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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손지상 옮김 / 네오픽션 / 2020년 11월
평점 :
강렬하게 밀려드는 후회나 짜증도 뛰고 나면 땀과 함께 흘려보낼 수 있어 왠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고 박차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것은 미하루에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와 같은 상태로
인생을 평온하게 보내기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런 그에게 아무리 달려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하나 생겼다. 한달이 넘도록 그의 머리를 흔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이다. 표현이 부족 할 뿐 대부분 이런 감정은 드러나게 되고 눈치채게 된다. 일방적인
사랑, 어쩌면 관심이라고 표현 할 만한 모습을 보이던 미하루의 짝사랑이 상대방의 결혼 발표로
어이없이 끝나 버린다. 아쉽게도. 그리고 받아든 다라수(옆서 나무)잎에는 '서향'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미쿠지라는 별명이 붙은 고양이가 전해준 것이다. 그리고 이 테마는 도키코 이모가 새로 산
집의 창문으로 보이는 서향 풍경을 보며 '나는 이 하늘을 산거야'라는 말로 정리가 된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가슴 속 아픔이 언젠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만큼 훌륭한 무언가로 변할 그 날까지
기다리갰다는 미하루의 생각으로 끝이 난다.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사는 것 같다. 무언가 기다리며
고대하지만 정작 그 일은 일어나지 않거나 멀찍이 나를 피해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일들.
이끼를 좋아하고 관찰하지만 이끼를 모르는 친구들에게 후카비(곰팡이를 뜻하는 카비와 이름인
후카미의 앞자리를 딴 별명)라고 불리는 후카미 카즈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을것 같아 쉽게 말도 꺼내지 못해 '말 한마디 안하는 음침한 놈'이 되어 버린 이 꼬마
친구가 신사의 미쿠지에게 받은 낙엽은 '한가운데'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오카자키 일당들에 놀림도
당하고 따돌림도 당하지만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는 끈기를 보여주는 소신파 꼬마는
자신이 좋아 하는 것을 알아 주는 야마네 선생님 덕분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야마자키의 정면을 똑바로 바라 보며 던지는 한마디 '뭐'는 속이 다 시원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는 한 참 위에 있어 보였던 와카자키가 별로 커 보이지 않고 시선의 높이가 비슷해 보이는
것은 아마도 기분 탓일 것이다. 그렇게 후카미는 당당해진다. '한 가운데'를 똑바로 볼 수 있고 제대로
의사를 표현 할 수 있게 된 후카미는 더 이상 '말 한마디 안하는 음침한 놈'이 아니다.
이 책에는 이렇게 신사의 고양이인 미쿠지에게 글씨가 쓰인 낙엽을 받은 일곱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각각은 나름 의미하는 바가 있다. 비록 고양이를 매개로 하였지만 누군가 삶에 그런 조언이나 도움을
준다면 분명 우리 삶은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