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김영하 작가님을 ‘보다’라는 산문집으로 처음 만나게 됐다. 산문집은 세 권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이야기에 두 번째 책이 나오길 기다렸다 당연하다는 듯이 집어 들었다. 말한다고 하기에 도대체 무얼 말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글 쓰는 게 업인 사람이 할 수 있는 강의란 당연히 자신이 잘 하는 일에 대한 강의이겠지. 의도치 않게 이 책은 또 글쓰기에 대한 책이었다. 왜 글을 써야하는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작가 김영하는 왜 글을 쓰고 소설을 쓰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에 대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사실 이 책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그것도 그런 게 요즘 계속 읽고 있는 책이 작문이나 글쓰기에 대한 책이고 가볍게 읽는다는 생각으로 집어든 이 책마저 글쓰기에 대한 내용이란 사실 때문이다. 사실 중고등학교 때 달달 암기하여 생각보다 남의 생각이나 결과를 외운 것에 대한 것으로만 우열을 적용하는 게 우리 나라 교육의 현실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의 교육은 지식을 습득하고 그에 대해 이해한 것을 에세이라는 글의 형식으로 제출하는 창의성과 독창성을 요구하는 교육을 펼친다. 왜 우리는 틀린 답 4개와 맞는 답 1개 혹은 그 반대되는 답안지에 그냥 꽃표만 하는 수동적인 공부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백지에 한 글자 한 글자 내가 소화한 지식을 쏟아내는 수단으로 글을 써야 할까? 김영하 작가님은 이에 이렇게 대답한다.

글쓰기는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동안 우리 자신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기 전까지 몰랐던 것들, 외면했던 것들을 직면하게 됩니다.(057)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며,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마지막 권리입니다.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폭력에 맞설 내적인 힘을 기르게 되고 자신의 내면도 직시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뭔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는 직장이나 학교, 혹은 가정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나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겪었거나 현재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한계에 부딪쳤을 때 글쓰기라는 최후의 수단에 의존한 것은 여러분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닙니다.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060)

이 책을 통해 김영하는 독자들이 수동적으로 남의 글을 읽고 있음에 탈피해서 스스로도 창조를 하라고 독려한다. 어쩌면 자신처럼 작가가 되라는 조언은 쉽게 나올 수 없는 영역이다. 이른바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기에 ‘너도 내 일을 해봐.’라는 생각보다는 ‘이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인 줄 알아?’라며 자신의 업계에 대해 배타적인 위치에 충분히 설 수 있다. 그러나 김영하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글을 쓰는 것이 내 스스로를 위해 필요하고 더 나아가 가정의 안정과 타인이 글을 읽으면서 느낄 영향력에 대해 알려준다.
특히 글을 통해 내 인생과 희노애락을 표현함으로써 내면에 잠자고 있던 예술가의 모습을 꺼내라고 한다. 특히 김영하 작가가 학생들에게 제안한 방법이 참신하다. 그는 문예창작과 학생에게 반대욕망을 이용해서 차라리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단편을 쓸 수 없고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장편소설을 창작하기 못하게 하면서 갈급함을 느끼게 하는 방법을 쓰면 어떨까 생각했다. 항상 무언가 쓰라고 강요만 받다가 쓰지 말라는 명령에 따른 반사적 욕망을 이용한 지혜였으리라. 또한 글을 쓸 때 부모님이 보지 말았으면 하는 글을 쓰라고, 그것이 진정 자신의 진정한 내면과 조우하는 방법이라고 알려주었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블로그 서로 이웃이다. 가끔 내가 부모님이 보시기에 극단적인 내용의 글을 올리면 3분 안에 검열이 들어간다. 그래서 엄청나게 순화된 글 모음이 바로 이 블로그이다. 그런데 작가님의 글과 전에 랄랄라님과의 대화를 떠올려보면 이렇게 계속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글이 무뎌졌거나 부모님이 관대해졌거나 둘 중에 하나의 가능성이 있겠다. 이 부분을 읽고 정말 심각하게 내 글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자, 이제 우리가 마음속의 악마를 잠재우고 자기 예술을 시작하려고 할 때, 이제는 밖에서 적들이 나타납니다. 배우자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고, 회사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현실적인 이유들을 들어 여러분이 하려는 작업을 막아섭니다. 여러분이 뭔가를 하겠다고 할 때, 그들은 묻습니다. 이건 정말 마법의 질문입니다. “그건 해서 뭐하려고 그래?”힘이 쭉 빠집니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은, 뭘 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지요. 그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유용한 것도 생산하지 않고 우리 앞날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한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거나 좋은 직장을 얻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나 방치해두었던 우리 마음속의 ‘어린 예술가’를 구할 수는 있습니다. 술과 약물의 도움 없이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뭔가를 시작하려는 우리는 “그건 해서 뭐하려고 하느냐”는 실용주의자의 질문에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하는 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라고 말하면 됩니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니까요. (077)

