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는 기존의 있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편집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주창하는 문화심학자 김정운 교수의 책 <에디톨로지>(2014.21세기북스)는 21세기의 창조는 어떻게 갈 것인가를 알려주는 책이다. 다양한 자료와 사진 그림을 통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카라얀에 대한 재해석은 신선하고 내겐 인상깊은 내용이다.
"음악은 귀로 듣 것이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화려한 카라얀의 동작과 표정이 음악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뜻이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음악을 들을 때, 눈을 지그시 감는다. 조명도 최대한 어둡게 한다. 작은 백열등이나 촛불을 켠다. 귀의 감각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정서적 경험은 하나의 감각만으로는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았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흐릿한 방안을 보기도 하고, 무언가를 떠 올리기도 한다. 절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없다. 음악은 절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챈 카랴얀은 음악과 영상의 편집을 시도한다. 사람들은 카라얀이 세계 최초의 뮤직 제작자라는 것을 잘 모른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예술감독, 영상감독을 자처한다. 1965년 예술감독으로 오페라 <라보엠>을 찍은 후, 1967년에는 <카르멘>의 연주를 본인이 직접 감독한다.
"당시 기껏해야 공연 실황으로 연주되던 클래식 공연을 카라얀은 당야한 영화적 기법을 동원해 최초의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 이후 본격 등장한 베를린 필하모니의 뮤직비디오는 거의 '카라얀 감독, 카랴얀 각본, 카라얀 주연,'이었다. 그의 지나친 나르시시즘은 욕먹어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눈으로 보는 음악'을 창조해낸 카라얀의 업적을 폄하해서는 안된다."(130~131쪽)
이 사진을 보니 반갑다. 지그시 눈을 감고 음악에 취한 듯한 카라얀 사진에 뻑 갔던 시절이 있었다. 여고시절 가사시간에 수를 놓았는데 그 시간에 나는 카라얀의 우수에 찬 모습을 까만실과 흰실로 한 땀한 땀 놓았었다. 그때 여러가지 샘플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치의 망설임없이 선택했다.
음악에 취하지 않으면 감히 나올 수 없는 포즈라고 생각했었다. 지휘하는 모습에서 웅장한 교향곡을 듣는 듯 강렬했다. 지금봐도 여전히 카리스마있고 매력적이다. 청각과 시각을 편집해 낸 최초의 뮤직비디오 제작자였다니 놀랍다.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내는 저자도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