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하종오 시인

 

집으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탄다

햇빛이 가득 찬 차안에서 보면

관공서와 회사와 은행문 굳게 닫혀 있고

신호등 앞에서 기사는 전방만 바라보고 있다

뒷좌석 찾아 앉아 나는 좌우 두리번 거린다.

소비자든 생산자든 경영자든

누구 편에도 속하지 못해

날마다 낡은 가방 메고 일거리 찾아 다니다가

저물녁이면 이렇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버스정거장에 설 때마다

햇빛이 조금씩 내리고 어스름이 조금씩 올라탄다

버스는 산 아래 터널로 들어서고

마음 얻을데 없는 실업의 나날들

내일부턴 현관 화분에 무슨 꽃씨든 심어놓고

오며 가며 발아라도 기다려 봐야 겠다

터널을 지나 나무들이 움 틔운 산기슭이 보인다

기사는 라디오 켜다가 콱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햇빛이 다 내리고 어스름이 다 올라타는 정거장

오늘 뉴스도 자살 살인 강도, 순간

채널 바뀌어 신나는 트로트 흘러나온다

나는 두 다리로 박자 맞추다가 내려야 할 곳을 깜박, 지나 친다.

 

 하종오 시집 <지옥처럼 낯선>, 102~103쪽의 시

 

<마음대로 시 해독> 출근하는 차림으로 신문을 들고 산으로 오르는 사람,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기력없이 다니는 사람, 어디에도  누구편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 실직을 겪어 본 마음이라면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아마 시인도  힘든 나날을 보냈었나 보다. 실업의 긴 현실을 시에 담아내는 일 또한 힘이 든다. 행간마다 화자의 마음이 읽힌다. 버스를 타고 앉아 차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는 시선, 굳게 닫힌 건물들을 바라보며 오늘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 화자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이다.

생산자든 소비자든 그 어디에도 소속감이 없는 화자의 마음은 간절하다. 그래서 씨앗을 심고 싹이 트는 날을 기다리겠다고 말한다.속으로 희망을 가져 보다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는 마음이 긴 터널속 같아 자꾸 마음이 쓰인다. 가방 맨 어깨가 축 쳐져보였던 그 사람처럼.

"햇빛이 조금씩 내리고 어스름이 조금씩 올라탄다."

"내일부턴 현관 화분에 무슨 꽃씨든 심어놓고

오며 가며 발아라도 기다려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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