좀 더 나아가 작가는 더 자세히 자신이 직접 글쓰기 지도를 한 경험과 내용을 알려준다. 이 내용은 내 습작에도 영향을 주었다.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글에 자유를 주는 것. 아마도 김영하 작가님의 젊었을 때 단편의 끔찍한 내용들은 제한 없는 그 상상력 안에서 태어난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저자는 계속 나는 왜 이런 소설을 쓰는지에 대해 계속 물어본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는 윤리적 몸부림이다. 만약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잊어버리고 오로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는 삶에 들어가면 이번 문학계의 비극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다. 갑자기 오늘 미덕 모임에서 리더 님이 얘기했던 문구가 기억이 난다. ‘생각대로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평범한 한 어린이를 작가로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한동안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가 읽은 작가들, 예컨대 췰 베른이나 프란츠 카프카, 코넌 도일 같은 선배 작가들에게서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그쪽이 정답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선 점점 더 유년의 기억 쪽으로 탐색 등을 돌리게 됩니다. 내 발밑에 있을지도 모를 길고 음험한 땅굴, 멀리서 들려오는 지뢰의 폭발음, 돼지의 멱을 따는 북한군인들,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주군과 운명을 함께한 스무 살짜리 운전병의 삶 같은 것들입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행위는 이해할 수 없었고 존재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해괴한 일들, 원시적이거나 혹은 반대로 아주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인간들이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은 물음표 속에 갇혀버립니다. 어쩌면 그 물음표를 문장들로 바꾸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저는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211-212)

어쩌면 이 책은 작가가 미래의 작가를 만들려는 일종의 영업 글이다. 다단계 회사원이 물건을 파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물건을 사는 구입자에게 다단계 회사에 들어오라는 유혹과도 같다. 하지만 엄연히 다단계 회사와 소설이나 책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다단계 회사는 돈을 목적으로 모이지만 책은 내 스스로의 영혼과 마음으로 모인다. 내가 왜 이런지 내 감정이 왜 그런지를 가시적으로 알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글쓰기이고 더 나아가 허구이지만 어느 정도 내면이 들어있는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내 스스로를 알고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리고 느꼈다, 글을 쓴다는 것,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 도서관에 있는 거대한 책들, 심지어 정말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시답지 않은 책들까지도 위대해 보였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나올수록 내 맨 얼굴을 보는 것처럼 당혹스럽고 힘들 때도 있다. 이것을 견디고 책 한 권이란 기나긴 이야기 하나가 만들어진다니. 책 한 권 만든 사람들에 대해 정말 부러움을 넘어선 경외심이 느껴진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살인 같은 나쁜 행동이 아니라 어쩌면 무정하게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시간이 지나기 전에 최근의 기분을 남기기 위하여 이렇게 블로그에 짧은 잡담을 남기기도, 사진을 남기며 짧은 설명을 남기기도 한다. 7년 동안 문법도 엉망이고 어법도 엉망일 수 있지만 그 당시의 기억을 부지런히 남겨 놓은 게 내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정말 창피한 과거의 나라도 사랑해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이렇게 내가 글을 쓰고 남겨 놓는 이유다.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읽다’가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https://youtu.be/55O1ODpX3fQ

http://tvcast.naver.com/v/53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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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토끼 2016-01-23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책에대해 많은 이야기 나누어 봤으면 좋겠네요

