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파시즘
임지현.권혁범 외 지음 / 삼인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00년에 나온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눈이 확 떠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뭔가 이전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것이 180도 달라져 보인 체험이었다.

이번에 이 책을 거의 10년만에 다시 읽었다.
역시 책은 일정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여러번 읽으면 새롭게 보인다는 점을 실감했다.
처음 나온 이후로 시간도 많이 흘러서 사회의 여러 가지 면이 변화했다.
또한 출판된 이후 일어난 소위 ‘진보’를 표방하는 학자들과 활동가들 사이의 논쟁도 이 책을 보는 새로운 관점에 도움을 주었다.
물론 이 책이 주는 성찰과 반성, 고민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habitus)'란 사회(전체)의 구조화된 질서 또는 의식과 행동체계를 개인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장(場)을 말한다.
이 때문에 habitus를 ‘삶의 습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진중권씨 같은 경우는 ‘습속(習俗)’으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중요한 점은 ‘습속’은 무의식 중에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구성하고, 우리를 길들인다는 점이다.

우리 현대사의 많은 부분은 폭력과 권위에 의한 지배라는 그다지 즐겁지 못한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전하게 청산되지 못한 제국주의 잔재, 군사 쿠데타, 광주를 폭력으로 진압한 두 번째 쿠데타...
그래서였을까? 대학생이었던 시절 우리가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는 ‘파쇼정권 타도’였고,
민주화 운동이 거둔 소기의 성과로 인해 이제 어쩌면 정치권력으로서, 타도의 대상이었던 실체로서의 파시즘은 사라졌고, 앞으로도 등장하기 어렵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 시대를 겪으면서 마치 ‘가랑비에 옷젖는 줄 모르는’ 것과 같이 우리의 의식과 사고, 생활양상이 파시즘에 물들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habitus가 되어 우리들의 일상이 무의식적인 가운데 파시즘적 행동, 파시즘적 사고로 변화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자주 쓰는 표현대로 ‘적과 싸우면서 적을 닮게 된’ 모습이라고 할까.

임지현 교수와 여러 필자들이 함께 만든 [우리 안의 파시즘]은 파시즘의 논리와 체계가 우리의 일상생활로 어떻게 파고들어왔으며, 어떻게 habitus가 되어 우리들의 일상을 지배하면서 우리 자신이 ‘파쇼화’되고 있는가를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는 책이다.
임지현 교수는 개인적, 미시적 수준에서 형성된 파시즘은 독재정권의 존속을 위한 기반이 되었고, 이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힘의 독재’ 뿐만 아니라 ‘합의 독재(consensus dictatorship)’를 형성함으로써 지배구조를 지탱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가장 민주적이고 열려 있어야 할 진보 진영조차도 그 운영원리에는 파시즘의 논리가 살아 숨쉬고(물론 잘 보이지 않는 형태로) 있음을 지적한다.

맹목적인 반공교육은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모든 것에 빨갱이의 낙인을 찍어대는 ‘자동회로’를 구축하였다. 소위 진보적이라는 사람들도 여성에 대해서만은 가부장주의의 폐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받는 차별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아무 생각없이 찍었던 주민등록증의 지문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병역의 의무에서 임지현 교수의 주장대로 ‘파시즘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출판되고 난 이후 벌어졌던 논쟁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우리 안의 파시즘]이 가지고 있는 한계도 분명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또 하나의 양비론에 이용될 소지가 충분하고, 사회운동을 ‘품성’이 갖추어진 후에나 해야 한다는 논리로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파시즘 정권과 독재의 유지존속의 책임의 일부분을 그동안 우리가 ‘피해자’라고 생각해 왔던 민중에게 환원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신(新)양비론이 나타나게 된 핵심은 이 책이 비판하고 있는 전근대적이고 파시즘적인 속성들, 즉, 권위주의나 가부장주의, 차별이 마치 그러한 습속을 만들어 내고 자신들의 이익유지를 위하여 계속 확대재생산해 온 집단의 책임을 묻기 보다는 민중들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선택되어지고 실천되어지는 것으로 보는 논리 때문이다.
이 논리는 과거 독재를 비판하던 사람들에게 흔히 하던 말. ‘너 자신부터 깨끗해진 후에 정부를 비판해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는 소위 진보운동 세력이나 시민사회운동 세력을 비판하는 아주 전형적인 지배층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 논리를 따른다면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노력은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도닦듯이 개인이 깨끗한 생활을 하면 그만인 것을....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안의 파시즘]은 우리 사회에서 대단히 소중한 저작이며, 그 의의는 간과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점을 가슴 아프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해 오고, 아무런 비판의식도 없이 바라보던 것이 실은 ‘국가중심주의’, ‘가부장주의’, ‘혈통주의’, ‘차별주의’, ‘권위주의’의 산물임을 알려주며,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그런 것들이 바로 내 일상에 체화되어 습관처럼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은 소위 이 사회의 진보를 바라고, 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성찰지점이 될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앞서 지적한 양비론적 입장, 사회개혁 무용론적 입장에 조심한다는 전제하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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