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인터넷 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잉여’란 말이다.
잉여의 사전적 의미라면 ‘나머지’ 정도의 의미겠지만, 인터넷의 용법에서 파생된 의미를 유추해 보자면 ‘별 필요없이 그저 밥만 축내는 존재’ 또는 ‘별 볼일 없는 막장인생’ 뭐.... 이 정도 되지 않나 싶다.

[열외인종 잔혹사]는 무지하게 재미있다. 그리고 무지하게 웃긴다.
4명의 ‘잉여인간’이 11월 24일 하루 동안 엇갈리다가 결국 만나게 되는 이 작품은 이휘재가 “그래 결심했어!”를 일주일마다 외치던 인생극장을 보는 듯하다.
우선 인물설정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우리 사회에서 ‘잉여’로 불릴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 먼저 그들을 보자.

장영달: 무공훈장을 가득 달고 군복을 입은 채 ‘빨갱이 척결’을 외치는 노인
       시청앞이나 종묘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보수 꼴통’
윤마리아: 여러 스펙을 쌓았으나 고작(!) 외국계 회사 인턴으로 일하는 88만원 세대 아가씨
       돈은 없어도, 카드가 상한에 달하는 한이 있어도 짝퉁 명품이라도 걸쳐야 하는 소위 ‘된장녀’
김중혁: 밤엔 서울역, 낮엔 무료급식소를 전전하는 노숙자
       온 사방에 퀴퀴한 냄새를 풍겨 감히 범접을 허하지 않는 소위 ‘거렁뱅이’
기  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밤마다 PC방을 전전하며 게임에 중독된 문제 청소년
       하는 일이라곤 먹고 싸고 젊은 누나들 훑어보며 침흘리기 뿐인 소위 ‘날라리 양아치’

이들 잉여인간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저마다의 필요에 의해서 삼성동 코엑스몰로 모여든다.
그리고 거기서 마주친 놀라운 광경!
양의 탈을 뒤집어 쓰고 총을 든 괴한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인질로 삼고 죽이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4명의 주인공은 이 광경을 각각 다르게 받아들인다.
장영달은 좌익 빨갱이 집단의 출현으로, 윤마리아는 카니발의 일종으로, 김중혁은 노숙자들의 메시아가 일으킨 쿠데타로, 기무는 게임업체의 이벤트로.....
그리고 이 상황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대처한다.
살기 위해서, 회사 정규직원이 되기 위해서, 게임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

책장이 휙휙 넘어가는 재미와 웃음을 보장하지만, 몹시도 뒷맛을 쓰게 만드는 소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인공들을 너무나 손쉽게 ‘잉여인간’, 또는 ‘열외인간’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이들은 결국 무한경쟁사회에서 소외받은 우리들 바로 옆의 이웃이며, 어쩌면 우리 스스로도 어느 순간 그런 존재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의지박약함과 무식함을 탓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이다.
오히려 이들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 경제위기의 희생자, 교육정책의 희생자가 아니겠는가.
이들이 우리 사회의 열외인종으로 떨어진 이유를 먼저 보자. 그 다음에 이들이 저지르고 있을지 모르는 범죄나 몰염치함에 비난을 퍼부어도 늦지 않으리라.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은 예외없이 누구나 잉여인간이 될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김별아 작가의 말대로 때때로 현실은 코미디보다 더한 코미디다.
분명 웃긴데 웃을 수가 없다. 남들의 불행에 웃어야 하는 현실이 기가 막히고, 언젠가 그 불행이 내게도 순식간에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기가 막힌다.

소설에 등장하는 4명의 ‘잉여인간’ 또는 ‘열외인종’의 삶을 보라.
사실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 자신도 언제든지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은가.

삼성동 코엑스몰에 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높다란 빌딩숲과 최고급 호텔 아래 셀 수 없을 정도의 상점이 모여서 소비할 것을, 지갑을 열 것을 끊임없이 충동질하는 곳.
그래서 ‘자본주의의 타지마할’이라고 부르는 곳.
어쩌면 코엑스몰은 한국 자본주의가 이룩한 성과의 꽃봉오리와 같으면서도 자본주의적 욕망의 상징과도 같은 곳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여기서 한 쪽으로 조금 나아가면 한국 자본주의의 또다른 얼굴, 즉, 천민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 있는 반면,
또 반대쪽으로 조금 나아가면 아직도 비닐하우스를 치고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서 한국 자본주의의 또다른 얼굴을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심장에 떨어진 자본주의의 잉여인간들. 이들이 내지른 총질과 욕설은 자본주의라는 단단한 바위를 향해 던진 헛된 계란이었을까?
그래서 이들의 절규는 자본, 권력, 언론에 의해 압살당하는 한갓 ‘망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웃기다. 하지만 씁쓸하고, 결국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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