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우주 - 별의 탄생에서 인류의 진화까지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본 우주의 수수께끼
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 이민용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마츠모토 레이지 감독의 <은하철도 999>는 영원한 생명을 찾아 안드로메다까지 먼 여행을 떠나는 한 여행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와 영원히 순환하는 은하철도를 배경으로 활용하였는데,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주제의식이 잘 조화된 명작으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우주는 무엇보다 ‘무한함’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 시골마을의 밤하늘은 정말 캄캄하다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던 검은 심연(深淵)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검은 밤하늘에 쏟아져 내릴 듯 달려 있던(?) 별들은 도저히 끝까지 헤아릴 수 없었다. 어쩌면 ‘무한하다’는 말은 인간 이성이 쌓아 온 물리적 법칙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감의 표현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력감에 빠진 우리들이 이 ‘무한함’을 조물주의 문제로 돌린다고 해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많은 위대한 물리학자들에서부터 평범한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보면서 기독교의 창조주든, 범신론적인 신이든, 자연현상을 ‘신’의 위상까지 끌어 올리든 하나의 절대자를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우주는 자연과학의 대상이면서 언제나 인문학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 같다. 우주의 무한함은 인간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좋은 대비거리였고,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는 질문은 신의 존재와 연결되어 신학과 철학의 영원한 주제가 되었다. 우주에 대한 하나의 사실을 밝혀냈다고 좋아하는 것도 잠시뿐, 곧바로 풀리지 않는 의문거리가 꼬리를 물고 나타나 과학의 한계를 사유하게도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증명해낸 시간과 공간의 일그러짐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인식해온 ‘시공간의 절대성’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뉴튼식의 물리적 세계관을 붕괴시켰다. 그 뿐인가? 우주에 인간말고 다른 생명체와 문명이 있을 것이란 상상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온 오래된 주제였으며, 별들을 연결한 별자리는 신화의 형태로 인간의 뇌리에 박혀 있다.

그래서였을까? 게르하르트 슈타군의 [유혹하는 우주] 표지에 쓰인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본 우주의 수수께끼’라는 표현이 아주 낯설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유혹하는 우주]는 대단히 충격적인 ‘인문학적 언어’로 시작한다.

                                    “세계는 착각이고 모든 것은 현상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연상하게 하는 이 프롤로그는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우주의 모든 현상(별이 반짝이고, 혜성이 날아다니는 것,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 등)은 실제 우리 감각으로 인식하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현상이라는 점에서 착각이며, 따라서 절대적 법칙이 아닌 상식을 뛰어넘는 상대적 입장이 필요한 공간이 우주라는 의미이다. 환원론적 입장이기는 하지만 우주를 비롯한 모든 물질은 사실 형체를 볼 수 없는 원자들의 집합체이다. 물론 이 원자는 또 쪼개어 양성자와 전자로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우주를 ‘감상하는’ 것에는 눈과 망원경으로 충분하겠지만,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자의 성격과 운동을 상상하고 검정하는 머리와 가슴이 필요하다. 마치 플라톤이 현상에 구애받지 않고 궁극적 이데아를 찾아 나선 것과 같이 말이다.

[유혹하는 우주]는 우주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원자(양성자, 전자)의 움직임과 빛의 성질부터 출발하여 우주의 현상(시간과 공간까지도)을 왜 상대적으로 보아야 하는지, 우주와 별의 일생은 어떠한지, 우주에서 생명은 어떻게 발생하여 진화해 왔는지의 순서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그리고 저자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 중간중간에 인문학적으로 생각해 볼만한 많은 공간을 주고 있다. 절대성에 대해서, 창조주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외계생명체에 대해서 등등... 이 책을 통해 과학적 지식과 함께 이런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채워둔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독서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우주의 생성-성장-사멸의 과정이 흥미로웠다. 인간의 일생과 어딘지 닮아 있는 우주의 일생을 보면서 무척이나 신기했는데, 이와 연관된 블랙홀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우주와 신에 대한 상상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사실 우주는 인간의 미미함을 보여주는 기제로 활용되어 왔다. 인간의 역사는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 수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초에 30만 km나 나가는 빛이 무려(!) 1년을 진행하는 ‘광년’을 거리의 기본 단위로 삼는 우주의 스케일 앞에 인간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우주도 종말을 맞이한단다. 지구나 태양과 같은 특정한 별이 아니라 우주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가? 이 지구가 소행성이나 혜성과 충돌하여 사라져버린다거나, 태양과 같은 항성이 에너지원을 모두 소모하면서 지구와 더불어 멸망하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확률이 낮거나 엄청나게 긴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분명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주 자체가 종말을 고한다니...

[유혹하는 우주]의 저자 슈타군은 두 가지 방향으로 우주의 종말을 예상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출발점은 현재도 무한히 확장되고 있는 우주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첫 번째 종말 시나리오. 엄청나게 높은 밀도를 가진 한 점이 폭발하여(빅뱅) 현재의 우주가 확장되고 있듯이 언젠가는 이 우주가 다시 처음의 한 점으로 수축해 버린다. 우주가 확장될수록 우주 공간에는 물질이 많아지고, 빅뱅의 에너지 대신 만유인력이 작용하여 이 물질은 서로 끌어 당긴다. 결국에는 모든 물질이 하나의 점으로 합쳐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종말 시나리오. 우주가 확장은 당연히 우주의 온도 저하로 나타난다(실제 초창기 우주에 비해 현재 우주의 온도는 무척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우주가 더욱 넓어져서 입자들이 활동할 수 없을 정도까지 온도가 떨어진다면? 아마도 태양과 같은 별들은 백색왜성이 되어 식어 버리고, 에너지가 없어진 우주는 빛이 사라져 어떤 존재도 남아 있지 않은 말그대로 ‘태초의 흑암’ 상태로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아! 무섭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몇 조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어쨌든 결론은 무한해 보이는 우주도 결국은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나 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별종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블랙홀(black hole)이란 녀석이다. 태양의 수십배 되는 크기의 별이 일생을 다하고 중성자별이 되고 난 후에 그 중력이 엄청나게 강력해져서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무서운(!!!) 암흑의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 블랙홀은 우주의 종말에도 살아 남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블랙홀의 중심에 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물론 지금의 과학으로 이걸 증명할 수는 없다. 빛도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관측한다는 것 자체에도 많은 가설과 가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겁지 않은가? 블랙홀 안에 천국과 지옥이 있는 셈이니까. 그래서 신의 존재나 천국, 지옥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과학적 엄밀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왠지 내 상상력이 조금 더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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