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이야기
러셀 셔먼 지음, 김용주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어린시절 피아노는 부의 상징이었다. 오래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시골 마을 제일 큰 집에

사는 서울에서 이사온 피부는 하얗고 긴 머리의 소녀가 다소곳하게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피아노는 당시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리집은 잘 살지는 못했지만

억척스러우신 어머니의 강요에 가까운 권유로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는 재미있는 바이엘과 소곡집을

지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체르니 40까지 친구들의 '남자가 무슨 피아노냐'라는 놀림을 받으며 배웠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당시 피아노치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덕에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은근히 유용하게

잘 써먹었다. 그당시 나에게 피아노는 '애증'이었다.

이 책은 작가의 일기 형태를 띈다. 그래서 개인적인 취향이나 생각들이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다. 특히나 손가락 하나하나를 열거하면서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굳이 이렇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독특하고 신선하다. 그럼에도 저자가 말하는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격하게 공감을

하게 만든다. '음악이 진지하다고 해서, 구조가 복잡하다고 해서, 의미가 심오하거나 난해하고 모호하다고

해서 반드시 지적이거나 껄끄럽거나 재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중요한 내용물이 다 빠진

빈껍데기를 연주할 수도 없다. 쇼팽의 음악이건, 이름없음 작곡가의 음악이건 모든 음악은 똑같은

표현력을, 똑같은 세련된 소리를 요구한다. 소리가 달콤하지 않다고 해서 소리의 균형에 대한 미적인

원칙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이 문장으로 저자는 자신의 할 이야기를 다 한것 같다. 음악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같은 판단을 요구하진 않는다. 각각의 상황이나 환경이 그것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접근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페달'이다. 저자는 페달을 '삶과 죽음의 모든 문제를 혼자 결정하는

독재자'라고 표현한다. 페달의 움직임에 의해 각각의 음의 운명과 생사가 결정되기에 페달은 철저한

독재자이다. 짧은 것과 긴 것, 안정된 것과 변덕스러운 것, 흰 것과 검은 것, 피라미와 청새치, 나뭇잎과

나뭇가지, 원자와 대기권, 점과 선, 선과 원과 같이 서로 대조적인 것들의 진로를 나란하게 만들 수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페달의 주의 깊은 아량과 분별력에 의해 실행되고, 확대되고, 삭제된다고 표현한다.

페달의 역할을 피라미와 청새치를 뛰어 넘어 원자와 대기권에까지 이르게 하는 저자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특별히 페달에게 부여된 '조율'이라는 단어는 정말 적절한 선택인것 같다.

저자는 음악을 숲에 비유한다. 음표 하나하나, 쉼표 하나하나가 모여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음악이다. 숲이 결코 나무와 풀 없이 존재 할 수 없듯이 음악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질 때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악보 위의 모든 기호 하나하나가 작곡가의 열정과 혼이 담긴 삶의

조각들이기에 결코 소홀하게 혹은 쉽게 대해서는 안될것이다.

비록 이 책은 저자의 개성이 너무 드러나 '뭐 이래!'라는 탄식이 나올 수도 있지만 예술가의 고뇌와 열정이

고스란히 글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한번 정도는 읽어 볼만한 책임이 틀림없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허세라고 느껴지지만 그냥 웃고 넘길 수는 없던 글귀 하나를 적어 본다.

'피아노를 아는 것이 우주를 아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