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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ㅣ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평점 :

내게 빌 브라이슨은 특별한 기억이 남는 작가이다.
그는 문과 출신인 내게 자연과학에 대한 흥미와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어렵게만 느껴졌던 과학을 그렇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반할 만한 작가였지만,
더 놀라운 것은 빌 브라이슨 자신도 과학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순간순간 들었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였고,
그 과정이 마치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해결하는 즐거움에 가득찬 학생을 떠올리게 했다.
이 사람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공자님 말씀이 있는데,
바로 논어에 나오는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라는 말이다.
이런 작가가 ‘미국’이라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나라를 만났으니, 그 만남이 밋밋할 리가 없다.
게다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긴 하지만 20년이 넘게 영국에서 살다가 귀향한 ‘이방인’의 자격으로 만난 특수한 상황이니 말 그대로 ‘특별한 만남’이 되지 않겠는가.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때때로 귀엽게(!) 투덜거리는 작가, 자신이 느낀 바를 주저하지 않고 드러내며 그 이유를 찾는 작가인 빌 브라이슨은 고국과의 만남에서 느낀 점을 60편의 글에 담았다.
그는 영국에서 강산이 두 번 변할 시간인 20년을 보내고 고향인 미국으로 귀향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20년 만의 미국생활은 여전히 익숙한 것과 전혀 새로운 것이 뒤섞인,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카오스’ 상태였을 것이다.
일 년에 두어번 고향을 찾는 내 경험으로 비춰봐도 그렇다. 일년에 두 번이나(!) 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빌 브라이슨은 딱딱한 여행기나 감상에 치우친(오! 나의 조국이여! 하는 식의 글) 정착기를 쓰지 않았다.
여기서 빌 브라이슨의 글쓰기가 가지고 있는, 그래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강점 두 가지가 나온다. 바로 유머를 통한 친숙함과 이면에 숨겨진 본질을 지적해 내는 날카로움이다.
이런 강점은 10년도 더 지난 원고(이 책에 수록된 칼럼들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쓰여진 것이다)를 2009년에 읽어도 독자들을 킥킥거리게 만들면서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도록 불가사의한 마력을 발산하기까지 한다.
그는 스머프 만화에 등장하는 투덜이 스머프처럼 미국 생활 중에 연신 투덜거리는데,
그 투덜거림이 마치 어린아이가 떼쓰는 것과 같아서 귀엽고 재미있다.
그런데 놀라운지고!
그 투덜거림에는 재미뿐만 아니라 이방인이자 귀향민으로서 빌 브라이슨이 느끼고 파악하는 미국인에 대한 날카롭고 진지한 성찰이 가득 담겨 있다.
괜히 책 제목에 ‘발칙한’이라는 쉽게 쓰기 힘든 단어를 수식어로 붙여 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공짜 도넛을 제공한 친절한 동네 우체국에 찬사를 보내다가도 불분명한 주소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우편서비스에 불만을 토로한다.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모습은 좋지만, 그 도가 지나치고 너무나 복잡해져서(아침식사 메뉴만 해도 9가지의 달걀과 16가지의 팬케이크, 6종류의 주스, 2가지 모양의 소시지, 4종류의 감자, 8종류의 토스트와 머핀, 베이글이다) 오히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투덜거린다.
몇 십미터 떨어진 체육관에 차를 타고 가면서 체육관의 러닝머신을 이용해서 살을 빼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왜 아무도 걷지 않는가?’라고 절규(?)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모습은 ‘낭비’로 보일 정도로 과도한 소비 지향적인 문화와
공항과 식당, 이민허가 과정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규정에 과도하게 얽매이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블랙 코미디(black comedy)를 즐기는 이유는 웃음 속에 불안함과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빌 브라이슨의 고군분투 고국 정착기를 따라 읽다보면 우리는 웃음을 그칠 수가 없는데,
그 웃음이란 것이 파안대소하거나 빙긋이 미소 짓는 것과는 좀 다른, 키득키득거리는 ‘집어 삼키는’ 웃음이다.
이런 웃음은 뭐랄까, 대상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할 때 짓는 다분히 관음적인 웃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웃음의 원천은 전적으로 빌 브라이슨의 유머와 날카로움 가득한 글쓰기에서 비롯하는 것이니, 그의 미국 정착이 좀 더 시간을 끌어서 더 깊은 블랙 유머로 나타났으면 하는 것은 좀 너무한 부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