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설교 듣기에 요구되는 두가지를 이야기 한다. 그 첫번째가 '분별'이다. 분별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은 베뢰아 성도들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0).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고 더 나아가 성경에 비추어 보면서 '이것이 기록된 무고한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가?'하며
확인했다는 것인데 이것이 분별이다. 막연히 '그럴거야'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비추어
'정말 그러한가'를 발견하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검증(?)은 설교자를 긴장하게 만들고 더
세밀하고 분명하게 말씀 앞에 엎드리게 만들며 이는 자신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더
가까워지는 은혜를 더하는 것이다. 설교 듣기에 요구되는 두번째 요소는 '은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사람은 그 말씀 속에서 주의 영광을 보게 되고 그 영광을 볼 때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영광이 이르게 되며 그 역사는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사람은
자연히 자신의 추함과 약함과 무능함과 무가치함을 보게 되고, 그 차이를 경험하는 것이 은혜이며
이렇게 설교를 통하여 은혜를 받을 때 사람은 그 말씀을 통하여 거룩해지는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설교 듣는 기술'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설교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의 신앙과 영혼의 죽고 사는 것, 그리고 영적인 건강과 성장이 달려있기에 성도들에게
'분별과 은혜'를 통한 설교 듣기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요8:47)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해도 믿음이 결부되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믿음으로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를 의미한다. 실제로 '듣는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순종한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들음이라는 행위 안에 순종이 포함된 것으로 이는 말씀에
의지하여 변화함을 말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에서 들음은 '믿음으로 들음'이고,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들음'이며, '순종을 만들어 내는 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