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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ㅣ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평점 :
유토피아. 모두가 꿈꾸지만 어쩌면 그냥 꿈일지도 모르는 현실. 이 책의 서문에 이미 토마스
무어의 진심이 담겨 있다. 먼저 화자로 등장하는 ' 히틀로다이오'라는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히틀로다이오스는 그리스어로 '말도 안되는 것, 시답잖은 것'을 뜻하는 '히틀로스'와 '나누어
주다'를 뜻하는 '다이오'를 합성한 말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니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며 '라파엘'은 하나님이 치료해 준 자를 말한다. 라파엘 히틀로다이오는 이상적인
나라를 다녀와서 토마스 무어에게 그 나라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화자로 등장하는데 그의
이야기는 도무지 믿기 힘든 말도 안되는 것들이어서 이런 별명으로 불린다는 발상이 기발하고
신선하다. 그럼 우린 말도 안되는 도무지 믿기 힘든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가. 물론 이 책은
가상을 말한다. 이에 대해 토마스 무어는 '내가 아무리 애써도 해낼수 없었을 그런 부담에서
자유로웠기에 그저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에라스무스가 토마스 무어에 대해 '눈 보다도 순결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을 했을 정도로
그는 순수한 인물이었고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하고 법학과 성서, 교부철학, 고전문학등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다. 이는 그가 유토피아를 소개하며 '노예가 되다'를 뜻하는 '세루이아스
(seruias)'와 '봉사하다'를 뜻하는 '인세루이아스(inseruias)'를 가지고 언어의 유희를 즐기듯 글을 쓴
점과 절도범에 대한 처벌을 이야기할 때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를 뜻하는 라틴어
'아우트 논 리베아트 다레(aut non libeat dare)'와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으나 수중에 돈이
없었다'를 뜻하는 '아우트 네 리케아트 쿠이템(aut ne liceat quidem)'을 가지고 말장난을 하는 것
그리고 귀족 계층에 대한 플라톤의 인식(나라와 공공의 이익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살아가는 돈 많은 자들)을 가져와 영국의 현실 상황을 바라보며 내리는 자신의 고찰의 틀로 삼고
플라톤의 저작들이 이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재화의 공동 소유에 대한
반론을 제기할 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정치론'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비판할 때 제시한
문장을 사용했고 그의 이러한 반론들이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중세 스콜라 사상 속으로 편입되어
르네상스 시대의 지배적인 견해가 되기도 했다.
그가 주장한 유토피아라는 나라의 체제는 자유로운 관용보다는 전반적으로 철저한 질서와 통제의
느낌이 물씬 풍기기에, 전체주의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당시 사회가 중세 봉건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던 점으로 보아 그의 왜 이런 주장을 펼쳤는지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수도원 생활을 이상적으로 여겼던 그의 카톨릭 사상이 유토피아의 제도와 관습에 관한 설명과 묘사
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그가 그린 유토피아는 수도원을 확대해 놓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흡사하다. 노동을 중시하고 그 토대 위에서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유토피아 사람들의 삶은
당시 유럽과 영국의 귀족들이 아무 노동도 하지 않으면서 사치스럽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생각에는 노동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정직한 일이라는 관점이
깔려 있고, 이는 노동을 기본으로 해서 경건을 추구한 수도사로서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로 토마스 무어는 수도원 옆에서 금욕과 경건과 노동을 하며 수도사처럼 살았다.
저자가 16세기에 언급한 기본소득, 공공주택, 6시간 노동 정책, 경제적 평등과 같은 급진적 사상은
후대에 마르크스의 '자본론'등에 연결되었으며 지금도 활발히 논의될 정도로 파격적이고 혁신적이었다.
철학적 담론이 아닌 실제 모델로 풀어낸 이 책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이상 국가의 모형을
보여준 실험적인 책으로 1516년에 초판 되었다는 사실은 또 한번 나를 놀라게 만들었고 토마스
무어의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