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결국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합니다. 저자는 이것을 '좀 먹고 곪아 터진다'라고 표현하는데 모두가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 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그들에게 잘 보이고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한 일인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 그 일은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돌아오는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것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을 향해 마음을 두고 간격을

좁히고 서로를 향해 조금씩 걸음을 옮기는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과장할 필요도 조금 못한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같이 걸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욕심'입니다.

우리에겐 '완벽'이라는 덫이 있습니다. 이 덫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려는 의지조차도

무색하리만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마치 처음부터 함께 했었던 것 같은 착각 마저 가져오며 정작

자신을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

할 수도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며 끝없이

여왕벌의 사랑을 갈구하는 꿀벌 마냥 타인의 관심과 눈길을 원하며 그 크기는 점점 더 커져갑니다.

결국 아무리 덜어 내고 버려도 채워지는 그 크기에 대부분이 포기합니다.

저자의 글 중 유독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떠한 선택도 행복이다'라는 부분인데 그런것

같습니다. 삶에서 늘 옳은 것만, 이익이 되는 것만, 좋은 것만 찾아 낼 수는 없습니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하더라도 지나다 보면 후회가 될 수 있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마음 아파했던 결정도 어느

순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로 나올 수 있기에 우리의 선택은 날마다 계속되지만 그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선택 역시 자신의 결정이기에 최선을 다해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좋은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고 더욱 단단해진 마음을 갖는

기회가 될 것이기에 그 선택은 행복한 선택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위로 산문집'입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준다는 것을 참 따뜻한 행동입니다.

저자의 글은 그런 따뜻함이 있습니다. 읽는 내내 '맞아 그렇지'라고 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게

되는 이 책은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마신 것과 같은 편안함과 따뜻함을 주는 그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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