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그가 그림책도 썼네!"
이름을 본 순간 길 가다 잊고 지내던 사람을 만난 듯 반갑다. 주제 사라마구의 유일한 그림책이라니 사실 설렌다. 주제 사라마구. 하면 맨 먼저 <눈 먼자들의 도시>란 소설이 생각난다. 오래전 활동했던 독서토론 모임에서 다룬 책이고 영화로도 꽤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그는 소설외에도 시, 희곡 콩트까지 다양한 쟝르를 넘나드는 대단한 작가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그림책까지 썼다는 게 더 놀랐다.
이 그림책은 초등학생 대상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이야기는 한 소년이 알몬다 강에서 낚시질을 하며 겪는 일이다. 코르크로 만든 찌를 강물에 던져 놓고 물고기의 입질을 기다리는 소년은 입질이 오자 있는 힘을 다해 물고기를 끌어 당긴다.
낚싯줄을 당겼다 끌려갔다 하며 힘 겨루기를 하는 긴박한 장면은 그림 속 팽팽한 낚싯줄에서도 느껴진다.
낚싯줄 하나로 물 밖 소년과 물 속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물고기와의 대결은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과도 흡사하다.
소설 속 노인이 바다에 나간지 85만에 큰 청새치를 발견하고 조각배까지 청새치에게 끌려가면서 청새치와 실랑이하는 문장은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박감 그 자체다. 그림책 속 이 장면이 오래전 기억을 방금 전 기억으로 바꿔 놓는다.
노인은 결국 청새치를 잡아 항구로 오지만 상어떼를 만나 뼈만 남은 청새치를 바라보는 심정과 쓸모 없는 낚싯대를 바라보는 소년의 마음이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겹친다. 집에 돌아와 늘어지게 단잠에 빠지는 노인과 더 튼튼한 낚싯대를 메고 도망간 물고기를 잡겠다고 다시 강으로 돌아가는 소년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마치 한 사람의 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아련하다.
해가 저물도록 낚싯대를 드리우고 모든 것을 잃은 양 물고기를 기다리는 소년이 물의 침묵을 보는 모습은 어둠속 한 줄기 빛을 대하는 것 같다. 살아가는 건 어쩌면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기다리는 낚시질과 같지 않을까.
"물은 아주 오래도록 침묵했습니다.
물의 침묵은 세상 어떤 침묵보다 진한 침묵이란 걸 알았습니다.
나는 결코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더 이상 찌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물고기를 기다렸습니다.
물결만이 조금씩 찰랑거릴 뿐 나의 영혼 깊숙이 들어와 박힌 슬픔만 가득 안고 낚싯줄을 걷었습니다."
이 그림책은 쪽수를 매기지 않았다. 무슨 뜻일까. 혹시 생이 현재 진행형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