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녀석은 휘파람을 잘 분다. 처음엔 노래도 아니고 장난처럼 아무렇게나 불어대더니 요즘은 제법이다. 무슨 곡인지는 모르지만  멜로디가  귀에 붙는다. 샤워할 때 , 아침에 학교 갈 때, 이어폰을 꽂고 음악들을 때, 시도 때도 없이 휘파람을 불어댄다. 그러다 보니 저녁에도 신이 나 있는 날이 많다. 듣기 좋은 노래도 한 두 번이지. 귀에 거슬려  "저녁에 휘파람 부는 거 아니야. " 하면 녀석은 되는 이유를 따져 묻는다.

 

어릴 적 어른들한테 강압적으로 안된다는 얘기만 듣고 자랐지 그 이유에 대해선 말해주지 않았고 커서도 알려고 찾아본 적 없다. 아마 이 말도 그런 맥락 중에 하나였다. "옛날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며 도깨비 얘기를 해달라고 조르면 할머니나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살았다.

 

그런데 <소설가의 일>이란 책을 읽다 보니 김연수 작가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아주 그럴듯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야기를 좋아하면 일은 안 하고 자꾸 몽상에 바지니까 비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제 밥벌이를 못하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뭐 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소설가가 되어 이십 년 정도 소설을 써 보니까 거기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겠다. 그 숨은 뜻을 알기 위해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 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데서 출발해보자.

 

"감정이입이란 다른 사람의 마음이 꼭 내 것인 양 느껴진다는 뜻이니까 공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공감이라는 걸  쥘리앵 소랠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마음 졸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을 읽으며 손에 땀을 쥔다는 말이 꼭 그 뜻이다. 감정이 같아지면, 몸도 한 몸이 되는 셈이다. 때로는 소설 속 주인공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뜻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공감능력이 아주 뛰어나다."(...)(160쪽)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이야기의 속성 때문에 나온 말이리라.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남들보다 감정이입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그건 특히 타인의 좌절에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테니, 자기 시간과 돈을 남들을 위해 쏟는 일도 많겠지. 이런 사람이야말로 전 세계 모든 할머니들이 걱정하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다."(162쪽)

책 읽는 재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처럼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흥은 쏠쏠하다. 좋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맞아, 나도 그랬지. 하고 마음속으로 흡족해 공감을 꾹 누를 때는 ​생면부지의 작가와 교감을 하는 기분이다.

책은 항상 곁에 있는 든든한 친구며 변질되지 않는 응원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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