책한엄마 2016-01-23 21:49   좋아요 1 | URL
저야 말로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6-01-24 17: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이 습관을 유지하고 있어요. 글쓰기는 혼자서 즐길 수 놀이입니다. ^^

책한엄마 2016-01-24 17:50   좋아요 0 | URL
네-저도 꽤 오래된 취미랍니다.^^이렇게 같은 취미를 갖은 분들 글을 읽는 재미도 더해져 요즘 삶이 즐거워요.감사합니다.
 
스프링벅 ㅣ 창비청소년문학 12
배유안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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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작은 연극반인 동준이의 떠들썩한 등장으로 시작한다.
준비하는 연극 주인공이었던 창제의 가출로 엉겁결에 주인공역을 맡은 동준.
그 사이 형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예슬이가 동준이 옆에서 힘이 되어 준다.
동준이 형은 대학 시험 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좋은 대학을 보내야겠다는 욕심이 앞선 엄마는 공부 잘 하는 장근이 형에게 대리 시험을 부탁했다.
자신이 부정행위로 떳떳하지 않게 대학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동준이 형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에 엄마는 병에 걸린다.
동준이는 이 모든 사실을 알지만 아빠에게 알리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제껏 읽은 청소년 소설은 이 책을 포함해 세 권이다.
손도끼, 호밀밭의 파수꾼, 그리고 이 스프링 벅.
이 세 권 모두 주인공은 상처를 받고 있고 어른들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어른들의 비밀을 그냥 지켜주기로 결심하는 결말까지 세 권은 무척이나 닮아있다.
이상하게도 어른들이 겪는 시련보다 이 청소년 시기에 겪는 이런 어려움들이 왜 나에겐 더 힘들게 느껴지는지 생각해 봤다.
아마도 내 십 대 시절이 그만큼 힘들고 혹독했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어른에게 의지하던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독립하기 위한 몸부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이 책에서는 어른이 되어 가는 아이들을 좌지우지하려는 어른들에게 창제는 적극적 독립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아이는 한 달 동안 가출을 하고 부모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아이까지 버리고 간 예슬이 엄마.
예슬이는 엄마를 미워했지만 정작 만났을 때 반가움이 교차하면서 자신의 이 모순된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는 능동적 사고를 한다.
동준이 형 사건을 통해 성적 만능주의가 낳은 폐해에 대해서도 생각할 여지를 준다.
또 비주류 과목 선생님을 비하했던 현우라는 아이와 지학 선생님의 처벌에 대한 이야기도 현재 우리 교육이 무얼 놓치고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할 거리를 준다. 교권을 위해 체벌이 있어야 하는지, 처벌이 시작된 이상 폭력성을 제어할 수 없기에 애초부터 체벌은 안 되는지에 대한 논쟁의 여지를 남기는 부분이었다.
동준이는 엄마의 비밀을 아빠에게 얘기하지 않기로 결정을 하며 책이 끝난다.
동준이네 가족이 다시 평화를 찾기 위해서 과연 옳은 판단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이 한 권의 책 안에 여러 청소년들이 가진 힘든 일들이 연극 연습 현장을 배경으로 조화롭게 그려졌다.
사실 동준이 형의 죽음이 정말 안타까웠다.
차라리 그냥 부모에게는 죽음을 암시하지만 결국 창제처럼 긴 시간 가출한 것에 그쳤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감히 원작을 각색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문학의 의미를 순간 망각한 실수였다.
문학은 있을 수 있는 일을 상상하는 여지를 주는 매개체이다.
그 매개체까지 고치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문학을 받아들이는 준비가 덜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프링벅`에 나온 청소년 등장인물들 모두 가족들과 문제 하나씩을 안고 산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도 작고 크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문제를 안고 살아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발걸음이 어른들에 의해 재단된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진정한 어른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스프링벅이라는 양 이야기 아니?˝
