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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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표현에 인색하지 않고, 죽음에 초연하고, 건전하지 않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전히 근사한 남자를 좋아하는...

멋진 할머니가 나를 웃게한다.

행복하게 한다.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노 요코는 그 길로 재규어 매장에 가서 재규어를 산다.

이 얼마나 박력 넘치는 삶인가...

 

p242

배달된 재규어에 올라탄 순간 '아, 나는 이런 남자를 평생 찾아다녔지만 이젠 늦었구나'라고 느꼈다.

시트는 나를 안전하게 지키겠노라고 맹세하고 있다. 쓸데없는 서비스는 하나도 없었고 마음으로부터 신뢰감이 저절로 우러났다.

마지막으로 타는 차가 재규어라니 나는 운이 좋다.

 

 

 

작가는 암에 걸려 시한부인 채로 치매 요양원의 엄마를 만나러 가는 일상 조차 덤덤하고 유쾌하게 표현한다.

 

p108

엄마는 쿨쿨 자고 있었다. 이제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도 피곤해서 엄마 침대로 파고들었다. 엄마는 내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에 남잔지 여잔지 모를 사람이 있네."

"엄마 남편은 사노 리이치지?"

"아무것도 안 한 지 한참 됐어." 아무것도라는 건 뭘까. 설마 엉큼한 그것일까?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 왠지 투명하게 느껴지는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하더라도 엉큼하게 들리지 않는다.

내가 큰 소리로 웃자 엄마도 소리 내어 웃었다.

"엄마, 인기 많았어?"

"그럭저럭." 정말일까?

"나 예뻐?"

"넌 그걸로 충분해요."

또다시 웃음이 터져버렸다.

엄마도 따라 웃었다.

갑자기 엄마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여름은, 발견되길 기다릴 뿐이란다."

나는 할말을 잃었다.

"엄마, 나 이제 지쳤어. 엄마도 아흔 해 살면서 지쳤지? 천국에 가고 싶어. 같이 갈까? 어디 있는 걸까. 천국은."

"어머,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던데."

 

 

나도 늙고 병들었을 때. 천국을 입에 올리더라도 흡사 집을 옮길까?

우리 같이 이사갈까? 같은 무게로...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에세이스트인 멋진 할머니 사노 요코.

 

그녀의 다른 글들을 더 읽고 싶어 찾아본 자료들에서 그녀의 젊은 날의 사진들과 마주했다. 

이건 누굴까... 란 생각이 들 정도의 시크하고 까칠해 보이는 스타일 좋은 패셔니스타.

아니, 책 날개의 작가사진에 처진 눈꼬리로 사람좋게 웃고 있는 노년의 사진과는 전혀 다르잖아요!

늘 자신은 빈농 출신, 시골여자라 하시더니...

이건 너무나도 신여성 도쿄여자 같은 (흡사 보그지 편집장이래도 믿을 것 같은) 세련된 비주얼.

멋진 할머니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구나.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아마 일부러 화사하지 않아도 늘 화사한 날들이었을 시절.

 

그녀가 더 좋아진다.

그리고 책 말미, 그녀가 이제 세상에 없다는 편집자의 말에

좀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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