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을 읽고 있다.
좋은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루하다는 평가도 있어서 지난 주에 도서관에 갔을 때 한 번 훑어나 보자고 집어든 책이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이 책을 들고 와서 읽는 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첫 페이지에서 인용한 멋진 패러디 때문이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을 읽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물살이 완만하고 좋은 자전거나 말을 가지고 있다면 같은 강물에 두 번(개인의 위생적 필요에 따라 세 번까지도)까지도 멱을 감을 수 있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 사상가였던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명한 명제, 그러니까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를 떠올리게 한다.
주지하다시피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의 어떤 것도 한결같은 존재로 머물러 있지 않다는, 그래서 이 세계의 본질은 변화와 생성이라는 만물유전(萬物流轉)의 사상을 설파했던 사상가.
따라서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에 언급된 이 패러디가 의미하는 바는
역사에서 반복이 있을 수 있음을, 그 반복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일깨워주는 한편,
그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라 할 수 있는 '좋은 자전거'나 '좋은 말'이 바로 문학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는 셈이다.
볼라뇨가 반복으로 본 소재가 무엇일까? 바로 나치(파시스트) 문학이다.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에는 비록 가상이긴 하지만 수많은 파시스트 작가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그냥 로베르토 볼라뇨의 '픽션'이라고 가볍게 넘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히틀러로 대표되는 나치즘은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종식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전세계 곳곳에서 극우 파시즘, 인종주의, 국수주의, 순결한 아리아인 운운하는 정치조직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고 보면(얼마전 유럽의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정당의 후보가 15.6%를 득표했다), 볼라뇨의 책은 그들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행태, 그렇지만 소름이 쫙쫙 돋는 행태에 대한 고발인 셈이다.
p.s. 그런데 이 책은 개인적으로는 참 재미있다. 인명사전이나 백과사전식 "나열"에 익숙해 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