작년 학기말 국어시간, 손장하 선생님이 책도 펴지 않고 칠판에 `풀`이라고 크게 쓰더니 뜬금없이 양 이야기를 꺼냈다.
˝이 양들은 평소에는 작은 무리를 지어 평화롭게 풀을 뜯다가 점점 큰 무리를 이루게 되면 아주 이상한 습성이 나온다고 해. 무리가 커지면 맨 마지막에 따라가는 양들은 뜯어 먹을 품이 거의 없게 되지. 그러면 어떻게 하겠어? 좀 더 앞으로 나아가서, 다른 양들이 풀을 다 뜯기 전에 자기도 풀을 먹으려고 하겠지. 그 와중에 또 제일 뒤에 처진 양들은 역시 먹을 풀이 없게 되니, 앞의 양들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서려 할 테고.
이렇게 뒤의 양들은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앞의 양들은 또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 앞으로 나아가게 돼. 그렇게 되면 맨 앞에 섰던 양들을 포함해서 모든 양들이 서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마구 뛰는 거야.
결국 풀을 뜯어 먹으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오로지 다른 양들보다 앞서겠다는 생각으로 뛰게 되지. 그러다 보니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거야. 계속 뛰어, 계속. 여기가 어딘지도 몰라. 풀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아. 그냥 뛰어야 해.˝
손장하 선생님은 고개를 아래로 박고 교실 앞에서 뛰기 시작했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갑자기 웬 일인극? 선생님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에 몇몇이 웃었다.
˝뛰어, 뛰어. 정신없이 뛰어.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해안 절벽에 다다르면.... 앗, 절벽! 하지만 못 서지. 수천 마리의 양 떼는 굉장한 속도로 달려왔기 때문에 앞에 바다가 나타났다고 해서 곧바로 멈출 수가 없는 거야. 가속도, 알지? 설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모두 바다에 뛰어들게 되는 거지. 그렇게 해서 한 번에 수천 마리의 양이 익사하는 사태도 발생한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 아니니?˝
애들이 멍했다.
˝와, 그럴 수도 있어요?˝
˝있다니까.˝
˝그래도 뒤의 양들은 그걸 보고 미리 서지 않을까요?˝
내가 물었다.
˝똑똑한 질문이야. 그런데 서면? 그 뒤의 양들이 무서운 속도로 덮쳐와 떠밀려서 바다로 떨어지겠지.˝
손장하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아이들을 죽 훑어보았다. 모두들 얼이 빠진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 어처구니없는 짓은 우리가 하고 있는 것 같다. 왜 경쟁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경쟁하는 데 습관이 들어서 피 터지게 달리기만 하고 있어. 결과가 보이지 않니?˝
˝대학에 가려면 할 수 없잖아요.˝
˝너희는 대학생이 되기 위해 사니? 지금 이 순간순간이 너희들의 삶이야.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풀을 뜯어 먹으라고. 풀, 맛있는 풀!˝
선생님이 칠판에 쓴 `풀`부분을 연거푸 두드렸다. 쿵, 쿵, 쿵, 풀, 풀, 풀.
˝향기도 맡고 맛도 음미하면서 천천히 가라고. 삶의 목적은 풀밭 끝 벼랑이 아니고 풀이야, 풀. 지금 너희들 옆에 자가는 싱싱한 풀이라고. 가다가 계획과 다른 길로 가게 되도라도 뭐가 걱정이니? 거기도 풀이 있는데. 못 먹어본 풀이 있어서 더 좋은 수도 있지. 빙둘러 간다고 결코 낭비가 아니야. 생각지 못한 절경을 즐기면서 갈 수도.......˝
선생님은 교탁에 있는 캔을 따서 들이켜고 눈까지 감고 천천히 삼켰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목젖이 쿨럭쿨럭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으음, 맛있군. 그러니까 문제집만 끼고 살지 말고, 아, 공부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진짜 공부를 하라고. 허구한 날 공부하고도 왜 고3이 되면 수학을 포기한다느니, 영어를 포기한다느니, 그딴 소리를 하는지 몰라. 불후의 명작이며 역사, 사회, 종교, 심리학, 미술, 음악.....이 흥미진진한 인류의 유산들을 만나는 데에 왜 시간을 못내냐?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에는 책을 읽어 와서 토론도 하고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다. 너희들 성적 좋아하지? 그러면 그 토론으로 성적도 매기지 뭐, 내 취향은 아니지만.˝(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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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니 2016-01-22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또 읽고 싶다^^

