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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패스
무라카미 류 지음, 이윤정 옮김 / 동쪽나라(=한민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축구 매니아라면 한 번 쯤 무라카미 류의 <악마의 패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스포츠 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데다가 축구를 소재로 쓴 것이었기 때문에 매니아들의 시선을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거기다 무라카미 류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가 썼다는 것 때문에 이 소설은 작가에 의해서 작품성이 확인된 듯한 인상을 받게된다. (사실 이러한 첫인상은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 작가의 고유 스타일이라는 건 좀체 변하지가 않아서 그가 다른 소재를 찾아 썼다고 해도 그 틀은 쉽사리 바뀌지 않으니 말이다.)

거기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 창조한 한 팀의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존 인물이고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선수들이다. (이 책은 세리에 A 00-01 시즌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물론 그 책에서 나오는 주축 선수들은 아직도 그라운드를 휘젖는 선수들이다.) 지단이 상대편 수비수를 농락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얼마나 유쾌했던가. (책의 묘미 중 하나라면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것이 현존하는 어떤 것이라면...) 더구나 작가의 역량을 말해주듯 이 소설에 등장하는 묘사는 가히 혀를 내두를만하다. 그야말로 '언어로 중계되는 축구'인 셈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은 그러한 환상을 다소간 무너뜨린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작가로서의 능력과는 별개로 '축구를 보는 눈' 에 있어서는 한계를 드러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축구나 소설적인 재미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작가 스스로가 결정을 하지 못한 듯한 인상을 많이 주었다. 결국 작가는 마지막에서 축구를 선택한 듯한 인상을 주지만 (마지막 부분의 상당량을 축구 경기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책의 중반부에 언급되었던 사건과 의혹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결국 작가는 축구라는 기본틀을 선택했지만 그로인해서 하나의 소재를 부각도 못 시키고 끝낸 셈이다. 안기온이라는 정체불명의 혈관확장제가 등장하고, 주인공은 그 비밀을 풀으러 여기저기 뛰어다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축구 경기를 끝내면서 소설도 끝난다. 물론 추리소설이 아닌이상 확연한 결론을 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지만, 독자들의 기대치만 불려놓은 상태에서 '우리 일본인'만 괜찮으면 되는거야! 하는 식으로 결론을 내는 것은 가히 불편하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이 소설에는 '도지'라는 일본인 축구 선수가 등장한다. (물론 그는 가상의 인물이지만)모든 것이 그를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본인 선수가 세리아A에서 너무나도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배가 살짝 뒤틀렸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작가에 일본선수 묘사니 어쩔 수 없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역자의 문제다. 물론 무라카미 류가 어떤 식으로 소설을 썼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역자의 역량 부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 여럿 눈에 띄었다. 특히 영어 단어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좋은 우리 말 놔두고 왜 구지 이런 말을 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를 든다면 '잘 정돈된' 이라고 써도 되는 것을 '어래인지드한' 이라고 쓰는 식이다.)

전체적으로 기대한 것에 비해서 소설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스포츠 소설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경기를 묘사하느냐 소설적인 재미를 추구하느냐,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여지껏 스포츠 소설이 제 빛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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