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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씁니다 - 1%의 외로움, 나만 아는 이야기
김석현 지음 / 북스톤 / 2020년 6월
평점 :
'1%의 외로움은 나 자신을 위한 감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상황이 외로운것인지 상태가 외로운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나뉠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사람은 외롭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외로움에 무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외로움에 처하면 속절 없이 무너져 내린다. 사실 외로움에 무딘 것이 아니라 그런
외로움을 경험해 보니 못한 것이다. '지독한 외로움'은 광풍과도 같다.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겨우
움켜 잡고 있는 의식을 여지 없이 날려버릴 만큼 거대한 광풍이다. 저자는 이러한 광풍을 파리에서
만난다. 세상에서 가장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이 몰려 있는 파리, 그곳에서 저자는 철저히 혼자가 되고
'나만 아는 외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 글은 그로 부터 시작된다. 외로움은 고정적이지 않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감정이기에 '관찰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를 표한다.
그렇다. 외로움은 지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관찰이 관찰로만 끝나면 소모적이다 못해 외롭다. 관찰
자체가 외로운 행위이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를 움직이는 대부분의 동기는 외로움 탈피, 혹은
여기에서 파생되는 안정의 욕구나 과시의 욕구, 소유의 욕구이기에 타인을 관찰하다 외로워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는다고 해도 외로움은 가시지 않고 남아 있는 외로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외로움을 말끔히 날려 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해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덜 외로워질
장치 정도는 찾아야 한다. 저자는 이런 장치를 '글쓰기'에서 찾는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카페에는 외로운 사람들과 덜
외로워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이 존재하며, 소음은 혼자 일하는 외로움을 상쇄해준다.
(사실 나는 아직 이런 소음이 부담스럽다) 심리학 용어로 'Mere Belonging(단순 소속감)'이라는
작용인데 대화나 신체적 접촉을 비롯한 그 어떠한 상호작용 없이 전혀 모르는 타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느끼는 약한 강도의 소속감을 말한다. 강력한 제한과 억제력은 없지만 나름의 유대감도
형성하고 그들 나름의 암묵적 룰이 생기기도 한다.
유럽 대부분의 집에는 발코니가 있다. 그곳은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시는
지극히 개인적 공간이다. 심지어 공간이 넓지 않으면 작은 의자를 하나 놓고서라도 그렇게 한다. 그곳은
자신 만의 안식처다. 누구로부터 침해 받고 싶지 않고 혼자 있고 싶을 때 찾는 그런 공간을 집 곳곳에
설치해 두고 자신만의 안식처로 삼는다. 발코니는 커녕 베란다까지 확장 공사를 해서 없애는 우리의
주거 공간과는 사뭇 다른 유럽의 모습은 외로움이라는 또다른 문제 앞에 우리를 직면하게 만든다.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이 책에서 다시 만난다. 남녀 주인공이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재회한다는 설정 덕분에 유명세를 타기도 한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에 힘들어 한다. 외로운 사람들은 외롭기 때문에 작은 인사 하나에도
반갑게 반응한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낳고 그 외로움은 또 다른 외로움을 불러 온다. 그렇게 우리는
지독한 늪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윌슨'(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혼자 남은
톰 행크스가 배구공에게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대화를 나눈다)이 존재한다. 그것이 넷플릭스가
될수도, 게임이 될수도, 유튜브가 될수도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 '의인화(anthtopomorphize)'라고
부르는데 외로움의 절정을 드러낸다.
이 책은 '요리소개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나온다. 밀가루 반죽이 각종 고기, 채소,
치즈로 속을 만들고 물에 삶아 소스를 곁들여 먹는 우리의 만두와 비슷한 라비올리, 일체의 첨가물을
섞지 않은 자연 발효 와인인 내추럴 와인, 아침 일찍 먹는 갓 구운 바게트, 그 맛이 일품이어서 간식으로도
혹은 한끼 식사로 먹기 좋은 에그타르트, 고급인 아라비카 원두가 아닌 질이 낮고 쓴맛 95%인 로부스타
품종의 원두, 에그타르트의 성지인 '파스데이스 데 벨렘(Pasteis de Belem)', 제노바 기차역 근처의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맛본 참치 링귀네 파스타가 포함된 런치세트등은 그 이름만으로도 군침이 돌게 만든다.
외로움에 대한 저자의 글은 외롭지 않게 만든다. 저자가 자신의 글 속에서 이야기 하는 그곳들을 다 가보고
맛보기에도 벅차니 말이다. 외로움에 관해 어떠한 정의도 내리지 못하겠다. 그저 밀려오면 밀려오는 대로
다가오면 다가오는 대로 맞이하고 만나야 할것 같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 나오는 대사 하나를 적어 본다.
'어디에 가도 슬픈 사람은 있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거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