책한엄마 2016-01-22 22:47   좋아요 1 | URL
좋았던 책이죠.^^
 
초정리 편지 ㅣ 창비아동문고 229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한글이 만들어지기까지.그것이 소중해지기까지.아이들이 크기까지.성장하고 성숙해지는 이야기.다만 인물들이 평면적인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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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 포스트잇 플래그 683-9KN 9칼라 (12mm*43mm)
대한민국
평점 :
절판


책 읽을 때 좋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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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21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책한엄마 2016-01-21 13:59   좋아요 1 | URL
없으면 불안해요.^^

서니데이 2016-01-21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꿀꿀이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책한엄마 2016-01-22 09:38   좋아요 1 | URL
어제 알라딘 이벤트로 북콜서트에 다녀왔어요.^^그래서 서니대이님 서재에 멋 놀러 갔었네요.

cyrus 2016-01-21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이에 글을 쓸 때 좋은 친구는 모나미입니다.

책한엄마 2016-01-22 09:39   좋아요 0 | URL
ㅋㅋ맞아요.프랑스어로 친구죠?정말 길에서 핸드폰 들고 웃고 있는 바보 보시면 저에요.
 
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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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문학당 역사책 읽기

이 책은 영조 시대 천주학 유입과 함께 많은 기생과 양반들이 핍박을 받은 일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동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천주학에 영향을 받은 양반들 의식이 변화하는 모습,
그 당시 책을 만들기까지 종이 만들기와 필사 작업,
그 당시 유행했던 책 종류와 내용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줄거리

장이 아버지는 필사쟁이다.
어느 날 아버지는 천주학 책을 필사했다는 죄로 매를 맞고 몸져 누워 3년 후 세상을 떠난다.
고아가 된 장이는 필사를 의뢰했던 최 서쾌 책방에서 책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
홍교리 집에 책을 배달하러 가는 길에 허궁제비에게 상아찌를 빼앗긴다.
5전을 구해오라는 허궁제비 말에 장이는 걱정이 가득하다.
지체 높은 양반인 홍교리는 말도 안 되는 장이의 변명을 믿어주고 같이 책을 벗하며 말동무를 해 준다.
장이와 기생집 하녀 낙심이는 상아찌를 갚기 위해 돈을 빌리는 일을 계기로 친해진다.
장이는 상아찌를 주위 어른들 도움으로 찾게 된다.
그리고 홍교리가 천주교인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는 데 도움을 준다.
후에 장이는 아버지의 꿈인 책방을 만드는 꿈을 최서쾌와 홍교리 도움으로 한걸음 내딛게 된다.                               

 

전기수의 얘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사람에 대한 평등과 책이 주는 즐거움이다.

첫째, 계급 사회 안에서 조금씩 피어나는 평등한 생각에 대한 시작이다.
장이와 홍교리는 나이에 있어서 나 반상이 다르다. 그러나 그들을 벗이 된다.

부모도 없는 고아 주제에 공자 맹자 읽어서 정승 파서라도 할 모양이지.(51)

장이는 필사쟁이인 아빠 곁에서 많은 책을 접했다. 그러면서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주위 시선은 이토록 매서울 뿐이다. 그런 장이에게 홍교리는 자상하게 읽은 책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직접 글을 써보게도 한다.

아랫것들이 하는 말은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혹시 물건이라도 없어지면 도둑으로 몰아 매질부터 하는 대부분의 양반들과 홍 교리는 다른 사람이었다.(124)

장이 거짓말을 믿어주고 또 그를 인정해 준다.

천주학 책을 옮겨 적으며 아비는 손이 떨리고 마음에 비바람이 일었다. 우리 같은 것들은 날 때부터 천한 죽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더구나. 조선에서는 천지개벽할 소리지만 서양에서는 모두 그렇게 믿는다더라. 천주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90)

천주학은 이렇게 홍교리를 변화시켰다. 그렇기에 장이는 홍교리를 통해 자신만의 꿈을 키운다.

둘째, 이 책은 책 읽기가 주는 유익들을 깨닫게 한다.
장이는 필사하는 아버지 옆에서 어떤 이야기를 쓰는지 자주 물어본다.

우리에겐 밥이 될 이야기, 누군가에겐 동무가 될 이야기, 그리고 또 나중에 우리 부자에게 손바닥만 한 책방을 열어 줄 이야기를 썼지.(75-76)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진 사람을 아는 말도 나온다.

어서 다녀오너라.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야기가 끊기면 밥이라도 끊긴 양 허기져.(98)

책이 주는 유용함에 대해서 홍 교리 입을 통해 알려준다.

책이 없어서 못 읽지, 가려 읽지는 않는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모두 공부가 되는 것이 책이지. 당장 필요치 않은 지식 같아도 뜻밖에 유용하게 쓰일 때도 많고.(153)

셋째,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따뜻한 마음도 이야기를 통해 알려준다.
장이는 고아로서 아무도 자신 편이 없음에 슬퍼했다. 허궁제비가 뺏은 허궁제비 사건을 통해 따뜻한 어른들 사랑을 깨닫는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걸 알아주는 사람, 그래서 자신을 두둔해 주는 사람 앞에서 장이는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112)

벗인 낙심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무심코 '심청전'을 들려준다. 이에 도망가는 낙심. 최 서쾌가 아비에게 버림받은 낙심이에게 아버지 사랑을 얘기하는 책을 읽어준 장이를 나무란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그렇고, 장사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해.(139)

이 부분을 통해 사람에 대한 배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역사 동화를 읽으며

언젠가 교수님 대답에 답하다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니, 머릿속에 아는 단어 나열하지 말고 제대로 얘기해."
사실 어려운 얘기를 하는 것은 쉽다.(참 모순적 말이지만 그렇다.)
오히려 그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바꾼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어른 소설보다 좀 더 어려운 일이 동화 쓰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어른인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를 동화로 쓴다니 이건 글쓰기 중에도 최고 난이도다.
많은 것을 넣으려고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어린이의 입장에서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하지만 그 안에 역사를 넣어 그 당시 시대상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 책은 그 많은 요건을 충족한 책이다.

전문 이야기꾼과 전문 필사쟁이는 성장하는 서민계급이 만들어 낸 문화의 꽃이자 그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지식 정보가 오가는 교차점이어서 그 시대를 내부로부터 조망할 수 있는 유력한 지점인 것이다.(190) 심사평

역사뿐 아니라 책을 읽는 즐거움을 깨닫게 한다.
사람에 대한 평등 정신과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알 수 있는 많은 내용을 무리 없이 섞은 뛰어난 수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글자로 확인하며 행복했다.
어린 시절 느꼈던 외로움을 위로해 주는 듯한 글귀가 인상 깊었다.
더 나아가 필사쟁이인 장이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필사로 더 깊이 책 읽기 재미를 느끼고 싶다는 욕심까지 갖게 했다.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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